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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보이콧의 오욕

입력
2021.12.13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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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1일(현지시간) 스위스 로잔에서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왼쪽)이 실종설이 나돌던 중국의 테니스 스타 펑솨이와 영상통화를 하고 있다. 로잔=로이터 연합뉴스

11월 21일(현지시간) 스위스 로잔에서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왼쪽)이 실종설이 나돌던 중국의 테니스 스타 펑솨이와 영상통화를 하고 있다. 로잔=로이터 연합뉴스

성대히 준비해 온 잔치가 찬물을 뒤집어썼다.

미국이 개막 두 달 남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했다. 선수단은 보내되 정부를 대표하는 사절단은 보내지 않겠다는 것.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인권 문제 등을 이유로 중국이 그토록 공들여온 올림픽에 딴지를 건 것이다. 미국의 으름장에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이 뜻을 함께하기로 했다.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중국은 ‘정치적 조작’이라며 단호히 반격하겠다고 들고일어났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은 중국에 무척 중요한 이벤트다. 코로나19 방역 성공도 과시하고 중국의 위대한 부흥도 알릴 수 있는 무대가 바로 베이징 대회였기에 보이콧 선언은 지극히 모욕적이었다.

신냉전의 갈등 속 미국의 줄세우기에 모두가 동참하는 건 아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외교적 보이콧의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다음 대회인 2024 파리 하계올림픽을 앞둔 프랑스와,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을 개최하는 이탈리아가 함부로 보이콧 카드를 쓸 순 없었을 것이다.

결국 외교적 갈등에 멍이 든 건 명색이 ‘평화의 제전’인 올림픽 그 자체다. 위정자들은 사람들이 모이고 관심이 쏠리는 이벤트를 그냥 내버려두질 않는다. 고대 그리스 올림픽도, 근대 올림픽도 수없이 정치적 도구로 이용돼왔다. 1936년 히틀러의 나치 정권이 베를린올림픽을 통해 강한 독일과 민족적 우월성을 과시하려 한 게 대표적이다.

이번엔 외교적 보이콧뿐이지만 이전엔 경기 참가를 거부하는 일이 종종 벌어졌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선 인종차별 정책을 벌이는 남아공과 럭비 친선경기를 한 뉴질랜드의 올림픽 참가가 허용되자 아프리카 28개국이 불참을 선언했다. 1980년 모스크바 대회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하기 위해 서방 국가들이 일제히 불참했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엔 동구권 국가들이 참석하지 않은 반쪽 올림픽이 연이어 열렸다.

쿠베르탱의 주창으로 시작된 근대 올림픽도 어느덧 120여 년의 역사를 쌓았다. 만국박람회의 부속 행사로 치부되던 대회는 어느새 세계에서 가장 큰 이벤트로 성장했다. 하지만 평화를 내건 올림픽은 전쟁을 막기는커녕 분쟁에 치이기 일쑤였다. 정치적 갈등으로 툭하면 보이콧을 내세우는 열강의 등쌀에 지금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렇게 올림픽이 받고 있는 오욕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자초한 부분이 크다.

최근 중국 테니스 선수 펑솨이가 자국의 부총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뒤 자취를 감춰 신변이상설이 제기됐을 때,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논란 진화에 앞장서 필요 이상으로 중국을 두둔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바흐 위원장은 외교적 보이콧 논란에도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간의 행보 때문에 ‘선택적 중립’이라는 비아냥을 받고 있다. 스스로 강대국의 눈치만 살피며 상업적 이윤 추구를 우선시 했던 IOC의 책임이 무겁다.

이번 베이징 대회는 위기의 올림픽이 앞으로 어떻게 나가야 할지 곱씹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올림픽의 숭고한 이상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뜯어고쳐야 할지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 돼야 할 것이다.

이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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