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입법회 선거, 90석 의석 친중파가 싹쓸이
민주 후보 출마 봉쇄, 투표율 30%로 역대 최저
"선거 사기, 공신력과 정통성에 타격" 지적 불구
中 "홍콩의 민주주의를 향한 첫걸음" 자화자찬
사실상 전멸이었다. 19일 치러진 홍콩 입법회(우리의 국회) 선거는 친중파가 90개 의석을 거의 싹쓸이했다. 민주파 후보들이 출마를 거부하거나 기회를 박탈당한 가운데 11명의 중도진영 후보마저 큰 표차로 줄줄이 고배를 마셨다. 투표율은 사상 최저인 30%에 그쳤다. 중국이 ‘애국자가 다스리는 홍콩'을 기조로 선거제를 전면 개편한 것에 항의해 유권자의 70%는 등을 돌렸다. 투표율을 최대한 높여 홍콩에 대한 강경 정책의 정당성을 과시하려던 중국의 계획은 틀어졌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0일 “10개 지역구에 출마한 중도성향 또는 무당파 후보들이 모두 패했다”고 전했다. 다만 직능대표 선거에서 중도파 틱치연 후보가 당선됐다. 그는 명보에 "90석 의회에서 1대 89의 상황에 직면하게 됐지만 최선을 다해 대중에게 내가 지지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반면 영국 BBC는 "그도 이미 다른 후보들처럼 베이징에 대한 충성맹세를 거쳐 출마한 것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홍콩 선거관리위원회는 전날 진행된 입법회 선거에 전체 유권자 447만2,863명 중 135만680명이 참여해 투표율이 30.2%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2016년 입법회 선거 투표율 58.3%의 절반에 불과한 수치다. 등록 유권자 447만 명 가운데 300만 명 넘게 투표를 거부한 것이다. 이전까지 최저 투표율은 2000년의 43.5%였다.
2019년 11월 입법의원(구의원) 선거 때 투표율은 71%까지 치솟았다. 당시 야권은 민주화 열기에 힘입어 의석의 86%를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지난해 6월 30일 홍콩 국가보안법으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법 시행 1년간 114명이 체포되고 61명이 기소됐다. 집회·시위를 금지하고 민주진영이 사실상 궤멸되면서 무게추가 친중파로 급속히 기울었다.
이번 선거는 중국이 3월 홍콩 선거제를 개편한 이후 처음 치러졌다. 의원 수를 70명에서 90명으로 늘렸지만 주민들이 직접 뽑는 지역구 의원 수는 35명에서 20명으로 줄였다. 나머지 30명 직능대표는 업계 간접선거로, 40명의 의원은 중국이 장악한 선거위원회가 지명해 선출했다. 그나마 20명 남은 지역구에 출마하려 해도 충성맹세를 비롯해 독배나 다름없는 홍콩 정부의 자격심사를 거쳐야 했다.
이에 반발해 범민주진영은 후보를 내지 않았다. 선거에 출마한 전체 153명의 후보 가운데 중도성향과 무당파 11명을 제외하곤 모두 친중파로 꾸려졌다. 대신 야권은 선거제 개편에 항의해 투표 보이콧과 백지투표 운동을 벌였다. 낮은 투표율로 선거의 부당함을 알리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경쟁이 사라지고 일방구도로 치러지는 선거에 유권자들의 관심도 싸늘하게 식었다.
홍콩 정부는 투표율을 높이려 안간힘을 썼다. 중국 본토 거주 홍콩인들의 투표 참여를 위해 처음으로 접경지역에 투표소를 설치하고 격리를 면제했다. 버스와 지하철, 트램 등 대중교통은 무료로 운행했다. 동시에 선거 방해 혐의로 해외에 머물고 있는 네이선 로 등 민주운동가 7명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투표 방해나 무효표 독려 행위를 할 경우 최대 3년 이하 징역이나 20만 홍콩달러의 벌금에 처해질 것이라고 누차 경고하면서 관련 혐의로 10명을 체포하고 2명을 기소했다.
하지만 투표율이 기대에 못 미치자 자화자찬으로 당혹함을 감추는 데 급급했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한 표를 행사한 135만 명의 유권자는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라며 “의원 선출뿐만 아니라 개선된 선거제도에 대한 지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홍콩 선거를 파괴하려는 외세의 거짓말과 모략을 부숴버리고, 새로운 입법회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반영한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환구시보는 “순조롭게 투표가 마무리돼 홍콩이 양질의 민주주의를 향한 발걸음을 내디뎠다”면서 “지난해 미국 대선이 120년 만에 가장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지만 미국 정치는 심각한 분열과 대립으로 민주주의에 먹칠을 했다”고 맹공을 폈다.
반면 시민단체 ‘홍콩 워치’는 “정부에 반대하는 인사들이 출마하지 않은 이번 선거는 사기"라고 비판했다. 케네스 찬 홍콩 침례대 부교수는 “투표율이 역대 최저인 30%에 불과한 것은 이번 총선의 공신력과 입법회의 정통성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일갈했다. 여론조사기관 홍콩민의연구소의 청킴화 부총재도 “얼굴이나 이름조차 모르는 후보들이 당선된다 한들 어떻게 대중을 대표할 수 있나?"라고 지적했다. SCMP는 “홍콩 전역의 투표소에는 사람이 적었지만 다른 지역은 축제 분위기 속에서 버스와 지하철 무료 승차를 즐기는 사람들로 넘쳐났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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