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로 자리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그간 환경(Environment)-사회적책임(Social)에 치중
소극적이었던 지배구조(Governance) 개선 움직임
#최근 한화그룹은 이사회에서 투명하고 건전한 지배구조 확립과 이사회 권한 강화 및 주주 권익보호 등을 골자로 한 ‘기업지배구조헌장’을 제정했다. 김승연 회장 체제 이후인 '3세 경영' 승계작업이 진행 중인 한화그룹의 이런 행보에 대해 재계 안팎에선 향후 그룹 경영 책임과 권한을 총수 일가에서 이사회 및 주주 쪽으로 옮기기 위한 사전 포석이란 평가도 나온다.
대기업 총수들 "지배구조 개선" 움직임
3일 재계에 따르면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이 대세로 자리한 가운데 환경(Environment)과 사회적책임(Social)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던 지배구조(Governance)의 개선 움직임이 속속 감지되고 있다. 오너 리스크 우려 해소나 투명 경영에 대한 요구가 갈수록 확대되면서 그동안 부담스러웠던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된 각 기업들의 고민이 본격적으로 현실에 반영되는 모양새다. 그간 ‘성장’에 주력해 온 각 기업 내부의 의사결정 시스템이 오너 일가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였던 과거 모습과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다.
지배구조 개선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대기업 전반에 퍼지는 모습이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겸하고 있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SK의 ‘거버넌스 스토리 워크숍’ 사례를 들면서, 지배구조 개선 필요성을 언급했다. 최 회장은 “이젠 인사 평가, 최고경영자(CEO) 선임 등의 권한들은 (총수가 아닌)이사회를 통해 행사돼야 한다”며 “이런 시스템으로 빨리 가기 위해서 그룹의 전 사외이사들이 만나는 장을 만들고, 새 지배구조를 만들자고 의견을 냈다”고 말했다.
해외 사례 스터디, 자체 감시기구 설립
최 회장이 지난달 초 지배구조 개선 본보기로 알려진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의 투자사(EQT파트너스) 콘니 욘슨 회장과 가진 회동도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 최 회장은 이 회동에서 지배구조 혁신에 대한 의견을 폭넓게 교환한 것으로 전해졌다. 160년 전통의 발렌베리 가문은 그룹 내 가족 세습을 이어가면서도 일렉트로룩스(가전), 아스트라제네카(제약), 스토라엔소(제지) 등 가문 소속 기업들끼리 출자관계로 연결되지 않는 투명한 지배구조를 갖춘 경영 방식으로 유명하다.
일찌감치 추진된 국내 다른 기업들의 지배구조 개선 움직임도 눈에 띈다. 삼성그룹은 지난 2020년 2월부터 삼성전자 등 여러 계열사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준법감시위원회를 설치해 투명 경영 의지를 내비쳤다. LG그룹도 올해 상장 계열사 이사회에 ESG위원회와 함께 공정거래 심의기구인 내부거래위원회를 두고 △공정거래법상 사익 편취 규제 대상 거래 △대규모 내부거래 △상법상 자기거래 △회사 사업기회 유용 △특수관계인과의 거래 등 내부거래의 투명성 심의를 강화했다.
갈 길 멀었지만… "한국형 지배구조 개선 필요"
다만 그룹 전반에 걸친 지배구조 개선이 완성되기까진 갈 길이 멀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지난해 9월 말 기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총수 체제 대기업집단 27곳과 그에 소속된 지주회사 32곳을 대상으로 한 ‘2021년 지주회사 소유출자 현황 및 수익구조 분석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들 지주회사에서 총수와 일가의 평균 지분율은 각각 26%, 50.1%로 여전히 총수일가에 지분율이 집중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가운데 총수 일가 지분율이 20%(상장사는 30%) 이상인 사익 편취 규제 대상 회사는 96개(42.7%)에 달했다. 사익 편취 규제 사각지대 회사 45곳을 포함하면 비중은 62.7%까지 올라갔다.
한편에선 지배구조 개선을 지나치게 서두를 경우,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 회장은 삼성그룹을 예로 들며 “총수가 반도체에 뛰어들어 어려운 고비를 넘었던 스토리를 보면, 누가 그런 리스크를 감당했겠느냐”며 “3, 4세 경영으로 가면서 (지배구조 형태가)천천히 변하게 돼 있는데, 우리는 (지배구조 개선 압박이)급하다”고 우려를 전하기도 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도 “350년 역사의 독일기업 ‘머크’의 경우, 이사회를 중심으로 가문과 전문경영인이 돌아가며 그룹을 총괄하며 지속돼 왔다”며 “총수 일가 경영 자체에 돌을 던지기보다, 일단 이사회가 제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개편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게 지속 가능한 경영 환경을 만드는 방향”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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