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이 가봤다] '화알못', 처음 화장품 축제 가다
'코덕' 몰려든 올리브영 어워즈 페스타
색조보다 H&B(헬스앤드뷰티)가 대세
과대 포장으로 인한 쓰레기는 아쉬워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화려한 이곳에서 느끼는 이 감정은 마치 이방인.
알록달록 놀이동산처럼 꾸며진 공간이 수많은 인파로 북적이며 활기가 돈다. '화알못(화장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 기자들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모르는 제품들로만 가득하지 않을까. 어리둥절한 가운데, 이곳에 모여든 이들은 커다란 쇼핑백을 하나씩 들고 부스에서 준비된 게임을 하거나 사진을 찍기 바쁘다. 겉옷까지 벗어 던진 채 버튼을 빠르게 누르는 게임에 열중하던 사람이 결국 승리를 쟁취해내자 주위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마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없던 그 시절의 축제로 돌아간 것만 같은 이곳은 CJ올리브영이 10일부터 사흘 동안 개최한 '2021 올리브영 어워즈&페스타' 현장이다. 코로나19로 온라인으로만 행사를 진행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대규모 오프라인 행사로 개최되며 수많은 '코덕(코스메틱 덕후)'들의 발길을 모았다. 평소 20대 중반 또래 여성들에 비해 유독 화장품과 거리가 먼 기자들에겐 낯설고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화알못'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뷰티 놀이동산
갑작스럽게 코덕들의 성지로 내던져진 화알못들은 분주하게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해야 했다. 서로 마주친 눈빛에 혼란이 가득했다. 평소 뷰티 산업에 관심이 없을뿐더러 이 정도로 사람들이 많은 곳이 너무 오래간만이라 정신이 혼미했다. '이게 도대체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리브영 세일 소식에도 무관심한 우리는 그곳에서 이방인이었다. 초청받은 인플루언서들이 다수일 줄 알았으나 대부분은 26초 만에 완판된 7,000장의 티켓을 거머쥔 일반 고객들이었다. 정신 없기만 한 이곳에 굳이 치열한 티켓 경쟁을 뚫고 값을 지불하면서까지 찾아 온 그들의 열정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적막한 입구가 무색하게 다른 세계로 연결해주는 듯한 터널을 지나자 펼쳐지는 대규모의 놀이동산에선 활기가 넘쳤다. 생각보다 큰 규모와 놀이동산의 신나는 분위기를 살린 연출, 행사장을 찾은 수많은 인파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치 매년 겨울 수많은 관광객들을 끌어모으는 유럽의 크리스마스마켓을 연상하게 했다.
올리브영은 4,958m² (약 1,500평) 규모의 전시공간을 '초대형 놀이동산' 콘셉트로 꾸몄고, '정샘물' '오쏘몰' '닥터지' '한율' 등 약 80개 브랜드가 각양각색의 체험 부스를 마련했다. 이번 행사에 참여한 브랜드 대다수는 '2021 올리브영 어워즈' 수상 브랜드다. 올리브영의 고객 데이터를 기준으로 선정된 134개의 제품 중 성장 가능성이 높고 고객에게 새로움을 보여줄 수 있는 브랜드들이 이번 행사에 참가했다.
메이크업 브랜드들이 모인 부스에서 직접 이벤트에 참여하며 그들 틈에 섞여 들어가봤다. 행사장을 찾은 수많은 코덕들에게는 그야말로 축제의 장이었다. 직접 당구 게임을 할 수 있도록 꾸민 부스와 색조 화장품을 이용해 직접 그림을 그리고, 자신의 톤을 알아볼 수 있도록 설치한 부스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각 브랜드들이 꾸민 부스에는 다트, 두더지 게임, 뽑기 등 다양한 게임 이벤트들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의 줄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선물 받은 아이섀도 2개로 2년을 무난하게 버텨오고 있는 나로서는 상품으로 주어진 색조 화장품에도 영 감흥이 생기질 않았다.
상품으로 가득 찬 쇼핑백을 들고 있는 한 참가자에게 말을 걸어봤다. A(28)씨는 "원래 평소에 뷰티 분야에 관심이 많아 왔는데 생각보다 더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때문에 행사가 거의 없었는데 여러 브랜드를 한번에 구경도 하고 이벤트를 통해 선물도 많이 받아 티켓값(2만5,000원) 이상을 번 것 같다는 것.
한동안 화장품을 안 사도 될 것 같다며 뿌듯해하던 그는 기자들의 홀쭉한 쇼핑백을 보고는 "스킨케어 쪽이 상품을 많이 주는 것 같다"며 추천해줬다. 평소 올리브영 매장도 잘 가지 않는 터라 스킨케어 쪽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기에 솔깃해졌다.
화려한 메이크업보다 건강한 아름다움과 '클린 뷰티'
스킨케어 브랜드들이 모여 있는 '보태니컬 가든'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안쪽으로 들어서자 훨씬 더 북적이는 인파와 길게 늘어선 줄이 우리를 맞아줬다. 순간 진짜 놀이동산에 온 건가 싶게 만드는 긴 줄이었다. '아 이곳이 메인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눈이 번쩍 떠졌다. 화장품이라고 하면 화려한 색감의 섀도, 립스틱이나 강렬한 아이라이너 등 메이크업 제품이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이곳은 피부 건강을 책임지는 기초 제품들이 꽉 잡고 있는 듯했다. 부스의 개수도 메이크업 부스보다 더 많아 보였다.
갑자기 솟아나는 피부 건강에 대한 욕심에 홀린 듯이 걸어가 가장 익숙한 브랜드 부스에서 이벤트를 참여하기 위해 줄을 섰다. 유독 긴 줄의 맨 끝에 서자 비로소 이방인이 아닌 그들에 속한 기분이었다. 괜히 머쓱한 기분에 "PRESS"가 크게 적힌 기자 명찰을 코트 안에 숨겼다.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데 현장 스태프는 질서와 거리 두기를 이유로 "다른 부스 먼저 이용 후 다시 와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하필 우리 바로 앞이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른 곳을 먼저 둘러보러 발걸음을 옮겼다.
다른 스킨케어 브랜드들도 문전성시였다. 특히 '라운드랩' '아비브' 등 '클린 뷰티' 브랜드가 눈에 띄었다. 올해 뷰티 트렌드 중 하나로 꼽히는 클린 뷰티는 친환경·비건·착한 성분 등을 아우르는 용어로, 유해 성분이 없고, 환경 보호를 추구하는 화장품을 의미한다. 역시 가치소비를 추구하는 MZ세대인가 싶었다. 라운드랩은 숲 나무 심기 후원 활동과 더불어 자연분해가 쉬운 콩기름을 사용한 잉크 인쇄 등 자연 친화적인 포장재를 강조하며 '숲과 가까워지는 클린뷰티'를 내세웠다. 클린뷰티 브랜드들은 각자 화장품의 자작나무 수액과 어성초, 녹두, 구절초 등 자연친화적인 성분을 부스에 크게 내걸며 클린뷰티 브랜드를 자처했다.
그중 기자들의 눈을 사로잡은 건 친환경 비건 보디케어 브랜드였다. 직접 통에 샴푸를 담아갈 수 있는 리필스테이션과 플라스틱 포장지가 없는 샴푸바를 제공하는 이벤트를 진행 중이었다. 올해부터 플라스틱을 줄여보겠다는 목표로 샴푸바와 몸비누를 쓰며 발버둥치고 있는 나로서는 가장 반가운 부스였다. 실제로 클린 뷰티 카테고리의 올해 올리브영 매출은 63% 성장을 기록했고, 올리브영은 2021 트렌드 키워드 중 하나로 비건을 제시하며 클린 뷰티와 비건 시장을 확대할 것이라고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스킨케어뿐 아니라 보디케어와 헬스케어는 관심이 없어 몰랐을 뿐 업계에서는 트렌드를 넘어 주력 카테고리로 자리를 잡은 듯했다. 현장을 찾은 한 브랜드 관계자는 코로나19를 겪으며 매출 부진을 겪었던 색조 화장품에 반해 스킨케어 라인의 경우 판매량이 오히려 성장했다고 전했다. '헬시푸드' 부문이 올해 새롭게 어워즈 부문으로 만들어지기까지 했다.
비타민, 유산균 등 건강기능식품에 대한 MZ세대의 관심이 크게 증가한 결과라는 게 회사 관계자의 설명. 생각해보니 최근 친구들을 만나면 "살기 위해 운동한다", "비타민D랑 유산균은 먹어야 한다", "어렸을 때부터 칼슘은 꼭 먹으라더라" 등의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대화의 주제가 사뭇 바뀐 게 나이가 들어서인 줄 알았는데 최신 트렌드였다니 갑자기 트렌디한 현대여성이 된 기분이었다.
실제로 올리브영의 구창근 대표이사는 "올해(3분기 누적 기준) 헬스 카테고리 매출이 25% 증가했다"며 건강식품의 성장에 큰 기대를 밝히기도 했다. 기자간담회에서 몇 번이나 언급한 H&B가 '헬스 앤드 뷰티'였다는 걸 알자 고개가 끄덕여졌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겉모습의 아름다움보다도 자신의 건강한 아름다움을 추구해나가는 방향으로 변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철저한 방역 수칙… 과도한 쓰레기는 아쉬워
코로나19 확산세가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열린 대규모 대면 행사인 만큼 우려도 컸다. 올리브영 또한 현상황을 고려해 최선의 방역을 위해 노력한 듯했다. 사람이 몰릴 것을 대비해 행사 시간대를 오전, 오후, 야간으로 나누고, 행사장 입장 시 PCR 음성확인서를 제출해야 했다. 행사장 안에서 장갑만 책임지고 관리하는 스태프가 따로 있었고, 특정 부스에 줄이 너무 길면 거리 두기를 위해 이용을 제한하기도 했다. 라텍스 장갑이 인터뷰 내용을 받아 적을 때마다 너무 불편했지만 이 시국에 감수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B(24)씨는 행사에 오기 전에 급격히 증가하는 코로나19 확진자 뉴스를 보고 고민을 했다며 "티켓을 이미 구매해 일단 가자고 생각해서 오게 됐는데 장갑도 하고 스태프들이 꼼꼼히 관리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방역수칙이 잘 지켜지는 것 같아 크게 걱정은 안 된다는 것. C(28)씨 또한 "사전에 방역수칙 관련 공지를 철저하게 하기도 했고 행사장 내부에서 마스크 벗을 일이 없어서 크게 걱정은 안 했다"고 말했다. 사실 요즘 이런 행사만 없을 뿐이지 회사나 대중교통 등은 평소와 같이 운영되고 있어서 크게 상관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편 나눠준 경품들이 과대 포장이 심해 쓰레기가 많이 배출됐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기자가 받은 경품에는 큰 상자가 민망할 정도로 작은 샘플 3개만 들어 있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플라스틱 접시, 초등학생에게 유행인 장난감 '푸시팝' 등 실용성 없는 사은품 또한 쓰레기 양산에 한몫했다는 반응도 있다. 각 브랜드마다 홍보를 위해 상품에 홍보용 문구를 담은 판촉물을 더해 본품보다 쓰레기가 더 많은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기자도 받은 경품을 집에서 정리하자 쓰레기가 반이었다. 행사장을 찾았던 한 블로거 또한 "가장 아쉬운 점은 쓰레기"라며 "클린뷰티며 비건이며 홍보해도 상자, 홍보물, 비닐 등등 이 많은 쓰레기들은 어찌할 것인가"라고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생각하던 화장품의 범위가 넓어지게 된 페스티벌이었다. 이런 행사라면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방문하고 싶어질 것 같았다. 다만, 행사 뒷마무리에 있어서도 보여지는 것보다 내실을 추구하는 기류가 반영되기를 바라본다. 환경 보호에 대한 소비자의 진심을 하나의 소비 트렌드로 상업적으로만 이용한다는 오해는 회사에게도 억울하고 속상한 일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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