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드라이브 마이 카' 23일 개봉
하마구치 류스케(43) 감독은 일본 영화계의 새 대표 주자다. 2018년 '아사코'로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받으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어느 가족'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등)을 이을 예비 거장으로 떠올랐다. 올해는 그의 해였다.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우연과 상상'으로 심사위원대상(은곰상)을 수상했고, 칸영화제에선 '드라이브 마이 카'로 각본상을 받았다. 한 해에 세계 3대 영화제 중 2곳에서 주요 상을 받는 진귀한 기록을 세웠다. 봉준호 감독이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그와의 대담회에 나서 "영업비밀(연출법)을 알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거물이 됐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국내 개봉(23일)을 앞두고 하마구치 감독을 16일 오전 화상으로 만났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내년 제94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 주요 부문 후보로 거론되기도 한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동명 단편소설(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 수록)을 밑그림으로 하고 있다. 연극 연출가 겸 배우인 가후쿠(니시지마 히데토시)와 방송작가인 그의 아내 오토(기리시마 레이카)의 사연이 서두에 담긴다. 오토는 남자와 잠자리를 가져야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다. 외간남자들과도 관계를 맺는데, 가후쿠는 모른 척한다.
아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후 가후쿠는 슬픔에 잠긴다. 연극 연출 제안이 들어온 히로시마에서 그는 전담 운전수 미사키(미우라 도코)를 만난다. 20대 초반 미사키는 운전을 워낙 정숙하게 잘해 차로 이동 중인지 가후쿠가 잘 못 느낄 정도다. 그런 그에게도 가후쿠 못지않은 상처가 있다. 과묵한 두 사람은 함께 차를 타고 다니며 마음을 열게 된다. 하마구치 감독은 "무라카미 소설 속 모든 인물들은 자신이 처한 어려움을 헤쳐 나간다"며 “저도 그의 소설처럼 희망의 기운을 영화 속에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는 무라카미의 단편보다 이야기를 더 확장하고, 더 진한 정서를 전한다.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1960~1904)의 희곡 '바냐 아저씨'는 이를 가능토록 하는 주요 장치다. 가후쿠는 '바냐 아저씨'를 무대에 올리기 위해 자동차 안에서 아내가 녹음한 카세트테이프를 활용해 대사를 소리 내 반복한다. 그가 연습하는 대사는 종종 그의 현실과 조응한다. 하마구치 감독은 "가후쿠는 바냐처럼 인생이 끝난 것 같은 심정으로 살고 있는 사람"이라며 "가후쿠와 바냐를 서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게 가장 큰 고민이었다"고 말했다.
가후쿠의 연출 방식은 독특하다. 배우들을 다국적으로 구성해 무대에서 각자 모국어를 사용토록 한다. 수어를 하는 한국인 배우 이유나(박유림)까지 기용한다. 배우 중에는 오토와 잠자리를 가진 젊은 남자도 있다. 가후쿠는 배우들이 서로의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도록 함께 대본 읽는 시간을 자주 갖는다. 배우들이 빨리 연기하고 싶어 조바심을 비칠 정도다. 하마구치 감독의 연출법은 가후쿠의 방식을 닮았다. 하마구치 감독은 "현장에서 배우들이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에 보통 한 장면 촬영을 위해 배우들이 50번 정도 대본 읽기를 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배우들이 각자 알아서 연기 준비를 해 오면 그냥 자신이 준비한 부분을 한번 보여주는 식으로 연기가 끝나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하마구치 감독의 작업 방식은 배우 캐스팅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는 오디션보다 배우와의 대화를 중시하는 듯했다. "미우라는 어려서부터 연기를 했는데,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고, 여러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말하는 등 솔직한 면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고, "박유림은 생일에 남자친구와 함께하는 것만으로 좋다고 말한 점에서 인간성이 묻어났다"고 밝혔다. 운전의 명수 미사키를 연기한 미우라는 이 영화를 위해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상영시간은 179분. 하마구치 감독을 일본 영화계에 널리 알린 '해피아워'(2015·9일 국내 개봉)가 328분인 것에 비하면 짧지만 만만치 않은 시간이다. 정적 속에서 움직이는 듯한 이야기 전개에도 시간은 의외로 빨리 간다. 인물의 심리와 사연을 담아낸 대사가 마음을 잡아당긴다. 하마구치 감독은 "인물들의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우선 써 놓는다"며 "그러면 어느 순간 인물 하나하나가 저절로 자기 말을 털어놓게 된다"고 말했다.
아무리 수작이라 해도 3시간 가까운 상영 시간은 관객에게 부담이다. 하마구치 감독은 "3시간은 저희 인생에 비하면 매우 짧은 시간"이라면서도 "영화를 하나의 상품으로 봤을 때 고민"이라고 말했다. "제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작품의 완성도를 뽑아내면서도 상품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상영 시간으로 만드는 게 제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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