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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북자 5번 찍힌 영상 다 놓치고, 보고도 생략"... 철책 두 번 뚫린 이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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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북자 5번 찍힌 영상 다 놓치고, 보고도 생략"... 철책 두 번 뚫린 이유 있었다

입력
2022.01.05 18:20
수정
2022.01.05 18:49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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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참, 'GOP 월북' 현장 조사 결과 발표
서버시간 점검 안 해 월북자 영상 누락
대대장, '귀순' 오판까지... "총체적 부실"

2014년 12월 강원 인제군 육군 12사단 을지부대 GOP 철책근무 장병들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관계 없음. 인제=배우한 기자

2014년 12월 강원 인제군 육군 12사단 을지부대 GOP 철책근무 장병들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관계 없음. 인제=배우한 기자

탈북민 A씨가 동부전선 육군 22사단 철책을 넘어 재입북한 1일, 월책 장면이 군 감시카메라에 5번이나 찍혔다. 하지만 담당 부대는 엉뚱한 장면만 돌려봤다. 영상 저장서버의 시간이 잘못 설정된 것을 점검하지 않은 탓이다. 부실 대응과 늑장보고가 맞물려 지휘부는 A씨를 뒤늦게 발견하고도 ‘귀순’으로 오판했다. 수차례 기회에도 눈앞에서 월북자를 놓친 이유다. ‘매뉴얼 관리’와 ‘초동조치’, ‘사후대처’ 등 최전방 경계시스템은 어느 것 하나 작동하지 않았다.

합동참모본부는 5일 동부전선 월북과 관련한 현장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월책 당시 A씨를 발견하지 못한 건 전적으로 경계 부대의 부주의 때문이었다. 합참은 “월북자가 일반전초(GOP) 철책을 넘는 장면이 폐쇄회로(CC)TV 3대에 총 5회 포착됐다”고 밝혔다. 그가 월북 당일 GOP 철책에 도달하기 전(낮 12시 51분) 민간인 출입통제선에서 이미 군ㆍ민간 CCTV에 두 차례나 찍혔다. 오후 6시 36분 GOP 철책을 넘을 때 ‘과학화경계시스템’ 경보도 정상 작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군은 2시간 40분 뒤 비무장지대(DMZ)에서 그를 처음 인지한 뒤에도 적극 대응을 하지 않았다. 결국 A씨는 오후 10시 49분 군을 따돌리고 군사분계선(MDL) 너머로 유유히 사라졌다.

엉뚱한 장면 돌려보고 현장 도착 뒤엔 "이상 없음"

민간인 구역에선 방심했다 쳐도 A씨가 GOP 철책을 넘을 때 알아채지 못한 건 변명의 여지가 없다. 철책 광망 센서가 작동해 경보가 울릴 경우 병력이 즉각 투입된다. 여기에 대대 화상 상황보고와 알림 발생 30분 전까지 녹화영상 복기도 이뤄진다. 조사 결과, CCTV엔 월북자가 GOP 남측 철책을 기어오르고, 북측 철책을 넘어가 갈대밭으로 사라지는 장면이 죄다 녹화됐다.

이렇게 자료가 많은데도 실시간 영상 재생은 물론, 녹화영상 복기 때도 다섯 장면을 전부 놓쳤다. 합참 관계자는 “감시병이 확인한 카메라 영상은 흐릿했고, 또 다른 카메라에도 알림이 떴는데 (상황보고를 위해) 화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놓쳤다”고 해명했다. 녹화영상 복기 실수는 더욱 말문을 막히게 한다. 하루 두 번 서버 시간과 실제 시간을 동기화해야 하지만, 매뉴얼을 지키지 않아 저장서버 시간이 실제보다 4분 빠르게 설정돼 있었다. 이 때문에 영상은 월책 직전 장면까지만 복기돼 A씨 형체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강원 동부전선 월북자 이동 경로. 그래픽=강준구 기자

강원 동부전선 월북자 이동 경로. 그래픽=강준구 기자

소초장 등 6명은 광망 센서가 울리고 6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지만, 이땐 A씨가 철책을 넘어 DMZ로 사라진 뒤였다. A씨는 병력 도착 2분 전 남측과 북측 철책을 모두 넘은 것으로 파악됐다. 4분 만에 철책을 돌파한 셈이다. 남측 철책엔 작은 패딩 깃털이, 북측 철책 주변엔 눈을 밟은 발자국이 남았으나 야간이라 식별에도 실패했다.

경보 몰랐던 대대장, '귀순' 염두 초기 작전

지휘ㆍ보고체계도 유명무실했다. 급박한 상황은 대대장과 상급부대에 아예 보고되지 않았다. 군 당국자는 “철책 절단과 절곡 경보는 필수 보고 사안”이라며 “특이점이 없다고 판단해 (대대 지휘통제실에서) 상황을 자체 종료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군의 오판은 끝이 없었다. 대대가 DMZ 내에서 열상감지장비(TOD)로 A씨를 처음 포착한 시간은 오후 9시 17분. 이때까지 A씨는 남쪽 지역에 있었다. 하지만 대대장은 그를 귀순자로 여겨 상급부대에 상황을 전파한 뒤 관련 작전을 수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정보 공유가 전무했던 탓에 2시간 40분을 허공에 날려 버린 셈이다.

A씨의 신변안전 우려도 제기됐다. MDL을 넘은 A씨는 2일 새벽 두 차례 북쪽에서 관측됐지만 이후 행방이 묘연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초 북측 지역에서 신원 미상 4명의 열점이 포착돼 북한군이 월북자를 데려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으나, 합참은 A씨와 나머지 3명의 관측 시점이 엇갈리고, 다른 방향으로 이동했다는 근거를 들어 접촉은 없었다고 추정했다. 그의 생사 여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총체적 경계 무능’에 고개를 숙였다. 서 장관은 “(이번 사건은) 대부분 사람의 잘못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스템보다 대응 미비 문제가 컸다는 것이다. 또 재발방지 대책과 관련, “원인 분석 후 추진할 것은 속도감 있게 할 것”이라고 말해 대규모 문책을 시사했다.

정준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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