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법 적용 대상인가" 질문 쇄도
안전-경영 분리 불가…'그림자 대표' 무효
#건설사 하청업체인 A사는 원청으로부터 100% 도급을 받는다. 연매출 3,000억 원의 A사 일평균 근로 인력은 2,000여 명이다. 대부분 일용직이고 각기 다른 도급업체로 파견돼 일한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논의가 시작된 이후 A사의 원청들은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모두 구축했다. A사는 별도의 안전관리 전문인력을 둬야 할까.
#공장 3곳에 30명, 20명, 10명이 근무 중인 B사는 국세청에 공장마다 별도의 사업자 등록번호로 신고했다. 사업장이 여러 곳에 나눠져 있어서다. 이 경우 B사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일까.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중소기업계의 혼란은 여전하다. 스스로 법 적용 대상인지 모르는 중소기업이 적지 않다.
15일 경제계에 따르면, 중소기업 중에선 A사처럼 원청이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구축했으니 괜찮을 것이란 시각이나 B사와 같이 개별 사업장 근로 인원이 50명 미만이면 법 적용 유예 대상에 포함될 것이란 오해도 많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이날 서울 여의도 중기중앙회 사옥에서 개최한 ‘중소기업, 중대재해처벌법 이렇게 준비하자!’ 온·오프라인 설명회에선 이런 혼란이 여실히 증명됐다. 이 자리에 참석한 500개 이상의 중소기업 관계자들은 각사의 특수한 상황 설명에 이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재해로 인명피해가 발생했을 때 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 의무를 다하지 않은 기업의 경영책임자 등을 처벌하도록 한 법률이다. 근로자 사망 시 경영책임자가 1년 이상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500명↑하청업체, 자체 안전보건 관리체계 갖춰야
질문은 주로 “이래도 처벌되냐”는 형태로 모아졌다. 질문이 몰린 첫 번째 사례에 대해 박신원 고용노동부 중대산업재해감독과 서기관은 "500인 이상 사업자인 데다 근로자들이 여러 현장에 분산돼 일하기 때문에 각 근로자가 일하는 원청마다 갖춘 안전보건 관리체계가 다를 수 있다"며 "A사는 별도의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답했다. 원청이 제3자에게 도급, 용역, 위탁 등을 한 경우 하청업체 종사자에 대해서도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이행하고 있지만, 하도급업체 차원에서 별도의 관리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선 "건설업계의 업무체계나 인력구조를 고려할 때 당장 안전관리체계를 갖추기 어렵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천병조 원영건업 전무이사는 격앙된 목소리로 "하도급업체에는 소장부터 안전담당 인력까지 100% 일용직 근로자로 구성돼 있고, 이들 중 1년 이상 근무하는 근로자는 거의 없다"며 "지난 5년간 원청이 주는 안전 관련비를 받아 사용하고 있고 별도의 '안전예산'을 마련한 적이 없는데 당장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다른 참석자는 "사업주가 적법하게 계도조치를 했음에도 현장 근로자가 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며 사업주의 의무와 책임만 강조된 중대재해처벌법의 보완 필요성도 지적했다.
사업장 여러 곳이어도 근로인원 합산해 적용
B사와 같이 별도의 사업자 등록을 했어도 중대재해처벌법 적용대상이다. 전체 근로 인원을 합할 경우, 50명 이상이어서 하나의 기업으로 보기 때문이다. 박 서기관은 "전화 문의가 많은 내용"이라며 "납세 편의를 위한 구분일 뿐 사고 발생 시 합산한 인원을 기준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비용과 인력구조 등 현실적 어려움으로 이를 이행하기 어려운 사업주는 궁여지책으로 ‘그림자 대표’를 내세우는 사례도 나오지만 이 경우 역시 실질적인 대표의 처벌은 불가피하다. 구권호 안전보건공단 인천광역본부장은 “안전과 경영을 분리할 수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며 “등기부등본에 법인 대표이사를 따로 두고 있다고 해서 회장은 사고와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소기업계에선 정부 차원에서의 보다 실질적인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이태희 중기중앙회 스마트일자리본부장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의지를 갖고 준비하는 중소기업조차 무엇을 어떻게 준비할지 막막함을 느낀다”며 “중대재해처벌법 준비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에 구체적인 도움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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