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에 미소가 없어서 감점"... 성과금 깎이고 식비 떼이는 상담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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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에 미소가 없어서 감점"... 성과금 깎이고 식비 떼이는 상담사들

입력
2021.12.09 04:30
수정
2021.12.09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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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착취의 지옥도, 그 후]
<19>서울신용보증재단 상담사들의 파업
원청은 '생활임금 이상' 지급, 업체 주머니로


지난 10월 최선 서울시 의원이 현장 방문을 한 이후에야 민간 위탁업체가 서울신용보증재단 콜센터 사무실 한쪽에 비치한 사무용품. 그 전에는 상담사들이 개인 돈을 들여 사무용품을 사야 했다. 원청인 재단이 주는 운영비는 어디에 쓰였던 걸까. 희망연대노조 서울신용보증재단고객센터지부 제공

지난 1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신용보증재단 앞. 기자회견이 열린다고 해서 찾아갔는데, 한국일보 기자 한 명을 제외하곤 기자가 없는 쓸쓸한 회견이었다.

서울의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 신용보증과 자금을 지원하는 서울시 산하 서울신용보증재단 콜센터의 상담사들. 칼바람 속에서 기자회견에 나선 이유는 원청(재단)이 주는 직접인건비 중 매월 수십만 원이 중간에 사라지기 때문이다. 재단으로부터 민간위탁을 받은 A업체 소속의 간접고용 노동자들로서 간접고용 노동에 족쇄처럼 따라오는 '중간착취'의 흔한 희생자들이다.

불안정한 신분이지만 11월 29일부터 5일간 큰맘 먹고 부분파업도 했다는 이들의 사연을 들어봤다.


1일 서울 마포구 서울신용보증재단 앞에서 재단 콜센터 노동자들이 저임금 대책, 정규직 전환 논의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전혼잎 기자


원청에서 주는 '생활임금'은 어디로?

재단 콜센터의 4년 차 상담사 김정연(36·가명)씨. 백화점과 홈쇼핑, 온라인 쇼핑몰 상담사를 거친 베테랑이지만 월급은 200만 원(세전) 안팎이다. 저임금이 답답해서 올해 1월 원청에 정보공개청구를 했더니 "용역계약 체결 시 직접 인건비는 서울시 생활형임금 '이상'으로 산정하고 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서울신용보증재단은 올해 1월 18일 노조에 "직접인건비는 생활임금 이상으로 산정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희망연대노조 서울신용보증재단고객센터지부 제공

생활임금이란 실제 생활이 가능하도록 최저임금보다 높게 설계된 임금이며, 올해 서울시 생활임금은 법정근로시간 기준 월 223만6,720원(세전)이다. 정확한 액수를 밝히지 않고 있지만 재단은 올해 그 이상을 내려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투자출연 및 출자출연기관 직접 채용 노동자나 서울시 위탁 사무 수행 노동자 등에게 '생활임금' 이상을 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재단 콜센터 상담사들은 '투자출연기관의 민간위탁 노동자'에 속해서 교묘하게 적용 대상이 아니다.

결국 재단이 생활임금 이상으로 직접인건비를 지급하는데도, 이는 노동자에게 오롯이 가지 못하고 위탁업체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교통비·식비 등 수당도 사라져

2019년 초 서울신용보증재단이 작성한 고객센터 세부 산출내역서. 중식대 8,000원, 교통비 2,600원이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 지급된 적이 없다고 한다. 희망연대노조 서울신용보증재단고객센터지부 제공

노동자들이 어렵게 입수한 2019년 서울신용보증재단의 용역 원가계산서를 보면 중식대 8,000원과 교통비 2,600원이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받아 본 상담사는 아무도 없다.

노조가 항의하자 업체 측은 "실제 계약에선 식비 등 항목이 없어졌고 성과 인센티브 등 대부분 인건비로 책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영업상 비밀이므로 세부 내용을 알려줄 수는 없다"라는 입장이다.

정부의 '민간위탁 노동자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라인'엔 "위탁기관(원청)은 개별 노동자에게 실제 지급된 임금을 확인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재단은 확인한 적이 없다. 재단 관계자는 "실제로 얼마를 지급하는지는 A업체의 역할이라 (재단은) 권한이 없다"라고 정부 가이드라인이 부여하는 원청의 확인 권한을 무시하는 말을 했다.

다만 내년 신규 입찰 시에는 '생활임금 이상을 보장한다'라는 문구와 재단이 관리·감독을 하겠다는 점 역시 명시하겠다고 설명했다.

"음성에 미소가 없다"고 감점

무엇보다 성과 인센티브 기준은 큰 고통이다. 김민정 희망연대노조 서울신용보증재단고객센터지부장은 "관리자가 정해둔 멘트를 하지 않거나 재복창 등을 하지 않으면 콜품질(QA) 평가에서 감점이 된다"면서 "필요한 내용을 정확히 전달하더라도 음성에 미소가 없어서, 어조가 평이해서 감점을 당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9월까지는 15분 '조기출근'을 하지 않거나 연차 휴가 일자를 변경하는 경우에도 실적급 상대평가 시에 반영, 성과금이 깎였다.

4년 이상을 일하면 근무 햇수와 상관없이 상담사 20여 명의 기본급은 203만4,000원(세전)으로 정해진다. 원청이 산정한 '생활임금 이상'은 주지 않은 채, 성과 인센티브(월 4만~24만 원)와 칭찬콜 프로모션(고객칭찬 4콜 이상부터 월 1만~3만 원) 등으로 채찍을 가한다. 명절상여금(연 2회 각 12만 원) 정도가 그나마 차등 없이 지급된다. 평균 근속 연수가 4.2년에 그치는 건 필연이다.

보통의 위탁계약에서 원청은 업체에 이윤과 운영비도 별도 책정해 지급하지만, 상담사들은 업무에 필요한 메모지나 펜, 파일철 등 사무용품도 자비로 사야 했다. 올해 10월 최선 서울시 의원의 현장 방문 이후에야 사무실 한쪽에 비치됐다.

정규직 전환 약속도 안 지켜져

서울신용보증재단 콜센터 상담사들이 3일 서울 마포구 재단 앞에서 주철수 신임 이사장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전혼잎 기자

서울시는 지난해 12월 서울신용보증재단을 비롯한 서울교통공사·서울주택도시공사(SH)에 콜센터 상담사들을 정규직으로 직고용하라고 통보했다. 그러나 1년이 되도록 재단의 소극적인 태도에 협의기구조차 구성되지 못하고 있다.

11월 재단 측 관계자는 노조와 면담 자리에서 "임금이나 처우 개선, 정규직 전환 협조 등을 명시할 경우 민간 업체가 신규 입찰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며 "(그 경우) 재단 정규직 직원을 투입, 콜센터 운영을 생각하고 있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단 측 관계자는 본보의 문의에도 "내년에 임금 문제나 노동환경 개선에 맞춰서 신규 민간위탁 공고를 올린다는 것 외에는 정해진 사항이 없다"라고 답했다.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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