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에 동원된 조선인의 후손이 거주하는 일본 우토로 마을에서 8월 일어난 화재와 관련, 방화 용의자인 20대 남성이 지난 6일 체포됐다. 이 용의자는 해당 범행에 앞서 올 7월에는 나고야시 소재 재일대한민국민단(민단) 아이치현 본부 건물, 이곳과 인접한 한국 학교에도 불을 붙인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어, ‘혐한’ 증오범죄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NHK와 간사이TV 등에 따르면, 교토부 우지시 우토로지구에서 지난 8월 30일 밤 발생한 화재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6일 나라현 사쿠라이시에 거주하는 아리모토 쇼고(有本匠吾·22) 용의자를 체포했다. 화재 당시 빈집에서 불이 나기 시작해 건물 7개 동이 불탔고, 내년 4월 개관 예정인 평화자료관에 전시할 계획이던 역사 자료 약 50점도 소실됐다.
이와 별개로, 아리모토 용의자는 7월 24일에도 민단 아이치현 본부 건물과 바로 옆 건물인 한국학교의 배수관에 방화한 혐의로 이미 지난 10월 체포돼 수사를 받고 있었다. 재일동포 사회에서는 7월 29일 민단 나라현 본부 건물에 발생한 방화 의심 사건 역시 이 용의자의 소행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경찰은 아리모토가 범행을 인정했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은 채, 동기와 여죄를 조사하고 있다.
아리모토 용의자가 한국과 관련된 건물에만 잇따라 방화한 것은 일본 사회에 퍼지고 있는 혐한 분위기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재일동포 사회는 그동안 주로 인터넷상의 혐오 글 게시나 극우단체의 가두연설 등에 그쳤던 혐한 행위가 테러에 가까운 범죄로 이어지는 조짐일 수 있다며 불안해하는 분위기다. 특히 방화 행위가 있었던 7, 8월은 도쿄올림픽 기간이다. 당시 다수의 일본 주간지나 인터넷 매체는 “한국 선수단이 선수촌에 반일 깃발을 걸었다” “후쿠시마산 식품을 피하기 위해 자체 조리 식품만 먹는다” 등과 같은 공격적 보도를 쏟아냈다.
7월 방화 피해를 입은 민단 아이치현 본부의 조철남 국장은 “생활 속에서 한국계 또는 약자에게 가하는 ‘헤이트 스피치’가 용인되는 분위기가 생겼는데, 결국 범죄로 이어지게 된 것 같다”며 “한일관계 악화가 장기화하면서 동포사회가 위험한 상황이 됐다”고 우려했다. 그는 “지자체에서 헤이트 스피치 금지 조례를 만드는 등 노력하는 곳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한일 우호 분위기가 조성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우토로 마을은 일제강점기인 1940년대, 조선인 1,300여 명이 군 비행장 건설에 강제 동원돼 형성됐다. 일본의 패전으로 비행장 건설이 중단됐지만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이들은 차별과 빈곤 속에서도 서로를 의지하며 살았다. 지난 1989년 토지 소유주가 우토로 주민의 퇴거를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 2000년 주민 측의 패소가 확정됐으나 이들은 터전을 지키기 위해 투쟁했다. 한일 양국 시민들의 지원 활동이 확산되면서 기부금과 한국 정부의 지원금 등으로 일부 토지를 매입, 주민들은 강제퇴거 위기를 면했다. 2015년엔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소개되기도 했다. 내년 4월엔 우토로지구에 연면적 450㎡, 지상 3층 규모의 우토로평화기념관이 설립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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