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편성권, 대통령 직속 신설 부서로 이전
기재부, 문 정부 확장재정 적극 뒷받침
현 정부와 차별화... '정치적 쇼잉' 비판도
기획재정부 권한 축소를 공식화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대통령 직속 ‘기획예산처’ 신설 검토에 나섰다. 자신의 국정철학에 맞춰 예산을 편성·집행하겠다는 취지다. 야당은 “국가 예산을 마음대로 주무르겠다는 뜻”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예산 편성·집행 신속하게' 명분에 기획예산처 14년 만에 부활하나
19일 이 후보 캠프에 따르면 이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기재부에서 예산·기획 기능을 떼어내 청와대 직할로 기획예산처(가칭)를 설치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고려중이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 때처럼 추진하려던 정책이 기재부 반대에 부딪혀 좌초·약화되는 것을 아예 차단하겠다는 구상이다. 앞서 지난달 18일 기자간담회에서 이 후보는 “기재부가 예산 권한으로 다른 부처의 상급기관 노릇을 하고 있다”며 “기재부에서 예산 기능을 분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간 기재부의 권한 집중에 대해 날을 세워온 이 후보가 지난달 공식적으로 기재부 기능 분산을 언급한 이후 예산 편성·집행권을 청와대나 국무총리 산하로 이전할 것이란 관측이 나왔었다.
이재명 후보의 싱크탱크인 ‘대한민국의 성장과 공정을 위한 국회포럼’은 이미 지난 10월 토론회에서 예산기능을 총리실 산하로 두는 구상까지 내놓았다. 각 부처의 조정업무를 담당하는 총리실이 예산 편성권을 쥐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 후보는 예산 편성권 등을 총리실 산하로 이전하기 보단, 자신이 직접 ‘컨트롤’할 수 있도록 새 부처를 만들어 대통령 직속 부서로 두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앞서 이 후보가 “미국은 백악관에 예산실이 있다. 그런 것도 고려할 때가 됐지 않나 싶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 백악관 산하의 예산관리국(OMB)은 각 부처에서 신청한 예산의 타당성을 검증해 의회에 제출한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예산 편성·집행을 신속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신의 국정철학을 펴는데 유리한 개편안”이라고 평가했다.
이 후보가 집권해 구상 방안을 실현한다면 기획예산처는 14년 만에 ‘부활’하게 된다. 현재의 기재부 체제는 2008년 이명박 정부에서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가 합쳐지면서 만들어졌다. 당시엔 장관급 부처였으나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 부총리급으로 격상, 경제정책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해왔다. 참여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선 조직개편 없이 기존 체제를 유지했다.
본예산 5년간 200조 원 늘렸는데 소극적 비판?
그러나 기재부가 그동안 문재인 대통령의 의중이 담긴 급격한 확장재정 기조를 적극적으로 뒷받침해온 만큼, 이 후보의 기재부 개편은 현 정부와 차별화를 하려는 ‘정치적 보여주기’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 등 최근 불거진 마찰에서 "기재부가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며 개편론을 펴는 건 기재부가 그간 문 정부의 확장재정 정책을 적극 보조해온 점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주장이란 것이다.
실제 문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 400조5,000억 원이었던 본예산은 확장재정 기조에 따라 5년 만에 207조2,000억 원 급증했다. 여권 관계자는 "홍남기 부총리가 역대 최장수 부총리를 하는 것은 기재부가 청와대의 의중을 정책에 잘 반영해왔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학계와 야권 등은 이재명 후보의 구상에 우려를 나타냈다. 주원 실장은 "예산을 입맛에 맞게 더 쓰려고 부처를 개편한다는 구상 자체가 재정건전성 차원에서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김성범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상근부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정부 내 이견에 대해 토론·설득할 생각은 갖지 않은 채 예산 기능을 떼서 대통령 직속으로 두겠다고 발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의 기본 소양을 의심케 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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