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력 감축 대비 2016년 GOP 전 구간 설치
기후·센서 오작동 경보 80%… '양치기' 오명
AI 도입한다지만 "부실 장비 되풀이" 우려도
서욱 국방부 장관은 5일 국회에 나와 1년 새 일반전초(GOP) 철책이 두 번이나 뚫린 탈북민 월북 사태를 두고 “대부분 사람의 잘못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담당 부대의 ‘경계 실패’ 책임이 원인이라는 얘기다. 귀책사유는 ‘사람(군)’에 있었지만, 군은 수습 대책으로 ‘과학화경계시스템’ 카드를 다시 만지작거리고 있다. 장비를 최신화하고 인공지능(AI) 기술을 도입해 최전방의 사각지대를 없애겠다는 것이다.
군의 해법이 틀린 건 아니다. 월책 단골 무대가 된 육군 22사단의 경계 범위는 산간과 해안을 합쳐 100㎞에 이른다. 장병들이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경계를 펴도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하지만 군 안팎에서는 첨단 경계 체계를 미심쩍어 한다. 최전방 경계 실패가 드러날 때마다 과학화 확충을 부르짖지만, 고질병이 돼 버린 잦은 오작동 문제는 해소되지 않아 신뢰를 잃은 탓이다. 이번에도 ‘땜질 처방’에 그칠 경우 ‘자동문’이 된 철책의 오명을 벗기 어려울 것이란 비판이 많다.
1분에 3번 "삐삐삐~"... GOP 경보는 '양치기 소년'
과학화경계시스템은 철책 광망 센서나 폐쇄회로(CC)TV 등에서 이상 움직임을 감지하면 상황실에 경보를 울리고 해당 장면을 실시간 중계하는 감시 체계다. 병력 감소에 따른 경계 공백을 메울 목적으로 2010년대 중반 도입됐다. 주로 2015, 2016년 휴전선 구간(249㎞) GOP 철책선에 설치됐다. 앞서 구축된 주요 해안지역까지 더하면 초기 설치 비용만 1,500억 원이 든 대형 사업이었다. 군 당국은 2016년 국방백서에서 “적은 병력으로 넓은 지역을 효율적으로 감시할 수 있다”고 자찬했다.
현실은 달랐다. 첨단장비들은 바람 앞에 맥을 추지 못했다. 바람이 조금만 세게 불어도 수시로 오경보를 남발하는 통에 ‘양치기 소년’으로 전락한 것이다. 국민의힘 이채익 의원실 자료를 보면, 2016~2020년 최전방 11개 사단 GOP 철책 광망 센서가 절단ㆍ절곡 경보를 울려 현장 출동한 사례는 1만2,190여 회에 달한다. 이 중 강풍 등 기상이변 원인이 4,100여 건(34%)이나 됐다. 바람 때문에 3분의 1을 허탕 친 셈이다. 이물질 유입(3,290회ㆍ27%), 동물(2,300회ㆍ19%)도 자주 오작동을 유발했다. 현장 출동이 없었던 경보까지 범위를 넓히면 평균 4분 30초마다 상황이 발생한다는 육군분석평가단의 분석 결과도 있다.
특히 바닷가 쪽 문제가 심각하다. 해안지역은 CCTV가 작은 움직임만 감지해도 경보를 울려댄다. 지난해 2월 22사단 해안에서 일어난 이른바 ‘오리발 귀순’ 당일엔 두 차례 ‘진짜 경보’ 말고도 분당 3번씩 경보가 작동됐다. 위험 신호를 보내도 경각심을 갖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난맥상은 일찍이 예견됐다. 과학화경계시스템 도입이 본격 추진된 2012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은 장비가 날씨에 영향을 받고 야생동물을 구분할 수 없다는 점을 정확히 지적했다. 2006년 시범사업에 착수하고도 10년 가까이 실전 투입을 꺼렸던 까닭이다. 그러나 군은 2012년 여러 단점을 외면하고 사업을 강행했다. 참여 업체들이 계속 기준 미달 판정을 받은 작전요구성능(ROC)의 ‘접촉ㆍ절단 탐지율’을 99%에서 90%로 완화하면서까지 도입을 서둘렀다. 최전방 근무 경험이 많은 한 예비역 간부는 7일 “시범단계부터 일선에선 ‘전방 환경에선 오작동이 많을 것’이라는 목소리를 냈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며 “부대별로 알아서 동물 퇴치 방법을 궁리해야 하는 형편이었다”고 말했다.
모든 책임은 병사 몫... 'AI' 보완책도 우려
문제는 장비들의 낮은 효율성에 그치지 않았다. 통상 상황실에선 감시병 한 명이 9개 안팎의 CCTV를 전부 들여다봐야 한다. 여기에 경보가 울리면 상황 판단과 보고까지 떠맡아야 할 정도로 업무가 과중하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국장은 “부실 장비를 주고는 책임은 병사들이 모두 떠안는, 허울뿐인 기술”이라고 꼬집었다. 사후 관리도 엉망이다. 현재 오경보를 줄이기 위해 부대별로 민감도를 다르게 설정한 탓에 연계 대응 등 체계적 관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수시로 고장이 나 정비 비용 역시 만만치 않다.
군은 장비를 최신화하고 신기술을 덧입혀 미비점을 보완한다는 계획이다. 전동진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은 5일 국회에서 “AI 기술을 적용한 지능화ㆍ과학화 경계시스템 구축을 위해 신속시범획득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군은 오리발 귀순 이후 인근 구간 5개소에 AI 장비를 들여놨고, 다른 한 곳에도 내달 설치를 완료할 예정이다.
요약하면 최신 기술로 오탐지율을 낮추겠다는 건데, 성급함으로 수많은 오류를 범했던 도입 당시 오판을 되풀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과학화경계시스템 도입 때도 병력 감축이라는 명분만 앞세워 무리하게 저성능 장비를 도입했다”면서 “AI 기계 학습은 소규모 시범사업으로 단기간에 숙련되는 것이 아닌데도 조급증에 얽매일 경우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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