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사상 최초로 정답이 정정된 것은 2004학년도 수능 언어영역에서였다. 처음 문제를 제기한 이가 서울대 교수였다는 점이 이슈를 키웠고 결국 정답이 2개가 됐다. 2008학년도 수능 때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의견을 구하기도 전에 한국물리학회가 수험생 문의를 받고 물리Ⅱ의 오류를 인정, 큰 논란이 이어졌다. 버티던 평가원은 복수정답을 인정하고 원장이 사임했다. 이후 평가원은 이의신청에 대해 학회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쳐 몇 차례 수능 정답을 수정했다.
□ 2014학년도 수능 세계지리 정답이 정정된 과정은 최악이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유럽연합(EU)을 비교하는 문제였는데 철 지난 교과서 통계와 문항에 표시된 2012년의 실제 통계가 달라 이의가 제기됐다. 평가원은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고 법정 다툼으로 비화했다. 1년이 지나 항소심 판결이 나오고서야 정답과 성적이 정정됐는데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한 수험생들에겐 허망한 결론이었을 뿐이다. 일부 수험생들은 소송을 통해 손해배상을 받았다.
□ 올해 수능 생명과학Ⅱ 출제 오류도 평가원이 굽히지 않고 버티다가 법원에서 제동이 걸렸다. 평가원은 ‘답을 구하는 데는 문제가 없어 치명적 오류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했고, 9일 서울행정법원에서 집행정지가처분신청이 인용될 때까지 정답 정정에 대비하지도 않았다. 알고 보니 평가원이 의견을 구한 3개 학회 중 한국과학교육학회·한국생물교육학회도 같은 입장을 냈던 것으로 12일 보도됐다. 한국유전학회만이 오류를 인정했으나 전원 정답 처리하라는 결론을 내지 않고 판단을 유보했다.
□ 이쯤 되면 무엇을 위한 교육인가라는 의문이 떠오를 만하다.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음수 개체 문제를 왜 풀어야 하는지도 의아한데, 그래도 답을 찾아낼 수 있고 찾아내야 하는 게 우리 교육의 실체였다는 게 새삼 민망하다. 모순을 알아차리고 진짜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 돼 버렸다. 어디 학교 교육만의 문제인가. 그렇게 배우고 가르치는 이들로 구성된 이 사회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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