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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무엇보다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선물

입력
2021.12.24 22:00
수정
2022.02.04 12:55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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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산타클로스가 실재하지 않는다는 건 대여섯 살만 되어도 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건 그렇게 하는 편이 이득이라는 걸 아이들이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아홉 살 애런과 일곱 살 모 형제도 그랬다. 산타를 만나러 쇼핑센터에 가자는 부모님의 제안에 코웃음을 치면서도 순진한 얼굴로 따라나섰다. 크리스마스 선물은 챙겨야 했으니까.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들어선 쇼핑몰에서는 처음 보는 크리스마스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빨간 종이를 나눠주고는 거기에다 '크리스마스에 받고 싶은 것'을 써보라고 했다. 형제는 진지하게 고민해서 산타에게 받고 싶은 선물 목록을 앞뒤로 가득 채웠다.

긴 줄을 기다려 산타 앞에 빨간 종이를 내밀었을 때, 가짜 티가 줄줄 나는 산타는 선물 대신 이상한 말을 내뱉었다. "너희들이 원한다면, 지금까지 한 번도 바란 적 없지만, 이 종이에 쓴 것들보다 훨씬 근사한 선물을 줄 수 있단다." 쪽지를 내밀면서 산타는 덧붙였다. "여기에 내일 만날 장소와 시간을 적어두었어." 쪽지에 적힌 장소에 도착해보니 전날 산타 역할을 했던 사람은 소아암 전문병원에서 일하는 크리스토퍼 링글 박사였다. 링글 박사는 애런과 모에게 크리스마스 시즌 동안 산타를 보좌하는 요정 역할을 맡아달라고 했다. 병원에 있는 아이들에게 소원을 적을 수 있는 빨간 종이와 사탕을 건네는 일이었다. 실망스러웠지만 달리 재미있는 일도 없던 형제는 산타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이 일이 자기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게 되리라는 건 상상조차 못 한 채로.

이야기는 어른인 우리의 짐작을 훌쩍 벗어난 방향으로 분주하게 이어진다. 구김살 없이 자라온 애런과 모는 난생처음 만나는 병원 복도의 어두운 풍경에 움찔거리면서도 묘한 자력에 이끌리듯 자고 일어나면 병원으로 달려간다. 하지만 일곱 살 모에게 난공불락과 같은 과제가 있었으니, 'ED.-12/79'라는 암호가 적힌 병실 문의 주인과 대면하는 일이었다. 종이봉투를 머리에 뒤집어쓴 채 방문을 열어주지도, 얼굴을 보여주지도 않는 소녀 카트리나.

매일 터지는 사건 사고를 겪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이 아이들은 꼭꼭 감춰두었던 아픔을 열어 보이고 위로받는 법을 터득해 나간다. 오랫동안 굳게 닫혔던 소아암 병동 역시 활짝 열려서, 아이들은 서로의 방을 스스럼없이 드나드는 친구가 되었다. 예측불허의 부대낌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일상의 파장들은 어른들이 도저히 흉내 내지 못할 빛과 무늬를 빚어낸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서로의 그늘을 살피며,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이들…

오래전 미국 작가 케빈 밀른이 쓴 이 소설 '종이봉투 크리스마스'를 읽으면서 가장 부러웠던 건 이토록 멋진 크리스마스 선물을 구상한 젊은 아빠의 마음씀이었다. 감수성 예민한 아이들에게 백화점에서 산 선물꾸러미 대신, 코카콜라의 상술에 물들기 전 성 니콜라스 축일의 진짜 의미를 오롯이 체화하도록 이끌어주는 지혜라니.

본디 선량하기 그지없는 이 축일이 다시 돌아왔다. 애런과 모의 모험만큼은 아니라도, 누군가의 행복을 내 앞에 놓을 때만 체험하는 충만한 행복을 우리 아이들이 배우도록 주변에서 도와줬으면 좋겠다. 빨간 옷의 산타가 손짓하는 쇼핑 시즌 이면에 있는, 이날의 온전한 의미를 터득하는 것만큼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선물은 없을 테니 말이다.


지평님 황소자리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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