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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노동에 가까운 한국 교육… 효율성은 OECD 최하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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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노동에 가까운 한국 교육… 효율성은 OECD 최하위"

입력
2022.01.06 17:02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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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학생들은 하루 15시간 동안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 않은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앨빈 토플러

김희삼 교수는 이달 내놓은 저서 ‘왜 지금 교육경제학인가’에서 한국의 교육의 현주소를 경제학적 관점에서 진단하면서 토플러의 2007년 발언을 소환한다. 초중고 나아가 대학에서 이뤄지는 교육이 학생의 학업성취와 전인적 성장은 물론, 직업능력 배양에도 기여하지 못하는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더욱 심각해졌다는 이야기다. 교육을 이대로 방치한다면 눈앞의 인구변화, 경제적 양극화에도 대응하기 어렵다고 우려한다. ‘우수한 인적자원을 바탕으로 이뤄낸 경제성장’이라는 신화에 치명적 균열이 생긴 것이다.

진단은 교육경제학에서 이뤄진 다양한 실증연구들에 바탕을 뒀다. 이에 따르면 교육 역시 자원을 배분하는 과정이다. 돈·시간·노력을 투입해 좁게는 성적, 넓게는 지성과 인격이라는 산출물을 얻는다. 이러한 교육적 생산과정에는 학생과 부모는 물론, 사회도 참여한다. 국가 차원에서는 인적자본을 얻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 탈이 난 것이다. 김 교수는 효율성과 형평성, 타당성이라는 세 가지 평가기준으로 교육이 왜 어떻게 망가졌는지 분석한다. 효율성은 투입 대비 성과를, 형평성은 과정의 계층간 지역간 공평성을 뜻한다. 타당성은 교육 내용과 방식이 학생들이 미래사회에 진정으로 필요한 역량을 길러주는지 따지는 기준이다.


지난달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에서 열린 종로학원 2022대입 정시특별전략 설명회에서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대학입시 지원전략이 담긴 자료집을 살펴보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대학 간판은 자신의 잠재력을 입증하는 강력한 수단이다. 뉴스1

지난달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에서 열린 종로학원 2022대입 정시특별전략 설명회에서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대학입시 지원전략이 담긴 자료집을 살펴보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대학 간판은 자신의 잠재력을 입증하는 강력한 수단이다. 뉴스1


교육체계도 과거에 머물러 있어

지금의 교육체계도 잘 돌아가던 시절이 있었다. 한국이 후진국이었던 시절, 교육은 개인에게는 사회적 성공을 약속했고 국가에게는 제조업과 첨단산업 분야에 종사할 노동력을 제공했다. 문제는 한국이 선진국을 모방하던 시대가 저물면서 벌어졌다. 베낄 것이 없어진 상황, 창의력이 중요한 시대가 왔는데 교육체계는 여전히 이해와 암기 중심의 주입식 교육에 머물렀던 것이다. 토플러의 지적대로 교육이 대학 입시를 위한 수단으로만 기능하는 것이다.


장시간 비효율적 노동과 비슷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은 비효율적 중노동에 시달린다. 통계청이 2014년 발표한 생활시간조사에 따르면 중학생의 주당 평균 공부시간은 공교육을 포함해 52시간 42분이었다. 고교생은 64시간 30분을 공부했다. 그러나 한국의 ‘학습 효율성 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조사한 66개국 가운데 58위를 기록했다. OECD 가운데서는 꼴찌였다. 해당 지수는 수학 점수를 주당 수학 학습시간으로 나눈 값이다. 김 교수는 한국 청소년의 학습시간은 노동시간이 매우 길고 생산성은 낮은 한국 취업자의 노동시간과 비슷한 형태를 보인다고 분석한다.


내용도 직업교육과 무관

교육 내용도 직업과는 무관하다. 모든 이에게 직업 교육이 필요한지는 따져봐야 할 문제지만 한국의 교육이 직업교육과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중고교에서 직업생활에 유용한 지식을 가르치고 있는지 만 15세 학생에게 물은 조사에서 한국의 긍정 응답 비율은 65%에 그쳤다. 일본(64%)과 유사한 수준으로 핀란드(92%)와 OECD 평균(86%)에는 한참 못 미쳤다.


대학 교육도 흔들

대학 교육도 덜컹거리긴 마찬가지다. 한국에서는 대졸자의 절반 가량이 전공 분야가 아닌 분야에서 일한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가 발표하는 대학 교육경쟁력 순위에서 수위를 차지하는 핀란드의 두 배 수준에 달하는 비율이다. 김 교수는 대학 교육마저 “일에 필요한 생산성을 향상시킨 것이라기보다는 나는 이 대학을 나올 정도로 잠재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지적한다.


왜 지금 교육경제학인가. 김희삼 지음ㆍEBS BOOKS 발행ㆍ424쪽ㆍ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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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평성도 낮아서 문제

효율성과 타당성이 이렇게 낮다면 형평성은 어떨까? 김 교수는 2000년대 이후 경제적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교육을 통해서 개천에서 용이 날 기회는 줄어들었다고 설명한다. 거칠게 말하면 부모의 직업, 학력, 경제력에 자녀의 학업성적이 달려있다는 이야기다. 김 교수는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실증연구들을 제시한다. 예컨대 서울교육종단연구 2010년 자료를 바탕으로 고교별로 아버지가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가진 비율을 계산할 경우, 특성화고(26%) 일반고(60%) 자율고(77%) 특목고(92%) 순서로 높아진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교육경쟁 과열

교육의 문제는 결국 사회의 문제와 맞물려 있다. 김 교수는 “비효율적인 선행·반복학습 위주의 공부 중노동을 강제하는 교육 외적인 현실의 핵심은 사회경제적 불평등”이라면서 “청소년기의 교육경쟁 결과가 생애에 걸친 노동시장 성과의 큰 격차로 이어지는 구조에 기인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학벌이 취업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사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과 근로조건의 격차가 큰 사회가 대학 간판을 따기 위한 비효율적인 교육경쟁을 격화시켰다는 분석이다.

김 교수는 저서에서 교육의 체질을 바꾸는 다양한 해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교육뿐만 아니라 사회를 바꾸는 일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부터 바꾸기를 요구한다. 교육이 개천용을 키우는 사다리가 돼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사다리라는 표현에는 대학과 직장과 및 직업이 서열을 이룬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교육은 유아기부터 노년까지 평생에 걸쳐서 개인의 성장과 사회 적응을 돕는 학습으로 설계해야 한다. 김 교수는 “그런 학습 능력을 누구나 기본적으로 가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공교육의 일차적 사명”이라면서 “360명이 1도씩만 다른 목적지로 달려도 360명 모두 선두가 되고 선구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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