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예산 처리 막바지에 "내년 50조 반영하자"
예산 삭감·국채 발행 모두 현실성 없어
여당, 뒤늦게 '불가능' 인정했지만 혼란만 가중
현실성을 따져 보지 않은 대선 후보의 공약이 막바지에 이른 예산 협의에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50조 원 손실보상’ 제안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내년 예산에 반영하자”고 받으면서다.
당초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604조 원)의 8.3%를 새로 편성해야 하는 만큼 재원 조달 가능성도, 기한 내 처리 가능성도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여당도 이를 의식한 듯 30일 “50조 원을 담기는 불가능하다”며 하루 만에 이 후보의 제안을 뒤집었다.
50조 조달? 예산 삭감·국채 발행 모두 불가능
정부가 당초 예산안에 반영한 손실보상 재원이 1조8,000억 원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50조 원은 사실상 대부분 새로 조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국회로 예산 편성의 공이 넘어간 상황에서 새로 돈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기존 예산을 삭감하거나 추가로 국채를 발행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과거 예산 편성 사례나, 현재 재정 상황을 고려하면 예산 삭감, 국채 발행 모두 현실성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처리 과정에서 예산 총액이 늘어난 것은 2010년 이후 지난해가 처음인데, 그나마도 2조2,000억 원에 그쳤다.
당정이 합의한 올해 기존 예산 삭감 폭은 2조4,000억 원인데, 예산 삭감을 통해 손실보상 예산의 절반만 조달한다고 해도 10배가 더 필요하다. 소상공인 지원금, 백신 구매비용 등을 충당하기 위해 예년보다 기존 예산을 많이 깎았던 지난해 삭감 폭도 5조3,000억 원이었다.
추가 국채 발행은 앞으로의 재정에 부담이 되는 것은 물론 국채 시장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이미 정부는 국회에 예산안을 제출할 당시 내년 적자국채를 77조6,000억 원 발행하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도 50.2%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여기다 약 20조 원의 적자국채를 더 찍는다고 가정해도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1%포인트 더 높아지는 상황이다. 아무리 거대 의석을 가진 여당이라고 해도 무리하게 적자국채 발행을 밀어붙이기 어렵다는 뜻이다.
‘무리수 공약-뒤집기’에 예산편성 혼란만 가중
이러한 현실을 감안한 듯 민주당은 하루 만에 ‘50조 예산’은 불가능하다고 인정했다. 박완주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예결위 삭감액이 2조4,000억 원이기 때문에 아무리 삭감을 많이 해도 5조 원 이상을 하기 어렵다”며 “최선을 다해 소상공인 지원 예산을 우선 담으려 하고, 나머지 부분은 필요하다면 추가경정예산(추경)을 생각해야 한다. 그게 현실적”이라고 밝혔다. 특히 국채시장의 불안을 우려한 듯 "추가 국채 발행은 없다"고도 못 박았다. 여당 대선 후보의 발언을 같은 당 정책위의장이 하루 만에 번복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자꾸 반복되고 있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이 후보는 지난 10월 “1인당 30만~50만 원의 재난지원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후 “여력 없다”는 김부겸 총리와 홍남기 부총리의 반발을 샀다. 민주당은 이를 위해 19조 원의 초과세수를 활용하자는 구상까지 만들었지만, 재원이 부족하다는 점을 받아들이고 약 3주 만에 주장을 철회했다.
이 후보의 주요 정책인 지역화폐에 대한 당정의 입장차도 예산 합의를 가로막고 있다. 민주당은 지역화폐를 올해 수준인 21조 원 이상 발행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정부는 ‘정상화할 시점’이라며 6조 원으로 발행 규모를 줄였다. 당정은 이날 예산 협의에서도 이와 관련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국채를 추가로 발행하기보다는 이번에는 가용 예산만 편성한 뒤, 내년 초 구조조정이 가능한 예산이 무엇인지 다시 따져 추경을 편성하는 것이 현실성 있는 대안"이라며 "정확한 추계도 없이 큰 정책을 내세웠다 뒤집는 것은 혼란만 줄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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