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을 말렸어야 했어!" 환자 배 속 들러붙은 장을 보는 순간, 후회가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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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을 말렸어야 했어!" 환자 배 속 들러붙은 장을 보는 순간, 후회가 밀려왔다

입력
2021.12.1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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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서원준 외과 전문의

편집자주

의료계 종사자라면 평생 잊지 못할 환자에 대한 기억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생명을 구한 환자일 수도 있고, 반대로 자신에게 각별한 의미를 일깨워준 환자일 수도 있다. 아픈 사람, 아픈 사연과 매일 마주하는 의료종사자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수술 받으시다가, 혹은 수술 후 회복하지 못하고 돌아가실 수도 있습니다.”

환자는 복부를 가득 채운 종양과 함께 나를 찾아왔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수술을 할 수밖에 없고, 수술 중 혹은 수술 후 돌아가실 확률이 높음을 환자에게 설명했다. 환자가 내 말을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살려만 달라고 반복할 뿐이었다.

나는 두려운 마음으로 환자의 배를 열었다. 배는 종양으로 가득 차 있었다. 종양은 너무 커서 장을 누르고 큰 혈관들과 맞닿아 있었다. 환자는 몇 년 전 한 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제대로 항암 치료를 하지 않았다. 재발한 종양은 거대해져 있었다. 다시 시작한 항암치료는 이미 커질 대로 커진 종양을 줄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환자는 먹지 못했고, 종양 내부는 피로 가득 차 올랐다.

나는 천천히 종양을 이리저리 움직여보며 살길을 찾아봤다. 유착이 있는 곳은 조금 열고, 장과 붙어 있는 곳은 조금 떼어내며, 종양을 이리저리 돌려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소장과 대장의 일부는 같이 떼어낼 수밖에 없었다. 다시 종양을 위아래로 옮겨 봤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종양은 바위처럼 끄떡하지 않았다. '여기는 떼어낼 수 없을 것 같은데, 종양은 들어내지 못할 텐데, 여기까지만 절제할까?'.

시간은 지난하게 흘렀고 점점 몸에 힘이 빠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툭! 한순간 종양을 힘겹게 둘러싸고 있던 얇은 막이 터지며 고여 있던 핏덩어리가 쏟아져 나왔다. 항암치료로 인해 얇아진 막이었다. 애써 침착하며, 내가 해야 할 일들을 계속했다. 햇병아리 외과의사에게 일면식 없는 마취과 선생님은 부산하게 움직일 뿐,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서둘러야 했다. 대동맥 주변에는 미세한 혈관들이 많다. 그 출혈들은 하나하나 정확히 잡기는 어렵다. 피가 올라오는 부위를 거즈로 누르고 클립으로 잡고 전기소작기로 지졌다. 내가 보고 배웠던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정신없이 피를 잡으며 마치 모래를 헤집듯이 이리저리 종양을 둘러쳤다. 그리고 마침내 종양이 툭 하고 떨어졌다. 때어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종양을 두 손을 겨우 받쳐 들어올리자 온몸에 저릿한 전율이 흘렀다.

수술은 12시간에 가까웠다. 종양과 함께 떨어져나간 소장과 대장을 다 이을 수 있는 방법이 없어, 겨우 소장 몇 군데를 잇고, 대장을 복벽으로 빼는 장루(인공항문)를 만들었다. 나는 수술방을 나와 보호자에게 지난한 수술 과정을 설명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일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환자는 예상보다 빨리 회복했다. 혈액 수치들이 천천히 정상으로 돌아왔고, 엑스레이 사진으로 보이는 수많은 배 속의 클립 자국에도 불구하고 밥을 잘 삼켰다. 만들었던 장루는 배 안으로 다시 넣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고, 그는 상관없다고, 살려줘서 고맙다고만 했다. 환자는 열흘 남짓 지나 퇴원했다.

몇 달이 지나고 전쟁 같던 기억이 희미해질 때쯤, 환자가 다시 찾아왔다. 장루를 넣어주면 안 되냐고 간절히 말했다. 나는 수술 후 생겼을 유착과 남은 장의 구조적인 변이가 예상돼 어렵다고 답했지만, 환자는 좀처럼 진료실을 떠나지 않았다. 환자의 간절한 눈빛에 내 마음은 약해졌고, 대장항문외과의 다른 교수님이라면 혹시 장루를 넣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수술 날짜가 잡혔다. 아마도 그 교수님은 평소 장루복원술보다 조금 더 난도가 있겠거니 생각하며 배를 열었을 것이다.

“서 선생!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해. 들어와서 같이 봐줘야 될 것 같아.”

수술방은 침울했다. 장들은 구별되지 않았고, 배를 열면서, 벌써 여러 군데의 장이 열려 있었다. 장루는 손도 댈 수 없었다. 다시 한번 후회가 밀려왔다. 그때 환자를 말렸어야 했다. 힘겹게 들어올렸던 종양의 무게가 고스란히 다시 내게 느껴졌다.

이후 환자는 합병증으로 병동에 오래 머물렀다. 그의 배에 연결된 여러 주머니는 미처 아물지 못한 장에서 새어 나오는 담즙으로 인해 초록색이었다. 그런 채로 몇달이 흘렀고, 대장항문외과 교수님의 치료 덕에 겨우 퇴원을 할 수 있었다. 그날 이후 더 이상 그는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그 환자를 겪은 뒤 한참 동안 나는 종양을 들어올리던 첫 번째 수술의 전율과, 장 유착으로 손댈 수조차 없던 두 번째 수술의 후회를 잊을 수가 없었다. 특히 후회의 무게가 더 크게 느껴졌다. 그즈음 나는 여러 가지 일로 지쳐가고 있었다. 10년 넘게 병원에서 살았지만, 늘상 있는 그 고단함 위에 커다란 종양 중량만큼의 후회가 더해진 것 같았다. 오늘까지만, 이 환자까지만, 이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교수님, 고맙습니다."

수술 후 무사히 퇴원하는 어느 환자의 말 한마디가 그날 따라 특별하게 들렸다. 마치 생전 처음 듣는 말처럼, 그 말은 나를 강하게 붙잡았다. 스스로 극복하지 못한, 후회로 가득 찬 마음속 커다란 응어리가, 천천히 녹아 내림을 느꼈다.

"아닙니다, 무사히 퇴원해줘서 제가 더 고맙습니다"

고려대구로병원 위장관외과 임상조교수

※잊지 못할 환자에 대한 기억을 갖고 계신 의료계 종사자분들의 원고를 기다립니다. 문의와 접수는 opinionhk@hankookilbo.com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선정된 원고에는 소정의 고료가 지급되며 한국일보 지면과 온라인페이지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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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린 환자, 나를 깨운 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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