"막내 결혼만은 꼭 보고..." 6개월 시한부 엄마는 그 꿈으로 6년을 버텨냈다

이전기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막내 결혼만은 꼭 보고..." 6개월 시한부 엄마는 그 꿈으로 6년을 버텨냈다

입력
2022.01.18 17:00
0 0

<47> 홍영한 외과 전문의

편집자주

의료계 종사자라면 평생 잊지 못할 환자에 대한 기억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생명을 구한 환자일 수도 있고, 반대로 자신에게 각별한 의미를 일깨워준 환자일 수도 있다. 아픈 사람, 아픈 사연과 매일 마주하는 의료종사자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2015년, 경기 일산의 암재활 요양병원으로 60대 여성 폐암 환자가 나를 찾아왔다. 그는 보험 관련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암이 발견된 건 2012년이었다. 폐에서 4㎝ 정도의 종양이 나왔는데, 이미 뼈와 뇌에 전이가 된 상태였다. 병원에서는 짧으면 3개월, 길어도 6개월밖에 살 수 없다고 했지만, 나를 찾아왔을 때 이미 3년을 버티고 있는 상태였다.

가족력도 없고 흡연자도 아니었다. 특별한 증상도 없었다. 단지 다리에 힘이 없어 가끔씩 주저앉곤 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더 힘들었다고 했다. ‘혹시 오진이 아닐까’ ‘혹시 좀 더 희망적인 이야기를 들을 순 없을까’ 하며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모두 비관적이었다.

의사로서도 이런 환자를 보면 늘 가슴이 아리다. 담배를 피우지도 않았고 나이도 젊은 편인데 폐암이 왔으니 본인은 얼마나 망연자실할까. 난 이 환자가 남은 시간 동안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그리고 좀 더 오래 꿈을 이루고 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얼마 없다고 통보받은 환자가 강한 멘털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는 정말로 씩씩하게 치료를 받아나갔다. 암의 크기가 커지든 작아지든 일희일비하지 않고 묵묵하게 항암 치료를 받았다.

어느 날 회진을 돌다 그 환자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안 힘드세요? 6개월을 훌쩍 넘겨 벌써 3년을 버티고 계시니 정말 대단하신 거예요.”

그는 맑은 눈빛으로 “제가 꼭 봐야 할 게 있거든요. 그게 제 꿈이에요”라면서 말을 이어갔다.

“우리 막내아들이 결혼하는 걸 꼭 보고 싶어요. 그리고 아파트도 한 채 사주고 나서 죽고 싶어요. 그때까진 이 악 물고 어떻게든 버텨보려고요.”

그는 항암치료 중에도 본업인 보험 일을 쉬지 않았다. 짧게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던 이유도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그러지 않아도 큰아들하고 둘째 아들에 비해 막내아들한테는 해준 것이 별로 없어서 늘 미안했는데...이렇게 암까지 걸려서 제가 우리 막내 마음만 아프게 하네요. 그게 너무 속상해요."

늘 미안했던 막내가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내 집까지 마련하는 모습을 꼭 봐야 한다는 간절함. 그 꿈이야말로 3~6개월 시한부 통보를 받고도 3년 넘게 버티며 일과 항암치료를 병행할 수 있게 한 힘이었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힘차게 꿈을 향해 나가는 그를 보면서 난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언제 끝날지 모를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는 건데, 당장 내일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더라도 꿈을 갖고 있는 사람과 아무런 목표도 없는 사람과는 삶의 질이 다르지 않겠는가. 암에 걸린 사람도 아닌 사람도, 당장 내일의 일을 알 수 없는 건 똑같으니, 지금 이 순간을 꿈꾸며 사는 게 가장 지혜로운 것 아닐까.

그리고 기적은 계속되었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그는 삶을 이어갔다. 막내가 결혼식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보는 꿈을 품은 채, 그는 암과 싸워 나갔다. 항암치료를 지속적으로 받으며 호전되기도 했고, 때론 주춤하기도 했지만, 길어도 6개월밖에는 살지 못할 것 같았던 그는 결국 그렇게 6년을 살았다.

마침내 그는 그토록 소원했던 막내아들이 결혼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파트도 사줬다. 그리고 모든 꿈을 이룬 뒤 4개월 지나 평온하게 눈을 감았다. 그는 살아있는 동안 병원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늘 희망과 긍정의 에너지를 전파했다. 누구든 꿈을 가지고 있다면 남은 생을 연장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성공한 많은 사람들은 “꿈이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꿈이 다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 환자를 통해 간절히 꿈꾸는 것만으로도 죽음으로부터 생명을 연장하게 하는 힘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암을 가지고 육체적으로 고통스럽지 않은 사람은 없다. 또 죽음 앞에서 그 누구도 초연할 수는 없다. 하지만 꿈을 가진 사람은, 암과 상관없이 그 꿈을 위해 오늘을 살아간다. 언젠가는 그 꿈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하루를 최선을 다해 열정적으로 살아간다.

“6개월입니다”라는 선고를 받았다고 해서 꿈을 내려놓지는 말자. 그것이 때로는 그 어떤 치료약보다 더 효과적일 때가 있으니 말이다. 그 환자의 영면을 다시 한번 기원한다.

홍영한 메디움강남요양병원장

※잊지 못할 환자에 대한 기억을 갖고 계신 의료계 종사자분들의 원고를 기다립니다. 문의와 접수는 opinionhk@hankookilbo.com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선정된 원고에는 소정의 고료가 지급되며 한국일보 지면과 온라인페이지에 게재됩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내가 살린 환자, 나를 깨운 환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라이브 이슈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