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기동 지음 '아시아의 인류 진화와 구석기문화'
오늘날 인류의 기원은 70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시작됐으며 이후 동쪽으로 확산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 이론에서 우리가 사는 동아시아 지역은 인류의 진화와 확산에서 가장 늦은 단계에 해당한다.
그런데 아시아 지역에서의 인류 진화 및 구석기고고학 연구는 여전히 서구적 방법론과 패러다임이 지배하고 있다. 그 결과 인류의 진화를 아시아를 포함한 전체적인 흐름에서 고민하는 연구나 아시아지역만을 다루는 문화 연구가 거의 이뤄지지 못한 상태다.
선사시대 고고학 전문가로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배기동 한양대 명예교수는 지난달 발간한 '아시아의 인류 진화와 구석기 문화'(한양대출판부)에서 이제 아시아인의 독자적인 시각으로 아시아 구석기 문화를 고찰할 시점이 되었다고 강조했다.
저자는 고고학이라는 학문이 서구에서 발전했기에 아시아의 선사고고학도 서구적 전통에 의존했음을 지적하고, 동아시아지역 구석기시대의 인류 진화와 문화 진화 과정에 대해 새로운 시각에서 통시적이고 종합적인 설명이 이뤄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특히 최근 유전자 분석 등 과학이 발전하고 아시아 각국의 선사고고학이 발달하면서 고고학적 자료가 증가했는데, 이전의 방법론으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책은 아프리카를 탈출한 인류가 동쪽으로 확산한 후 200만 년 동안 동아시아지역에서 인류가 진화하고 구석기문화를 발달시킨 과정을 담았다. 저자는 특히 아시아 지역은 인류의 다양한 적응이 필요한 지역이었음에 주목한다. 열대우림부터 북극지방, 해안부터 고원에 이르는 변화무쌍한 환경에 인류는 다양한 방식으로 적응해야 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지역환경에 맞춘 문화진화 현상이 있었다는 점에서 아시아의 진화과정을 이해하지 않고는 인류의 진화과정과 적응능력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석기에 대한 연구도 제작 기술보다는 인류가 환경에 적응한 행위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저자가 구석기 고고학의 요체는 인간이 지적능력으로 환경을 극복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 부분이 흥미롭다. 오늘날 인류가 우주로 갈 수 있는 것도 인간의 생물학적 제한조건을 혁파하는 법을 터득하였기 때문이라며 그러한 능력은 이미 구석기시대에 완성되었다고 설명한다.
저자의 30여 년 고고학 연구를 집대성한 책으로 방대한 자료가 담겼지만 비전공자도 이해하기 쉬워 교양서로도 충분하다. 지난 24일 한국대학출판협회가 발표한 학술 부문 최우수도서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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