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눈 구경’이 부른 참극… 차량 수천대 고립, 22명 동사 책임공방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눈 구경’이 부른 참극… 차량 수천대 고립, 22명 동사 책임공방

입력
2022.01.09 17:45
17면
0 0

겨울 휴양지 파키스탄 무르리 찾았다 참변
정부, "폭설에도 관광 나선 탓" 책임 돌려
현지 언론 "관련 부처들이 손 놓아" 팽팽

8일 폭설로 차량 수천 대가 고립된 파키스탄 펀자브주 무르리 인근 도로에서 군인들이 제설 작업을 하고 있다. 무르리=로이터 연합뉴스

8일 폭설로 차량 수천 대가 고립된 파키스탄 펀자브주 무르리 인근 도로에서 군인들이 제설 작업을 하고 있다. 무르리=로이터 연합뉴스

파키스탄에서 이틀간 내린 폭설로 차량 수천 대가 고립되면서 눈 구경을 하기 위해 몰린 관광객 20여 명이 추위에 떨다 목숨을 잃는 참사가 발생했다. 정부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대대적인 구조에 나서고 있지만, 여전히 수백 대가 도로에 갇힌 데다 또 다른 눈보라도 예고된 터라 희생자는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책임을 둘러싼 갈등도 가열되는 분위기다.

9일 파키스탄 현지 매체 돈(DAWN) 등 외신을 종합하면, 전날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북쪽으로 40㎞ 떨어진 펀자브주(州) 무르리 인근 도로에 차량 수천 대가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인구 2만6,000명의 소도시 무르리는 아름다운 설경으로 매년 100만 명 넘는 관광객이 찾는 인기 겨울 휴양지다. 이날도 경치를 즐기기 위해 12만 대가 넘는 차량이 몰렸다.

문제는 지난 7일부터 어마어마한 양의 눈이 쏟아졌다는 점이다. 도로에 1m가 넘는 눈이 쌓이는 상황에서 갑자기 많은 인파가 몰리자 무르리 당국은 외곽 도로 차량 진입을 통제했다.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상황에서 뒤로는 가득 쌓인 눈 때문에 돌아갈 길마저 막히면서 일부 차량들은 도로 위에서 발이 묶였다. 지방 정부가 중장비를 동원해 제설에 나섰지만 진입에 난항을 겪었다.

결국 관광객 수천 명은 차에 탄 채 영하 8도까지 떨어진 강추위 속에서 밤을 지새워야 했다. 이 과정에서 어린이 10명을 포함, 총 22명이 목숨을 잃었다. 일가족이 한 차량에서 모두 숨진 사례도 발견됐다. 구조당국은 희생자 대부분은 저체온증으로 숨졌고, 일부는 히터를 켜고 추위를 견디는 과정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8일 파키스탄 펀자브주 무르리에서 군인들이 폭설로 발이 묶인 차량을 구조하러 나서고 있다. 무르리=AP 연합뉴스

8일 파키스탄 펀자브주 무르리에서 군인들이 폭설로 발이 묶인 차량을 구조하러 나서고 있다. 무르리=AP 연합뉴스

연방 정부는 현지에 군을 투입, 긴급 구조에 나섰다. 펀자브 주정부는 무르리 인근을 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해당 도로 인근 주민들도 관광객들에게 담요와 식량을 제공하는 등 발벗고 나섰다. 그러나 사망자 수는 더욱 늘어날 공산이 크다. 추가 폭설이 예보된 데다 여전히 구조되지 못한 차량도 수백 대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번 참극이 인재(人災)라는 데는 현지 내에서도 이견이 없다. 그러나 ‘누구의 탓인가’를 둘러싸고 의견이 엇갈린다. 정부는 전례 없는 폭설이 예고된 상황에서도 관광에 나선 시민들에게 책임을 돌렸다.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는 트위터에서 “기상 상황을 확인하지 않은 관광객이 쇄도했고, 지방 정부는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셰이크 라시드 내무장관도 “15~20년 만에 가장 많은 관광객이 몰려 큰 위기가 발생했다”고 전했다.

반면 정부의 안이함이 참사를 불러왔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현지 도시정책 전문가 새라 아마드는 “파키스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도로에서 이런 사건이 일어난다는 것은 끔찍하다”며 “이런 비극은 전적으로 피할 수 있었고, 부실한 감독을 한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지 언론들 역시 수일 전부터 기상청이 대설주의보를 내렸지만 국가재난관리청 등 관련 부처가 손을 놓고 있다고 지적한다. ‘돈’은 사설을 통해 “당국이 시기적절한 경고를 발령했다면 비극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많은 관광객 때문에 사고가 발생했다는 당국의 말은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허경주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