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조차 전복된 뒤 폭발… 주변 건물도 40채 불타
희생자들, 연료난에 트럭서 휘발유 챙기다 참변
의료 물품·인력 부족… 의료진 "사망자 늘어날 듯"
카리브해 최빈국 아이티에서 연료를 가득 실은 트럭이 전복된 뒤 폭발해 60여 명이 숨지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주민들이 사고 트럭에서 흘러나온 휘발유를 담고 있던 상황에서 폭발이 일어나 인명 피해가 컸다. 부상자도 수십 명에 달하는 데다 대부분 위중한 상태라 사망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14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이날 자정 무렵 아이티 북부에 위치한 제2도시 카프아이시앵에서 휘발유를 운반하던 트럭이 균형을 잃고 넘어지면서 탱크에서 휘발유가 쏟아졌다. 인근 주민 100여 명이 휘발유를 챙기려고 트럭 주변으로 우르르 몰려들었고, 그 순간 트럭이 폭발했다. 최근 아이티는 극심한 연료 부족과 가격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사고 현장은 아비규환이었다. 거대한 화염이 순식간에 트럭을 집어삼켰고, 불이 주변 건물로 옮겨붙어 최소 40여 채가 탔다. 폭발음에 혼비백산한 주민들은 긴급히 대피했지만, 미처 집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도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소셜미디어에는 검은 밤하늘로 솟구친 시뻘건 불길과 지붕이 날아간 주택, 검게 그을린 벽, 전소된 트럭 잔해 등을 담은 사진이 올라와 참담했던 당시 상황을 보여준다. 한 목격자는 “지옥 같았다”고 영국 BBC방송에 말했다.
카프아이시앵 시당국이 이날까지 파악한 사망자는 62명이다. 심하게 불에 타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희생자도 많다. 구조대는 인근 건물 안에서도 피해자를 수색 중이다. 부상자 수십 명은 병원으로 이송됐다. 하지만 인력도, 의료 용품도 턱없이 모자란 상황이다. 일부 환자들은 병상이 없어 병원 뜰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카프아이시앵에서 가장 큰 병원이 지난달 무장 강도들의 공격을 받은 뒤 문을 닫은 탓에 응급 대처가 더 어려웠다.
의료진은 화상 정도가 심한 환자가 많아 사망자 수가 크게 늘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유스티니안대학병원 간호사는 AFP통신에 ”우리는 심각한 화상 환자를 치료할 능력이 없다. 그들 모두를 살릴 수 없을까 봐 두렵다”고 말했다. 이브로즈 피에르 카프아이시앵 시장은 “인력뿐 아니라 혈청과 거즈 등 화상 치료를 위한 물품은 뭐든 다 필요하다”며 의료 지원을 호소했다.
화재 조기 진압에 실패한 것도 피해가 컸던 이유 중 하나다. 사고 직후 소방대가 현장에 출동했지만, 소방 장비 부족으로 불길을 잡는 데 애를 먹었다. 당시 소방대원은 9명, 소방트럭은 1대뿐이었다. 응급의료 인력도 부족해 구급차가 현장에 도착한 건 사고 발생 5시간 만이었다. 알랭 듀로시에 카프아이시앵 소방서장은 “구조대가 일찍 도착했더라도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불길이 너무 거셌다”고 말했다. 국제구호단체 국경없는의사회는 이날 의료진을 긴급 파견했고, 아리엘 앙리 총리는 현장을 방문한 뒤 3일간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올해 아이티에는 초대형 비극이 끊이지 않고 있다. 7월에는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이 암살되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고, 8월에는 규모 7.2 강진이 덮쳐 2,000여 명이 숨졌다. 정부 권력 공백을 틈타 갱단이 활개를 치면서 치안도 극도로 불안한 상태다. 최근에는 갱단이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연료 운송 트럭과 운전사를 납치하고, 항구에서 연료 공급을 막아 극심한 연료난이 이어져 왔다. 부실한 국가 전력망 대신 자체 발전기를 가동하는 학교와 병원, 기업들은 사실상 기능이 마비됐다. 이번 사고 희생자들도 위험을 무릅쓰고 귀한 연료를 구하려다 참변을 당했다. WP는 현지 주민의 목격담을 빌려 “트럭 운전사가 주민들에게 트럭이 언제 폭발할지 모르니 빨리 도망가라고 소리쳤지만, 누구도 귀담아 듣는 사람이 없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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