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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불문 사과'의 공허함

입력
2021.12.19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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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씨가 15일 서울 서초구 자택에서 나와 자신의 사무실로 향하는 모습. 연합뉴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씨가 15일 서울 서초구 자택에서 나와 자신의 사무실로 향하는 모습. 연합뉴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부인 김건희씨의 허위 경력 의혹을 두고 정치권의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윤 후보가 17일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머리를 숙였으나, 제기된 의혹에 대한 사실관계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추가 의혹을 제기하며 공세의 끈을 놓지 않는 반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제기한 의혹 상당수가 가짜뉴스”라고 역공을 펴고 있다.

□ 김씨의 허위 경력 의혹과 관련해 소환된 것은 조국·정경심 부부의 딸 허위 스펙 사건이다. 국민의힘은 김씨의 경우 표현을 조금 부풀린 것으로 문서를 위조한 정경심 교수와는 다르다고 하지만, 김씨의 한국게임산업협회 기획이사 재직증명서 위조 의혹까지 불거져 사실관계 규명이 중요해진 상황이다. 당시에도 조국 전 법무장관이 사과를 안 했던 게 아니다. 그는 청문회에서 “이유를 막론하고 불찰이 크다”고 사과했고, 법무장관을 사퇴할 때도 “이유를 불문하고 국민들께 죄송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딸 허위 스펙 의혹에 대해선 어떤 사실관계도 인정하지 않았다. 정 교수에 대한 1, 2심 재판에서 7대 스펙 모두 허위라는 판단이 나왔는데도 말이다.

□ 윤 후보는 사과를 하면서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경력 기재가 정확하지 않고 논란을 야기하게 된 것 자체만으로 제가 강조해온 공정, 상식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라는 말을 쓴 것은 허위 경력 의혹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함의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 실제 윤 후보는 18일 부인의 허위 이력을 인정하느냐는 질문에 “노코멘트 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김건희씨도 “사실관계 여부를 떠나 사과 드린다”고 말했다.

□ 이유를 불문한 사과가 모든 잘못의 책임을 스스로 지겠다는 대승적 의미를 띨 수도 있지만 그것은 행동이 뒤따를 때다. 정치권의 관용적인 ‘이유 불문 사과’는 의혹은 인정하지 않되 상황을 급하게 모면하려는 용도로 쓰인다. 조국 사태 때와 마찬가지로 이런 사과를 사과로 받아들일 이는 많지 않다. 이유 불문 사과가 공허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허위 경력 의혹의 사실관계가 규명될 때까지 이번 논란은 계속될 것 같다.

송용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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