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백악관 10일 각료급 회의서 논의"
'단일 목적' 안건 바이든에게 보고될 듯
'핵 선제 불사용'에서 한발 물러섰지만
"中·北에 잘못된 메시지 줄 수도" 우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핵무기 사용 목적을 억지·반격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핵 사용 조건을 더욱 명확하고 엄격히 해 국제사회의 긴장을 낮추기 위해서다. 동맹들의 반발을 샀던 ‘핵 선제 불(不)사용(no first use)’ 원칙에선 한발 물러선 것으로 알려졌지만, 미국의 핵 억지력 약화 가능성을 우려하며 촉각을 곤두세우는 시선은 여전하다.
9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 미국 백악관이 10일 각료급 회의를 열고 핵무기 정책 관련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다음 달 미국의 핵전략 수립을 위한 가이드라인인 ‘핵태세 검토 보고서(NPR·Nuclear Posture Review)’를 발표할 예정인데, 해당 전략의 방향을 정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자리다.
이번 회의에서는 ‘단일 목적(sole purpose)’ 원칙이 언급될 가능성이 크다. 신문은 “(백악관 참모들은) 핵 사용 원칙을 보다 명확히 하는 ‘단일 목적’ 채택 여부 안건을 바이든 대통령에게 보고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 원칙은 재래식이나 생화학 무기는 배제하고, 오로지 핵 공격에 대한 대응 목적으로만 핵무기를 사용한다는 게 핵심이다. 매우 제한적 조건에서만 핵무기 발사 버튼을 누르도록 한다는 뜻이다.
미국은 냉전 시대 이후, 핵무기 정책의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 왔다. 경우에 따라 핵을 선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북한, 러시아, 중국 등의 도발을 억제하는 효과를 내기 위해서였다. 자연히 동맹국들은 미국의 ‘핵 우산’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지난 10월 말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이 직접 핵 공격을 받지 않는 한 먼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곧 ‘핵 선제 불사용’ 원칙을 채택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동맹국은 비상이 걸렸다. 미국의 핵 정책 변화는 국제사회 안보 위협과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북한 등이 핵무기 또는 압도적 재래식 전력을 내세워 주변국을 압박하거나, 실제 무력 사용에 나설 경우 효과적으로 억제할 방법이 없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커졌다. 영국, 프랑스 등 일부 국가는 미 정부를 상대로 반대 로비에 나서기도 했다. 일단 미국은 해당 원칙 채택 의사를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FT는 “최근 협의에서 미국 관료들은 유럽과 아시아 동맹국에 ‘바이든 행정부가 핵 선제 불사용 원칙을 채택하진 않을 것’이라고 안심시켰다”며 “동맹국들도 환영의 뜻을 표했다”고 전했다.
미 백악관과 국무부는 관련 언급을 피하고 있다. 만일 이날 보도가 사실이라면, 백악관 내부에서 ‘단일 목적’ 카드를 대안으로 꺼내 든 셈이다. 하지만 이 원칙에 대해선 아직 명확히 합의된 정의가 없다. 곰곰이 따져 보면 핵 선제 불사용 원칙과 크게 다르지도 않아 보인다. 다만 일각에서는 ‘단일 목적’이 핵 무기 사용 상황을 보다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미국 워싱턴 비영리단체인 군비통제·비확산센터는 “핵 선제 불사용 원칙은 미국이 핵무기를 먼저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자, 핵은 전쟁이 아닌 억지력을 위한 것이란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단일 목적’은 수단으로서의 핵 사용을 의미하며, 미국이 자국과 동맹·파트너를 방어해야 하는 극한의 상황에서 이를 쓸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미 군사전문 온라인매체 ‘워온더락스’도 “핵 선제 불사용은 기본적으로 핵무기 사용에 대한 사전 제약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나, ‘단일 목적’은 미국이 핵무기를 왜 보유하고 있는지 설명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핵무기 선제 불사용 원칙을 미국의 핵 정책으로 채택할 가능성을 둘러싸고 세계 각국에서 반대 목소리가 잇따르자, 바이든 행정부가 ‘톤 다운’에 나섰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핵 사용 조건과 범위를 지금보다 명확히 하면서도, 동맹국들의 우려는 다소 해소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둔 셈이다.
하지만 우려는 여전하다. ‘단일 목적’ 사용은 ‘핵무기 선제 사용 금지’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라는 이유다. FT는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의) 어떤 해명도 억지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걱정한다”고 전했다. 실제 일본 외무장관을 지낸 고노 다로 자민당 의원은 이달 7일 미 헤리티지재단 행사에서 “단일 목적은 중국과 북한에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미 의회 내에서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 지역에 병력을 집결시키는 상황에서 미국이 핵 정책을 바꾸는 것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물론, 동맹국들에게도 최악의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핵무기 제한은 결과적으로 적성국에만 좋은 일이라는 논리다. 물론 반론도 팽팽하다. 핵 정책 수정을 옹호하는 측에서는 “미국이 핵에 대한 명확한 원칙을 보일 경우, 국제사회의 핵 긴장이 줄어들고 우발적인 충돌도 방지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일단 바이든 행정부는 또 다른 대안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핵 사용 조건을 재래식 무기의 ‘생존 위협’까지 확대하거나, ‘단일 목적’ 대신 ‘근본 목적’이라는 변형된 원칙을 도입하는 방안이다. 예컨대 “핵 무기의 주요 역할은 핵 공격을 저지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며 약간의 모호성을 남겨두는 식이다.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핵 전문가 로버스 수퍼는 “바이든 대통령은 ‘근본 목적’을 정치적 문제의 해결책으로 본다”며 “이 방안이 당초 취지를 가장 덜 훼손하는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