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대홍수 때 섬마을 완전 고립
주민 237명 높이 7m 물탱크로 피신
스크럼 짜고 14시간 버텨 전원 구조
과정서 갓난 아기 숨진 슬픈 사연도
단양군, '기적의 섬' 프로젝트로 개발
다음달 590m 섬 연결 현수교 착공
섬 한바퀴 도는 2.5km 둘레길 조성
50년 전 수백 명의 마을 주민이 홍수를 피해 물탱크 위에서 14시간을 버텨 극적으로 살아남은 얘기가 전해오는 남한강 시루섬이 관광 명소로 거듭난다.
충북 단양군은 현재 황무지로 버려진 남한강 시루섬을 생태관광지로 조성하는 ‘기적의 섬’ 사업을 내년부터 본격화할 계획이라고 11일 밝혔다.
이를 위해 군은 먼저 단양역 인근 5번 국도에서 시루섬을 거쳐 맞은편 수양개 관광지를 잇는 다리를 건설하기로 했다. 총 190억 원을 들여 다음달 착공하는 다리는 길이 590m, 폭 1.8m의 도보 전용 현수교로 건설된다. 2023년 초 개통 예정인 다리 이름은 ‘기적의 다리’다.
기적이란 명칭이 붙은 이유는 시루섬이 간직한 기적 같은 사연 때문이다. 시루섬은 단양군 단양읍 증도리에 속하는 6만 1,000㎡ 규모의 남한강 수중도. 모양이 시루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과거 소금 뱃길로 번성했던 섬은 1972년 8월 19일 태풍 ‘베티’의 습격으로 대홍수를 겪었다. 남한강이 범람했고, 섬 전체가 물에 잠겼다. 44가구 237명의 주민은 집을 빠져 나와 필사적으로 탈출했다. 이들이 몸을 피할 수 있는 곳은 높이 7m, 지름 4m의 마을 물탱크뿐이었다. 사다리를 엮어 너나없이 물탱크 위로 올라갔다. 청년들은 밖에서 팔을 걸어 단단히 죄고 노약자들을 보호했다. 온 마을 주민이 몸을 부둥켜안은 채 밤을 꼬박 새며 14시간을 버텨냈다. 불어난 물이 매달린 무릎까지 차오른 순간에도 주민들은 필사적으로 견뎠고,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당시 물탱크에는 갓 돌이 지난 아이를 안고 피신한 아낙이 있었다. 이웃끼리 부둥켜안고 버티는 과정에서 엄마 품속의 아이가 압박을 견디지 못해 숨지고 말았다. 하지만 엄마는 울 수가 없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릴 수도 없었다. 동요가 생기면 대열이 흐트러져 마을 사람들의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강물은 물탱크 6m 높이까지 차올랐다가 빠졌고, 다음날 새벽 구조대의 도착으로 14시간의 사투는 끝이 났다.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주민들은 아이의 죽음을 뒤늦게 전해 듣고 함께 통곡했다.
베티는 하루 강수량 407.5㎜를 기록하는 등 한반도에 물폭탄을 쏟아부은 초대형 태풍이었다. 당시 전국에서 550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는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그러나 시루섬에서는 수중도가 완전히 잠기는 대홍수를 당하고도 주민 거의 모두가 목숨을 건지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후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시루섬 물탱크의 기적’ ‘기적의 섬’ 등으로 회자되기 시작했다.
시루섬은 1985년 충주댐 건설로 섬 일부분이 수몰되면서 사람들이 떠나기 시작했고,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황무지로 변했다. 홍수기 때 섬 일부가 잠기기를 반복하면서 대부분이 늪지로 남아 있다.
단양군은 시루섬에 얽힌 사연을 알리기 위해 2017년 섬이 잘 보이는 단양역 인근 국도변에 ‘시루섬 기적 소공원’을 만들었다. 이곳엔 젊은 여인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갓난아기를 안고 있는 동상과 스크럼을 짜고 사력을 다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담은 동판 조형물을 세웠다. 또 ‘시루섬의 기적’이란 글에 14시간 사투를 벌인 과정과 아이가 숨진 슬픈 사연을 기록해 놓았다.
단양군은 시루섬 연결 다리가 완공되면 섬을 느긋하게 감상할 수 있는 2.5㎞의 둘레길을 만들 예정이다. 수십 년 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섬이라, 생태를 자연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 군의 설명이다. 단양역 앞 나루에서 시루섬을 보트로 오가며 수상 레저를 즐길 수 있는 사업도 군은 구상 중이다. 류한우 단양군수는 “시루섬에 교량이 생기면 느림보강물길, 단양잔도, 수양개빛터널 등의 관광지와 단양역이 곧바로 연결된다”며 “황무지 섬을 남한강 생태와 스토리텔링이 어우러진 관광 명소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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