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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이 최고의 치료죠"… 자폐 아동 롤모델 된 자폐 청년 유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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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이 최고의 치료죠"… 자폐 아동 롤모델 된 자폐 청년 유튜버

입력
2021.12.20 04: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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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성 장애 2급 가진 20대 유지훈씨
어머니와 함께 유튜브 채널 '보무리' 운영
취업·운전 등 활동으로 안정된 생활 꾸려

14일 경기 여주교육지원청 청사 내 카페에서 유지훈(22)씨가 커피를 내리고 있다. 여주=홍인기 기자

14일 경기 여주교육지원청 청사 내 카페에서 유지훈(22)씨가 커피를 내리고 있다. 여주=홍인기 기자

유지훈(22)씨는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한다. 인스타그램을 좋아하고, 자신만의 SUV 자동차를 갖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내년 목표는 여자친구 만들기다. 여느 또래와 비슷한 청년인 유씨에겐 특별한 점이 하나 있다. 자폐성 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는 것.

이달 14일 유씨가 근무하는 경기 여주교육지원청 카페에서 유씨와 어머니 고은숙(52)씨를 만났다. 두 사람은 지난해 2월부터 유튜브 채널 '보무리'를 운영하고 있다. 아들이 보물같다는 의미에서 지은 이름이다. 유씨의 일상이나 경험이 주된 내용이고, 촬영이나 편집은 어머니가 맡는다. 구독자는 1만 명을 조금 넘는데 대다수는 자폐 아동을 키우는 부모들이다.

자폐 아동 부모에 희망 주려 유튜브 시작

유씨에게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다섯 살 때였다. 의사는 유씨를 유사자폐라고 진단하면서 "커서 글도 못 읽고, 말도 못 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고씨는 "그 말을 처음 듣는 순간 불안을 넘어 공포가 생겼다"고 회상했다.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고씨가 가장 걱정한 건 성인이 된 아들의 삶이었다. 자폐가 있어도 잘 성장한 사례를 샅샅이 조사했고, 유씨보다 증상이 심했지만 어엿한 직장인이 된 청년 이야기도 알게 됐다. 고씨는 "당시 그 친구 이야기가 엄청난 희망이 됐다"며 "이후 나도 다른 부모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하다가 작년에 코로나로 일을 그만두게 되며 유튜브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자폐 아동 롤모델 돼… '조작' 악플 달리기도

여주교육지원청 청사 내 카페에서 유씨와 어머니 고은숙(52)씨가 손을 맞잡고 인터뷰를 하고 있다. 여주=홍인기 기자

여주교육지원청 청사 내 카페에서 유씨와 어머니 고은숙(52)씨가 손을 맞잡고 인터뷰를 하고 있다. 여주=홍인기 기자

유튜브를 시작하자 자폐 가족들 사이에서 이목이 집중됐다. 유튜브 채널은 물론 자폐 커뮤니티 사이에서도 "지훈이처럼만 컸으면 좋겠다" "비결이 무엇인가" 같은 댓글들이 달렸다.

반면 유씨는 애초 경증 자폐가 아니냐는 의심 어린 시선도 있었다. 직장을 가진 데다, 운전면허를 취득해 직접 운전도 하고, 타인과의 대화 실력 역시 뛰어났기 때문이다. "쟤가 어떻게 자폐 2급이냐"는 말까지 들었다. 생각지도 못한 불똥이 튀기도 했다. 유튜버 '아임뚜렛'이 틱 장애를 과장 연기한 것으로 드러나자 '보무리 채널도 비슷한 사례 아니겠냐'는 근거 없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고씨는 “물론 처음엔 기분이 나빴지만, 지금은 그것 가지고 상처받거나 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오해들이 한편으로는 좋았다"고도 했다. 그간 아들이 겪은 우여곡절을 생각하면, 자폐가 아닌 것 같다는 지금의 평가가 오히려 감사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씨는 언어 발달이 느려 초등학교 입학을 1년 유예했고, 중학생 땐 사춘기와 자폐 증상이 겹치면서 속도 많이 썩였다. 고등학교 때 마지막으로 한 검사에서도 지능지수는 59였다.

"자폐 치료엔 취업 꼭 필요해"

유씨가 직접 내린 커피를 어머니에게 건네고 있다. 여주=홍인기 기자

유씨가 직접 내린 커피를 어머니에게 건네고 있다. 여주=홍인기 기자

유씨의 생활이 지금처럼 안정된 건 오히려 성인이 된 후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사회적 기업에 취업해 빵 만드는 일을 했는데, 그때를 기점으로 사회성과 언어수준이 올라갔다. 고씨는 "지훈이도 고등학교 때까지는 특유의 억양이 남아 있어 밖에서 입을 열면 사람들이 쳐다봤는데, 지금은 그런 일은 잘 없다"고 설명했다.

유씨 역시 현재의 직장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유씨는 "지금까지 해왔던 일 중 카페 일이 가장 좋다"며 "커피 만드는 게 재미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음 꿈은 사육사다. 그는 "카페 일도 좋지만, 기회가 된다면 서울대공원에서 사자, 호랑이, 곰 같은 맹수들을 돌보고 싶다"고 말했다.

고씨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경우 꾸준히 사회활동을 해야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항상 말해왔다. 고씨는 "비장애인도 하루 종일 집에만 있으면 답답하지 않겠냐"며 "복지관이든 직장이든, 밖에서 사회활동을 해야 퇴행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장애인들이 편하게 세상으로 나올 수 있도록 사회적 지원도 뒷받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후배 부모들에겐 인내와 자립교육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고씨는 "지훈이는 어느날 갑자기 좋아진 게 아니라 꾸준히 성장한 케이스"라며 "자폐 아이들이 정체기는 물론 퇴행이 올 때도 있지만, 꾸준한 사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스스로 밥 먹기, 책상에 앉아 있기 등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자립 교육을 최우선으로 두셨으면 좋겠다"고 추천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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