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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관계 악화가 초래한 천인계획의 비극

입력
2021.12.18 04:30
수정
2021.12.18 10:0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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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진
최연진IT전문기자

얼마 전 학자들로부터 천인계획과 관련된 안타까운 얘기를 들었다. 천인계획은 중국 정부가 2008년부터 산업 발전에 필요한 첨단 기술과 지식을 흡수하기 위해 세계적으로 뛰어난 학자 1,000명을 매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중국 정부에서 학자 1인당 연간 1억 원부터 5억 원까지 지원한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전 세계 학계에서 긍정적으로 보고 저명한 학자들이 꽤 많이 참여했다.

그런데 2008년에는 문제없던 천인계획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미국과 중국 관계가 경색되며 화근이 되기 시작했다. 단순히 좋지 않게만 보는 것이 아니라 연구비를 지원받은 학자들이 간첩으로 몰린 것이다.

미국 정부 관계자들이 지난해 7월 스파이 활동과 지식재산권을 훔친 혐의로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을 폐쇄하기 위해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 휴스턴=AP연합

미국 정부 관계자들이 지난해 7월 스파이 활동과 지식재산권을 훔친 혐의로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을 폐쇄하기 위해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 휴스턴=AP연합

화학계 저명한 학자인 미국의 찰스 리버 하버드대 교수는 천인계획에 따라 연구비를 지원받았다가 지난해 1월 간첩 혐의로 체포됐다. 나노 기술의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그는 2012년 화학계 노벨상인 울프상 수상자다. 그는 중국 정부로부터 매달 연구비 5만 달러를 지원받고 추가로 연구실 설립비 150만 달러를 받은 뒤 나노 물질 합성 기술 등을 중국에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지난해 9월 자율주행차 기술을 연구하던 카이스트 교수가 천인계획의 지원을 받았다가 산업 스파이가 됐다. 산업기술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체포된 그는 지난 8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학계는 얼어붙었다. 해당 교수 외에도 여러 학자들이 천인계획의 지원을 받기 위해 검토를 하다가 모두 중단했다는 후문이다.

학계에서는 천인계획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 중국 정부가 연구비 지원을 통해 기술과 지식을 손쉽게 흡수하려는 목적은 분명하지만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모르는 것을 얻는 지식 교류의 장으로 보고 있다. 즉 학자들 사이에 활발한 교류로 전 세계적 지식 발달을 앞당기는 효과가 있다는 입장이다.

일례로 전 세계에서 중국이 뛰어나게 앞선 농약 기술이 있다. 이 기술을 우리 기업들이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런데 천인계획에 따라 국내 학자가 중국의 해당 기술을 개발한 교수와 공동 연구 제안을 받으며 이를 알 수 있게 됐다. 중국 교수는 해당 기술을 더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국내 학자의 연구업적이 필요했고 이를 얻기 위해 자신의 기술을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산업계는 흥분했다. 그토록 알고 싶던 기술을 확보하면 국내뿐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학자가 카이스트 교수 체포 이후 천인계획 참여를 포기하면서 이 기회는 사라졌다.

학계에서는 천인계획은 일례일 뿐 냉랭한 미중관계 때문에 전 세계적 지식 교류가 경색돼 득보다 실이 많다고 우려한다. 서로 연구 결과를 공유하면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니 인류에게 손실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학자들은 지금의 미중관계가 가져온 불편한 세계 기류를 중세 암흑기에 빗댄다.

아무리 강대국이라도 세상의 모든 지식과 기술을 독점한 채 혼자 이끌 수는 없다. 미국이 선도하는 분야가 있으면 중국이 앞선 기술이 있고 아프리카나 남미 국가에 도움을 받아야 하는 부분도 있다.

과학의 발전이 결코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토마스 쿤의 말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지금의 미중 관계는 분명 인류 발전의 장애물이다. 지금이라도 미중을 비롯해 세계 각국이 큰 틀에서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한 노력을 해주기를 바란다.


최연진 IT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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