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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 치인 2030 직장인들 SNS '부계정'으로 분노 쏟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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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 치인 2030 직장인들 SNS '부계정'으로 분노 쏟아낸다

입력
2021.12.1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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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도 부담주지 않는 스트레스 해소 방식
직장 동료 만날까, 이메일·전화번호 동기화 해제
정체성과 신념 표현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
우울과 분노, 해학적으로 승화해 해소하기도

일러스트 박구원 기자

일러스트 박구원 기자


팀장이 비상식적 요구를 하면
'이것도 부계정에 올려야지' 생각하며 버텼어요.

송유진(26·가명)

직장 생활이 화병이 날 정도로 힘들었다는 오희지(27·가명)씨는 입사 4개월이 되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화병'이라는 이름으로 부계정을 만들었다. 오씨는 입사하자마자 야근과 휴일 연락에 시달렸으나 토로할 곳이 없어 어려움을 느꼈다. 오씨는 "아무리 친구들이라도 부정적 이야기를 반복하기는 어렵지 않나"라며 "부계정을 만들어 회사에서 힘들 때마다 기록을 남겼다"고 말했다. 오씨의 게시물에는 '해로운 직장 생활', '우리 인생 화이팅'이라는 다른 부계정들이 남긴 위로와 공감의 댓글도 보였다.

2030 직장인을 중심으로 'SNS 부계정'을 만드는 이들이 크게 늘고 있다. 대외적 이미지를 관리하고 인맥을 넓히는 용도의 본계정(본계)과 별개로 비공개 부계정(부계)을 만들어 소통하는 것이다. 정체성과 신념을 솔직하게 드러내기 어려운 직장 생활에서 탈출구를 찾는 모양새다. 이들은 부계정을 통해 자기를 보여주는 목적으로 주로 활용하는 SNS에서 금기시돼왔던 직설적 분노, 우울한 감정을 표현하며 해방감을 느낀다고 입을 모은다.



2030 직장인 부계정 매뉴얼

①평소에 사용하지 않는 이메일로 가입한다.
②연락처 동기화는 해제한다.
③아이디, 닉네임에 본인을 유추할 수 있는 정보를 넣지 않는다.
④지인이라도 본계정이면 친구 신청을 수락하지 않는다.
⑤공개적인 게시물에서 부계정 아이디를 언급하지 않는다.

2030 직장인들은 또래 사이서 가장 익숙한 인스타그램에서 주로 부계정을 개설한다. 실명제인 페이스북은 성과 이름을 반드시 입력해야 하고, 관심사 덕질용으로 이용되는 트위터는 지인들끼리 친구를 맺는 경우가 없어 부계정이 필요없다. 평소에 껄끄러웠던 지인이나 직장 동료가 많아 계정 분리가 필요한 것 또한 인스타그램이다. 부계정 생성할 때 매뉴얼은 다음과 같다. ①평소에 사용하지 않는 이메일로 가입한다. ②연락처 동기화는 해제한다. ③아이디, 닉네임에 본인을 유추할 수 있는 정보를 넣지 않는다. ④지인이라도 본계정이면 친구 신청을 수락하지 않는다. ⑤공개적인 게시물에서 부계정 아이디를 언급하지 않는다.

부계정 운영에 존재하는 암묵적 룰을 어기면 부계정은 쉽게 노출될 수 있다. SNS 친구 추천이 저장된 연락처나 이메일 주소를 토대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지인일지라도 본계정 친구 신청을 수락하는 일은 흔치 않다. 본계정과 한 명이라도 친구 관계가 되면 자신의 부계정이 다른 사용자의 친구 추천 목록에 뜰 수 있기 때문이다.



정체성과 신념을 노출 걱정 없이 안심하고 표현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부계정 이용자들은 자신의 정체성과 신념을 안심하고 드러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다고 말한다. 자신을 성소수자로 정체화한 김재현(29·가명)씨는 다른 성소수자 지인들과 소통하기 위해 부계정을 만들었다. 직장 동료에게 성 정체성이 노출되지 않기 위해서다. 김씨는 "본계에서는 보는 눈이 많아서 정체성과 직결된 표현을 마음껏 할 수 없었다"라며 "부계정은 확실히 마음껏 표현할 수 있으니 자유로운 느낌"이라고 말했다.

공공기관에 다니는 정영은(25·가명)씨 또한 자신의 신념을 표현하기 위해 부계정을 만들었다. 정씨는 직장 동료를 포함한 친구 300명이 볼 수 있는 본계정에서는 논쟁적인 이슈에 대한 의견을 밝히기 어려웠다. 정씨는 "여성 대상 범죄가 일어나면 기사를 공유하며 답답함과 분노를 표현하고 싶은데 괜히 직장 동료들 입방아에 오를까 두려웠다"라며 "부계정은 내 생각에 불편해하지 않을 사람들만 보니 편하게 게시물을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우울과 절망을 하나의 '놀이'로 승화


일러스트 박구원 기자

일러스트 박구원 기자

'우울하다', '죽고 싶다'라는 부정적 감정 표현을 직설적으로 하는 것도 부계정의 특징이다. 3년 차 간호사인 이수현(25·가명)씨는 '왜살아수현'이라는 부계정을 운영 중이다. '죽고 싶다', '잠 못 자서 우울하다' 등 부정적 감정 표현을 담은 게시물이 대부분이지만 이씨의 SNS 친구들은 놀라지 않는다. '또 시작이다', '또 죽니'라는 반응을 보일 뿐이다. 이씨는 자신의 부계정 사용을 하나의 놀이라 표현한다. 이씨는 "우울할 때 우울한 걸 표현하면 조금이나마 낫다"라며 "죽고 싶다라는 말을 했을 때 심각하게 생각할 사람들은 애초에 친구 신청을 수락해주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직장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SNS 반응을 보며 보람을 느끼는 경우도 있었다. 송유진(26·가명)씨는 선배가 자신의 업무를 처리하지 않아 주변에 피해를 줬던 사례를 재밌는 만화 컷과 함께 부계정에 업로드했다. SNS 친구들은 '짤 선택 좋다', '웃기다'며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송씨는 "그 후로 팀장이 비상식적인 요구를 하면 '이것도 부계정에 올려야지'라고 생각하면서 그 순간을 버틸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탈춤 추고 해방감 느꼈던 선조들과 유사"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전문가는 이와 같은 2030 직장인들의 SNS 사용이 멀티 페르소나에 대한 욕구가 발현된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여러 측면 중 분노하고 좌절하는 자아 또한 드러내고자 한다는 것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부캐라고 하면 긍정적인 측면만 생각하는데 부정적인 자아를 드러내는 부분도 있다"라며 "과거에 탈춤을 추는 사람들이 가면 뒤에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세상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던 것처럼 직장 생활에서 스트레스받은 이들이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본인이 하지 못했던 말을 하며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직설적인 분노, 우울 감정을 표현하며 해방감을 느낀다는 해석도 있다. SNS에 업로드된 자살·자해 관련 이미지 분석에 참여한 유금란 가톨릭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오프라인에서 사람들이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데에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SNS 공간을 통해 이야기하려는 시도들로 보인다"라며 "부정적인 이야기가 금기시된 온라인 공간에서 이처럼 직접적으로 분노 표현을 하는 것이 일종의 해소 효과가 있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SNS 이용 문화가 바뀌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분석도 이어진다. 강보라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연구원은 "초기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서는 자기를 널리 알리고 친구 맺고 늘리는 것이 주요한 기능이었다면 최근에는 친구를 차단하는 기능, 좋아요 수를 숨기는 기능이 생겼다"라며 "무조건적인 좋아요와 댓글 반응보다 신뢰하는 소수의 사람들한테서 얻는 반응을 더 가치 있게 느끼는 추세"라고 말했다.


최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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