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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네 시의 밥집

입력
2022.01.05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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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일보 자료사진

밥맛 좋다고 소개받은 식당에 전화를 걸었다. 언제 여는지 물었다.

"네 시에 열어요." 요새는 어디든 준비시간이라고 하나, 중간에 식당이 쉰다. 재료도 마련하고, 일하는 이들도 좀 쉬려는 거다. 주5일과 노동시간 제한에 따른 법을 지키기 위해 이른바 '브레이크'를 두는 식당도 많다. 점심과 저녁을 파는 식당은 아침 아홉 시에 출근해서 밤 아홉 시가 넘어야 끝난다. 브레이크가 없으면 하루 12시간 노동을 가뿐하게 넘어버려서 곤란하다. 나는 일찌감치 브레이크 지지자였다. 낮에 돌아다니다가 어정쩡한 시간에는 굶거나 편의점에서 식사를 때웠다. 부스스, 손님이 들어서면 식탁 아래 의자 붙여 놓고 옹색하게 누워 쉬고 있는 아주머니 요리사들을 깨우는 게 민망했던 까닭이다.

'네 시면 어정쩡한 시간인데. 특이한 식당이군.'

친구와 도착해보니, 10분 전이다. 시간을 대어 맞추려고 동네를 빙빙 돌았다. 막 들어서니, 전화를 받았던 그 아주머니 셰프이자 사장님은 예의 의자를 붙여 놓고 비스듬히 누워 텔레비전에 몰두 중이시다.

"쉬는 시간이 짧네요."

"쉬는 시간? 난 그런 거 없는데?"

"네 시에 연다면서요?"

"맞어, 새벽 네 시."

오후가 아니었다. 가게를 일별하니, 배달에 쓰는 똬리며, 양은쟁반이 쟁여져 있다. 한 대여섯 명의 상을 지고 갔다가는 목뼈가 작신 꺾일 것 같은 무게감에도 씩씩한 아주머니들의 배달 도구다. 어쨌든 새벽 네 시에 밥을 판다는 얘긴데, 그게 가능해?

"새복밥(새벽밥) 먹는 사람들은 아직도 있어요. 파는 식당이 거의 없잖아. 내가 닫으면 그 양반들 편의점에 가서 컵라면 먹는다고. 그러니 내가 악착같이 여는 거지."

새벽 네 시에 열려면 세 시에는 나온다는 말인가.

나는 길을 걷다가 '아침식사 됩니다'는 문구를 보면 울컥해진다. 왜 아침식사는 하필 파는 것도, 오케이도 아니고 뭔가 수동적으로 온몸의 에너지를 쥐어짜서(물론 내 느낌일 뿐) '된다'고 쓸까. 사실 몇 푼 벌지도 못할 일에 새벽부터 나와서 애를 써봐야 별 볼 일 없으니 아침밥 파는 식당이 별로 없다. 아침밥은, 그래서 억지로, 누군가 희생하듯 '되는' 것이 되어버린 셈이 아닐까.

내가 들른 이 식당은 중부시장 언저리의 자그마한 밥집이었다. 시장은 시간 개념이 다른 곳이다. 대중의 시간과 다르게 흘러간다. 새벽이 시민의 시간으로는 퇴근시간일 수도 있다. 중부시장은 건어물로 유명하지만, 동쪽 언저리는 오래된 식재료 도매상이 아직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다 잠들어 있는 시간에 누군가는 움직이고, 그들을 위해 식당 문을 여는 셈이다. 지금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듯한데, 중림동 약현성당 앞에는 번개도매시장이 열렸다. 원래 현 서소문공원 자리가 큰 공설시장이었는데, 공원이 되어 시장이 없어지고 나서도 여전히 인근에 시장 수요가 있었다. 중림동 길에서 반짝, 시장이 선 게 도깨비시장의 역사라고 한다. 이 시장의 주고객이 바로 서울 시내와 서부지역의 작고 허름한 밥집 사장님들이었다. 영등포시장과 함께 서울에서 제일 싼 재료를 팔았다고 한다. 모양이 좀 못난 것, 어딘가 흠집이 있어서 제 대접을 못 받던 재료들이 많이 팔렸다. 우리가 한 상에 5,000원, 6,000원짜리 밥을 받을 수 있는 건 이런 시장 덕이기도 했다. 이제 어느 동네를 가든지 프랜차이즈가 더 많고, 허물어질 듯 낡은 밥집은 사라져간다. 그래도 시장 언저리에는 새벽 네 시에 누군가 밥을 안친다. 눈물겨운 일이다.


박찬일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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