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의 벗겨진 피해자 옷만 덮고 철수…경찰 '엽기살인' 초동대응 도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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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의 벗겨진 피해자 옷만 덮고 철수…경찰 '엽기살인' 초동대응 도마에

입력
2022.01.03 19:00
수정
2022.01.04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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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 허위신고받고 출동해 피해자 발견
"술 취해 자고 있다" 말만 믿고 제대로 안 살펴
유족 "경찰 현장대응 과정 낱낱이 밝혀야" 비판
"음주운전 막으려다" 피의자 진술도 강하게 반박

한씨가 A씨를 폭행한 서울 서대문구의 어린이 스포츠센터 모습. 김소희 기자

스포츠센터 대표가 직원을 엽기적 방법으로 폭행해 숨지게 한 사건을 두고 경찰의 초동 대응이 도마에 올랐다. 피의자 한모(41)씨가 술에 취한 채 피해자를 폭행한 뒤 허위로 1차 신고를 했지만,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하의가 모두 벗겨진 채 누워 있는 피해자를 보고도 별다른 확인 절차 없이 철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족은 경찰 대응을 비판하면서 가해자 엄벌을 요구했다.

자신이 폭행하고 "누나가 맞고 있다" 허위 신고

한씨가 A씨를 폭행한 서울 서대문구의 어린이 스포츠센터 모습. 김소희 기자

3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은 지난달 31일 새벽 2시쯤 "어떤 남자가 누나를 때리고 있다"는 한씨의 신고를 접수했다. 하지만 신고 내용은 꾸며진 것으로, 당시 한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서울 서대문구 소재 어린이 스포츠센터에서 20대 직원 A씨를 폭행하다가 경찰이 도착하기 3분여 전에야 멈춘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출동한 경찰은 가정폭력이나 데이트폭력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10분 가까이 머물면서 센터를 수색했지만 한씨가 '누나'라고 칭한 여성을 찾지 못했다. 만취한 한씨는 자초지종을 묻는 경찰에게 "내가 언제 누나라고 했느냐. 어떤 남자가 센터에 쳐들어와 그 사람과 싸운 것뿐이다. 그 사람은 도망갔다"고 둘러댔다. 경찰은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폐쇄회로(CC)TV 영상을 보여달라고 요청했지만 한씨는 거부했다. CCTV 녹화 영상엔 한씨의 폭행 장면이 고스란히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A씨가 반팔티 차림에 하의가 완전히 벗겨진 상태로 센터 바닥에 반듯이 누워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옆엔 한씨가 A씨의 항문 부위를 수차례 찌른 도구로 파악된 70㎝짜리 플라스틱 막대기도 놓여 있었다. A씨는 이 과정에서 간과 심장 등 장기 여러 곳이 손상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폭행 피해로 엉덩이 부위에 멍이 집중적으로 들었지만, 경찰은 A씨를 뒤집어보는 등 확인 작업을 소홀히 해 범행 가능성을 알아채지 못했다. 경찰은 "직원이 술 취해 자고 있다. 도망간 남성과도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한씨의 말을 믿고, A씨 하의를 패딩으로 덮어준 뒤 어깨를 두드리고 가슴에 손을 얹어보는 등 생명 반응만 확인한 뒤 철수했다.

피해자 하의 벗겨져 있었지만 경찰은 지나쳐

게티이미지뱅크

한씨는 7시간쯤 뒤인 31일 오전 9시께 'A씨가 숨을 거뒀다'고 신고했고, 재차 센터로 출동한 경찰은 A씨를 폭행했다는 한씨의 진술을 토대로 그를 폭행치사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그러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A씨가 플라스틱 막대에 장기를 찔려 숨진 것 같다는 1차 부검 소견을 내놓자 경찰은 한씨 혐의를 살인으로 바꿨고, 2일 한씨를 구속했다.

경찰 관계자는 "'누나가 맞는다'는 신고가 접수돼 현장을 찾았던 상황이라 여성을 찾는 데에 집중했던 것 같다"면서 "(A씨는) 혈흔도 없었고 사건과 관계없는 사람이고 술 취해 자고 있다고 하니, (몸을 뒤집어 본다거나 하는 등) 함부로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해명했다. 최관호 서울경찰청장도 이날 취재진에 "(현장 경찰들이) 신고 내용, 현장 상황, 피의자 진술 등을 토대로 살인범죄를 인지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그럼에도 국민적 관점에서 미비점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사실관계를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한씨의 범행 동기 파악에 주력하면서 그의 휴대폰과 차량 블랙박스를 분석할 예정이다. 한씨는 "A씨가 음주운전을 하려고 해서 말리다가 폭행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한씨가 성적 의도로 폭행했을 가능성은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며 "이번 주 내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족 "음주운전 말리려 폭행? 말도 안 돼"

서대문경찰서. 한국일보 자료사진

유족 측은 '음주운전을 말리려 했다'는 한씨의 진술을 강하게 반박했다. 한 유족은 이날 본보에 "(A씨가) 지난달 30일 오후 9시 30분에 '대리운전이 20분째 잡히지 않는다'고 가족 대화방에 말했고, 밤 11시쯤 대리운전업체와 통화한 내역도 있다"고 주장했다.

유족 측은 경찰 수사에 대해서도 "밤 11시부터 경찰이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그리고 경찰이 돌아간 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며 "어떻게 하의가 벗겨진 상태인데 의심 없이 패딩으로 덮어두고 떠날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 또 "아무리 사장과 사이가 좋아도 술 취했다고 속옷을 벗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한씨를)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지혜 기자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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