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에 푹 빠진 日 젊은이들... '#한국풍' 인기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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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에 푹 빠진 日 젊은이들... '#한국풍' 인기 상징

입력
2021.12.25 04:40
수정
2021.12.25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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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일본 젊은이들에 부는 한국어 붐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토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최근 인터넷에서 확산 중인 한일 간의 언어 유희는 한일 젊은이들이 서로에 대한 문화적 호기심을 바탕으로 부지런히 발전시킨 결과다. 역사 인식의 부재에서 비롯된 불건전한 사건으로 치부하는 대신, 문화적 연대의 잠재력을 가진 인터넷 현상으로 보는 게 적절하다. 일러스트 김일영

'꿀잼' '심쿵'... 일본의 SNS에서는 한글 붐

일본의 젊은이들 사이에 한국어 붐이 불고 있다. ‘アンニョンハセヨ (안녕하세요)’, ‘サランヘヨ (사랑해요)’, ‘ケンチャナヨ(괜찮아요)’, ‘マシッソヨ(맛있어요)’ 등 자주 쓰이는 한국어 관용어를 가타카나(일본어 표기법의 일종)로 바꾸어 쓰는 정도라면 이전부터 자주 보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아예 한글로 글을 써 올리는 것이 유행이다. 실제로 일본어 타임라인 속에 ‘꿀잼’, ‘심쿵’ ‘멘붕’ 등 한글 은어가 콕콕 박혀 있는 것을 보면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어디서 이런 표현을 배웠을까 흥미도 솟는다. 개중에는 맞춤법이나 어법이 어색한 표현도 적지 않아서 어딘가 인터넷에서 긁어 왔거나 자동 번역기를 돌렸구나 싶어서 웃음이 나올 때도 있다. ‘ㅋㅋ’ 나 ‘ㅎㅎ’ 등의 한국에서 ‘웃음’의 상징으로 자주 쓰는 자음 표현도 출몰하고, ‘ㅊㅋㅊㅋ (‘축하한다’라는 뜻), ‘ㄹㅇ? (진짜를 뜻하는 영단어 ‘리얼’의 초성에 물음표가 붙어서 ‘진짜야?’라는 뜻)’ 등 한국의 기성 세대들을 절망에 빠뜨리는 ‘초성 놀이’도 눈에 띈다. 일본어와 한국어가 뒤죽박죽 뒤섞인 신조어도 있다. 예를 들어 ‘カムサ(가무사)’는 우리말의 ‘감사’를 가타카나로 표기한 것으로 SNS에서 자주 접하는 표현인데, 일본어로 ‘한다’는 뜻의 ‘쓰루(する)’가 결합해 ‘カムサする(가무사-쓰루)’라는 동사가 되기도 한다. 일단 동사로 변신하면 다양한 어미로 활용할 수 있으니, 일본어도 아니고 한국어도 아닌 하이브리드한 표현이 한층 다양해진다. ‘チンチャそれな (찐차-소레나)’ 같은 은어 표현도 있다. ‘チンチャ(찐차)’는 우리말의 ‘진짜’를 일본어로 표기한 것인데, 여기에 ‘그건 그렇지’ 정도로 번역되는 구어 표현 ‘それな (소레나)’가 붙었다. 일본의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맞아, 맞아’, ‘정말 그렇지’라고 쿨하게 동조하는 관용구로 즐겨 사용된다.

최근 일본의 대학생들과 한국어 붐에 대해 토론할 기회가 있었는데, SNS 속 한글 붐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도 적지 않았다.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으니 오히려 반감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의 한국어 유행이 스러질 줄 모르는 최근의 경향에 대해서는 “사회 생활에서 한국어를 활용할 여지가 늘었다”거나 “한국어 능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아졌다”는 등 외국어로서 한국어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사실도 거론되었다. 다만, 개별 SNS에 대한 부정적 평가나 실용적 이유와는 별도로, 소셜 미디어에 한글로 글을 올리는 것이 그 자체로 유행에 민감하고 세련되었다는 이미지를 준다는 사실에는 모두 동의했다. 실제로 SNS의 한글 붐은 한국 대중 문화에 친숙할 뿐 아니라 최신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10대에서 20대 초반 여성들이 이끌고 있다. 이들에게 한글은 세련되고 쿨한 최신 트렌드다. SNS 계정에 한국어 표현이나 한글을 올리는 것은 ‘스웩’을 뽐내려는 자기과시적 유희의 성격이 강한 것이다.

일본 사회에서 ‘한국’이라는 기호, 극적인 변화

2000년대 초반 드라마 ‘겨울 연가’에서 한류 붐이 시작되었을 때만 해도, 일본에서 한국 문화는 세련됨보다는 편안함, 새로움보다는 친숙함을 떠올리게 하는 대상이었다. 이때부터 한글에 대한 호감이 커지고 배우려는 사람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순수하게 이웃 나라에 대한 문화적 관심과 호의를 반영한 것일 뿐, 한국 혹은 한국 문화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가 매우 높았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지금의 젊은 층에게는 한국이라는 키워드가 그 자체로 최첨단, 세련됨, 멋짐, 깔끔함 등 긍정적 이미지를 어필하는 문화적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의 SNS에서 ‘韓国っぽ (한국풍)’은 최고로 인기가 좋은 해시태그다. 실제로는 한국이나 한국 문화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도 가장 ‘핫’하다는 장소, 요리, 패션 등에 관한 정보에 어김없이 이 해시태그가 붙는다.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는 ‘渡韓ごっこ (한국 여행 놀이)’라는 것이 유행한다. 일본 국내의 한국풍을 최대한 끌어 모아 한국을 여행하는 듯한 경험을 즐기자는, 코로나 국면에 생겨난 신풍조다. 한국의 컵라면과 소주, ‘치맥’ 세트 등을 준비하고 케이팝 아이돌의 라이브나 드라마 영상을 보면서 ‘호캉스’를 즐기는 것이 전형적인 ‘놀이법’인데, 아예 대형 스크린을 설치한 룸에 한국식 안주와 소주 등을 서비스로 제공하는 호텔 패키지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일본 사회가 한국 문화에 대해 갖는 호기심은 ‘0’에 가까웠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이라는 키워드가 일본 젊은 세대의 문화적 호감을 독점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일본 사회에서 한국이라는 ‘기호’는 극적으로 변화했다. 그 변화된 사회적 인식 속에서 한글을 이용한 언어 유희가 젊은이들 사이에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시대의 ‘피진’, 문화 현상으로 재평가할 필요

서로 다른 글과 말이 뒤섞인 잡종적 언어를 ‘피진(pidgin)’이라고 한다. 19세기 식민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전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피진이 등장했다. 예를 들어,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던 지역에서 현지 언어와 뒤죽박죽 섞여서 ‘이상한’ 영어가 한동안 통용되곤 했다. 수많은 피진들이 이렇게 한시적으로 등장했다가 사라졌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피진을 모국어로 삼는 인구가 많아지면 독립적인 언어 체계로 자리잡기도 했다. 서로 다른 언어가 만나고, 섞이고, 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문화 현상이다. 일본의 SNS에서 일본어와 한국어가 뒤섞이는 현상도 서로 다른 두 언어가 혼용되고 변형된다는 점에서 현대판 피진이다. 식민주의 시대의 피진은 폭력적, 강압적 지배의 부산물이었다. 설혹 그것이 필요에 따른 자율적인 선택에 의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본질적으로는 피지배자에게 지배자의 언어를 받아들일 것을 강제하는 일방적인 과정이었다. 이에 비해 요즈음 일본의 SNS에 출몰하는 ‘한국어 피진’은 문화적 호기심과 자발적인 호감에서 시작된 언어 유희라는 점에서 성격이 판이하다. 스마트폰과 자동번역기 앱을 이용하면 외국어 장벽쯤은 수월하게 뛰어넘을 수 있다. 그런 인터넷 정보 환경 속에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언어 놀이가 자연스럽게 탄생한 것이다.

한국의 젊은이들 역시 오래전부터 일본어를 활용한 언어 유희를 즐겨 왔다. ‘가와이~(귀엽다)’, ‘오이시이~(맛있다)’ 등의 간단한 일본어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도 친숙하다. 폼나는 패션이나 음악 등에 대해 ‘간지(느낌이라는 뜻의 일본어 ‘感じ’를 우리말로 옮긴 것)가 있다’고 표현하는 등 악의 없이 일본어를 섞은 구어 표현도 적지 않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한국의 젊은이들 사이에 ‘일본어 피진’이 유행해 왔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한국 사회에서 일본어나 일본어식 표현은 일제강점기에 뿌리내린 구악으로 타파의 대상으로 인식되어 왔다. 나 역시 어느 정도 그 인식에 공감한다. 불필요한 한자어로 뒤범벅된 법조문 등 100여 년 전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본식 언어 관행은 실정에 맞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최근 인터넷을 중심으로 꽃피고 있는 한일 간의 언어 유희는 한일 젊은이들이 서로에 대한 문화적 호기심 속에서 부지런히 발전시킨 결과다. 역사 인식의 부재에서 비롯된 불건전한 사건이라고 재단하기보다는, 문화적 연대의 잠재력을 가진 인터넷 현상으로 재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김경화 미디어 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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