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지고, 짧아지고, 빨라졌다.
김정은 집권 10년의 인사를 총평하는 키워드다. 김 국무위원장은 2012년 27세의 어린 나이로 권좌에 오르자마자 ‘올드보이’들을 내치고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중용한 인물을 장기간 주요 보직에 두는 일은 드물었다. 인사 교체 주기는 잦았고, 노동당과 군 간부들의 계급은 수차례 롤러코스터를 탔다. 현재 북한의 ‘파워엘리트’ 면면에는 인사를 통해 국정을 장악하려는 김 위원장의 의도가 그대로 투영돼 있다.
김정은식 세대교체는 2013년 12월 고모부 장성택 처형을 계기로 본격화했다. 이 즈음 툭 튀어나온 사람이 조용원이다. 50대로 북한 권부에서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하는 그는 2014년 조직지도부 말단지도원에서 부부장으로 승진해 김 위원장의 현지시찰에 동행했다. 2019년 제1부부장을 거쳐 올해 1월 8차 당대회에서 조직비서 겸 당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2월 제8기 2차 전원회의에서는 경제부문 간부들을 호되게 질책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명실상부한 북한 내 ‘2인자’로 거듭났다는 의미다.
‘어린 실세’도 등장했다. 1988년생으로 추정되는 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이다. 남매는 북한 고위급 인사 중 유일한 청년세대다. 2014년 3월 제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서 김 위원장을 수행하며 얼굴을 노출한 그는 이듬해 당 선전선동부를 장악했다. ‘김정은 우상화’ 총책을 자임한 것이다.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을 시작으로 남북ㆍ북미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최측근 실세임을 여실히 증명했다. 주요 대남ㆍ대미 담화 역시 도맡아 북한 대외정책 ‘스피커’ 역할을 하고 있다. 김여정은 9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5차 회의에서 최고 정책결정기구인 국무위원회 위원으로 보선돼 조용원과 국정 운영의 투톱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김정일 시대 ‘선군(先軍)정치’를 떠받든 군부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추락했다. ‘회전문 인사’란 별칭에서 보듯, 군부 인사들은 부침을 거듭했다. 김 위원장은 ‘승진→강등→복권’을 반복하며 긴장감을 불어넣고, 충성 경쟁을 유도하는, 특유의 군부 다잡기를 지속하는 중이다. 무소불위 권력을 휘둘렀던 군부의 힘을 톡톡히 체감했던 터라 과거와 같은 득세를 허락하지 않으려는 시도다.
단적인 예가 군서열 1ㆍ2위로 탄탄대로를 달렸던 리병철과 박정천의 뒤바뀐 처지다. 리병철은 핵ㆍ미사일 개발 주역으로 공을 인정받아 정치국 후보위원과 중앙군사위 위원에 올랐다. 2016년 김 위원장과 맞담배를 피운 최초의 인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올 6월 방역 실패의 책임을 물어 박정천과 함께 실각했다. 리병철은 현재 모처에서 자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정천은 곧장 부활했다. 강등 두 달여 만에 권력 서열 5위에 해당하는 당 정치국 상무위원에 발탁된 것. 리병철의 자리를 꿰찬 그는 단번에 ‘군 서열 1위’에도 등극했다. 언제 내쳐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절대 복종을 가능케 하는 버팀목이 된 것이다.
‘빨치산 혈통’도 예외는 없다. 2014년 김 위원장의 초대 총정치국장이었던 최룡해는 임명 4개월 만에 황병서 당시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에 자리를 빼앗겼다. 빨치산 후광이 ‘보신’을 담보할 수 없다는 메시지였다. 그는 이후 2016년 당 정치국 상무위원, 3년 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 오르면서 공식 서열 2위가 됐으나 실권은 그리 많지 않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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