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거부' 70대 독거노인, 사망 열흘 만에 발견 "도울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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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거부' 70대 독거노인, 사망 열흘 만에 발견 "도울 수가..."

입력
2022.01.1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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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이웃 제보로 '고독사 위험군' 분류됐지만
정신질환으로 복지 제공 거부하다가 비극
수혜 당사자 동의 기반한 현행 복지제도 한계

지난달 29일 서울 금천구에서 사망 열흘 만에 발견된 이 모씨의 대문 앞에 구청이 두고 간 유동식이 놓여있다. 최주연 기자

서울 금천구에서 70대 독거노인이 집에서 숨진 지 열흘 만에 발견됐다. 노인은 구청에서 고독사 위험이 높다고 판단한 관리 대상이었지만, 정작 그 자신은 오랜 투병 생활로 정상적 판단 능력이 부족한 탓에 복지망 편입을 줄곧 거부해왔다. 이웃들조차 위험을 감지할 만큼 노인에겐 외부 지원이 시급했지만, 당사자 동의 기반의 현행 복지 체계에서 지자체는 적극적 개입을 할 수 없었다. 전문가들은 지역별로 '복지 거부자'와의 소통 및 관리를 강화할 별도 창구를 운영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위기도 높았지만… “복지 거부 땐 방법 없어”

17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금천경찰서는 지난달 29일 시흥동 소재 다세대 주택에서 숨진 여성 노인 이모(76)씨를 발견했다. 경찰은 '이씨의 상태를 봐달라'는 이웃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당시 이씨 집앞엔 구청 사회복지사가 같은 달 23일 두고 간 우유가 놓여 있었다. 경찰은 이씨가 복지사 방문 나흘 전인 19일 지병 악화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웃들에 따르면 이씨는 생전 혼자서 쓰레기를 내다버리지도 못할 만큼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지난해 11월엔 두 차례 길에서 쓰러졌고, 집 안엔 쓰레기와 소변 냄새가 가득했다고 한다. 막내아들이 같은 동네에 살았지만 왕래가 거의 없었다. 한 주민은 "피골이 상접해 걸어다니는 것도 불안해서 내가 쓰레기를 대신 버려준 적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구청은 이웃들의 제보를 받고 이씨를 상대로 위기도 조사를 실시하고 정신적·신체적 위기도가 높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에 따라 방문요양서비스 등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려 했지만 이씨는 거부감을 내비쳤다. 결국 구청은 이씨를 '고독사 위험 사례관리 대상자'로 등록하고 주기적으로 우유나 유동식을 문 앞에 두는 등 기본적인 조치만 유지했다.

지자체 정신건강복지센터는 당시 이씨에게 경계성 조현병이 의심된다는 견해를 내놨다. 지난해 8월부터 이씨 관리를 맡았다는 복지사는 “(이씨는) 외부인 경계가 심하고 누군가 자신을 해칠 수 있다는 불안이 커서 자택 방문 자체가 불가능했다”라며 “현 제도상 본인의 뚜렷한 의지가 없으면 복지 지원이 어렵다”고 말했다.

지원 거부하고 상태 더 나빠지는 악순환

게티이미지뱅크

외부 지원이 절실한 상황인데도 이씨처럼 정신적 문제로 판단력이 떨어져 복지 서비스를 거부하는 사례는 반복되고 있다. 20년 전 피해망상 진단을 받은 A(59)씨는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남편의 월수입 150만 원에 기대 살고 있지만, 과거 병원에서 얻은 트라우마 등으로 복지 연계는 한사코 거부하고 있다. A씨와 차로 4시간 거리에 살고 있다는 가족 김모(36)씨는 “직접 보살펴드릴 수가 없으니 지자체 상담이라도 받게 하고 싶은데, 지원 동의 절차에서 가로막혀 답답하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7월엔 서울 도봉구에서 복지 지원을 거부한 기초생활수급자 노부부가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남편은 알코올 중독, 아내는 조현병을 앓고 있어 외부 소통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남편의 경우 과거 당뇨 합병증으로 피부 괴사가 진행되던 중 간호사와 사회복지사가 방문한 적이 있었으나, 부부가 문을 열어주지 않아 치료를 할 수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만성적 복지 거부자 전용 기관 필요”

복지 거부자는 소외된 환경에서 정신질환을 얻고 이로 인해 더욱 고립되는 악순환에 빠지곤 한다. 이씨 담당 복지사는 "이씨처럼 생명의 위험이 뻔한데도 복지를 거부하는 분들은 최대한 많이 만나서 마음을 여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자체가 지역 내 복지관 일부를 '만성적 복지 거부자'들의 통합관리소로 지정하고 이들과 꾸준히 소통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송인주 서울복지재단 연구위원은 “지자체 인력이 원체 부족한 상황이라 서비스 거부자들은 관심 밖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며 “지역 복지관이 공적·사적 연계망에서 탈락한 이들과 더 적극적인 상호작용을 시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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