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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한자투성이 안내판은 그만"… 눈높이 문화재 안내에 팔 걷은 일곱 초등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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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한자투성이 안내판은 그만"… 눈높이 문화재 안내에 팔 걷은 일곱 초등생

입력
2021.12.27 04:0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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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교육대안동부설초 모둠 '문화재 까투리'>
한자·전문용어 많은 문자 위주 문화재 안내판
"어린이 수준에 맞도록" 안내 영상 만들기 작업
안동 문화재 안내판에 QR코드 부착하는 성과
전국적 주목 속 활동 확대… "언젠가 경복궁도"

대구교육대안동부설초등학교 문화재 까투리 모둠 어린이들이 20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정민양 김민서양 은서연양 안리우군 이지환군 권태율군 박찬희군. 안동=오지혜 기자

대구교육대안동부설초등학교 문화재 까투리 모둠 어린이들이 20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정민양 김민서양 은서연양 안리우군 이지환군 권태율군 박찬희군. 안동=오지혜 기자

"처음에는 외계어인 줄 알았어요. 향사(享祀·신령에 음식을 바치는 의식)는 황사를 잘못 쓴 줄 알았다니까요?"

문화재 안내판 '다시 쓰기'에 의기투합한 초등 동급생 7명은 어려운 한자어와 전문용어로 채워진 현행 안내판에 대해 이 같은 촌철살인급 감상평을 쏟아냈다. 문화재를 보고 배워야 할 어린이 관람객의 눈높이를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어린이들도 '배움의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말할 때만큼은 표정이 사뭇 진지한, 평소엔 영락없는 개구쟁이 5학년생인 이들은 전국 주요 문화재 안내판을 제 손으로 쉽게 쓰겠다는 열의에 차 있다.

글도 싫은데 한자 가득… "우리가 바꿔보자"

경북 안동에 위치한 도산서원에 문화재 까투리 모둠이 만든 어린이용 문화재 안내 영상을 볼 수 있는 까투리 모양 QR코드가 붙어 있다. 안동=오지혜 기자

경북 안동에 위치한 도산서원에 문화재 까투리 모둠이 만든 어린이용 문화재 안내 영상을 볼 수 있는 까투리 모양 QR코드가 붙어 있다. 안동=오지혜 기자

신나는 겨울방학을 앞둔 이달 20일, 경북 안동시에서 만난 학생 동아리 '문화재 까투리(지도교사 신창훈)'는 대구교육대안동부설초등학교 5학년 7명(이정민 권태율 김민서 박찬희 안리우 은서연 이지환)으로 이뤄져 있다. 안동을 대표하는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의 동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엄마 까투리'에서 모둠 이름을 따왔는데, 만화 속 아기 까투리들이 모험하며 자라는 모습이 자신들과 닮았다고 생각했단다. 이들의 모험은 물론 '문화재 안내판 바꾸기'다.

여정의 시작은 지난해 이 학교 4학년 사회 시간에 진행된 문화재 조사 수업이었다. 신창훈 교사는 "발표자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베껴와서 말하고, 듣는 아이들도 '이걸 왜 하는 건가'라는 표정을 짓더라"며 "어린이 시선에 맞게 문화재 안내판을 다시 만드는 수업을 착안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4학년 72명 모두가 어린이용 안내판 만들기에 동참했다.

경북 안동에 위치한 도산서원에 문화재 까투리 모둠이 만든 어린이용 문화재 안내 영상. QR코드에 접속하면 문화재에 대한 설명을 시청할 수 있다. 안동=오지혜 기자

경북 안동에 위치한 도산서원에 문화재 까투리 모둠이 만든 어린이용 문화재 안내 영상. QR코드에 접속하면 문화재에 대한 설명을 시청할 수 있다. 안동=오지혜 기자

용어만 쉽게 바꾼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고친 안내판으로 학생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는데, 저학년 사이에서 '기존 안내판이 더 이해하기 쉽다'는 답변이 우세했던 것이다. 민서 양은 "이유를 물어보니 '친구 따라 골랐다'는 엉뚱한 대답이 나왔다"며 "글을 싫어하다 보니 두 안내판을 읽어보지도 않고 고른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문화재 안내판 제작 방향을 글에서 영상으로 틀게 된 계기가 됐다. 한발 나아가, 기존 문화재 안내판에 까투리 모양 QR코드를 부착하고 이를 휴대폰으로 인식하면 문화재 안내 영상을 볼 수 있게 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현장 안내판을 최소한만 설치하도록 한 문화재청 지침도 감안한 현실적 방안이었다. 초등생들의 푸릇한 제안은 안동시청의 협조를 통해 호계서원에서 현실화했다.

다음 도전 과제는 안동 문화재 4개

대구교육대안동부설초등학교 문화재 까투리 모둠원인 이지환군 권태율군 박찬희군이 20일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안동=오지혜 기자

대구교육대안동부설초등학교 문화재 까투리 모둠원인 이지환군 권태율군 박찬희군이 20일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안동=오지혜 기자

일회성으로 그칠 수도 있었던 이 과제는 5학년으로 진급한 7명이 모둠으로 뭉치면서 장기 프로젝트가 됐다. 각자 결심한 이유도 분명했다. 정민양은 "어린이들이 문화재 안내판을 읽지도 않고 무관심한 모습을 보고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지환군은 "사회 수업을 듣는 것보다 활동하는 게 더 재미있었다"고, 태율군은 "문화재를 조사하고 영상까지 만드는 게 흥미로웠다"고 했다.

우선 안동 시내 문화재 안내판을 바꿔보자는 계획으로, 이들은 하회마을, 병산서원, 도산서원, 임청각을 올해 목표로 삼았다. 각자 관심 있는 문화재들을 택해 모둠 내 작은 팀을 꾸렸다. 문화재 조사를 통해 안내 영상 시나리오 초안을 만들면 선생님이 검수해주는 방식이었다. 내레이션은 정민양이, 영상 제작은 시청이 맡았다.

대구교육대안동부설초등학교 문화재 까투리 모둠원인 이정민양 김민서양 안리우군 은서연양이 20일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안동=오지혜 기자

대구교육대안동부설초등학교 문화재 까투리 모둠원인 이정민양 김민서양 안리우군 은서연양이 20일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안동=오지혜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조심해가면서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활동에 지칠 법도 하지만, 7명의 '까투리'들은 큰 어려움도 다툼도 없었다고 한다. "우리는 그런 애들이 아니에요. 철이 들었다구요" 리우군이 단호하게 손을 내저으며 한 말이다. "계속 야근하신 선생님이 힘드셨을 것"이란 찬희 군의 너스레엔 의젓함이 묻어났다.

"경복궁도 바꿔보고 싶어요"

대구교육대안동부설초등학교 문화재 까투리 모둠 어린이들이 20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안동=오지혜 기자

대구교육대안동부설초등학교 문화재 까투리 모둠 어린이들이 20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안동=오지혜 기자

동아리를 결성해 진행한 두 번째 도전은 더 큰 성과를 안겼다. 아이들은 지난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진행한 제12회 청소년사회참여발표대회에서 국회의장상(최고상)을 받았는데, 초등학생 수상은 2009년 대회 신설 이래 처음이다. 또 문화재청 초청으로 '2021 문화재안내판 개선사업 우수사례 시상식'에 참석해 담당 공무원들 앞에서 활동 내용을 발표하고 특별상을 받았다.

문화재 까투리 모둠은 이 활동을 전국으로 넓혀볼 참이다. 서연양은 "경주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었는데, 문화재청에서 좋게 봐주셔서 다른 지역에서도 시행될 수 있다고 하더라"라며 "내년에도 좋은 일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고 했다. 언젠간 서울 복판으로 진출하고 싶단다. "경복궁이나 종묘는 해외 여행객도 많이 찾는 우리나라 대표 문화재잖아요. 한번 제대로 바꿔보고 싶어요"

안동= 오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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