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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공약: 서거하기

입력
2021.11.29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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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홧발에 주눅들어 계엄사의 주장을 묵묵히 받아쓰고도 제대로 사과한 적 없는 언론은 두 글자 단어로 전두환을 뒤늦게 심판했다. '사망'.

'①사람이 죽음' 혹은 '②자연인이 생명을 잃음'이라고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이 정의하는 말. 중앙일간지 10곳 중 한국일보를 포함한 6곳이 '전두환 사망'이라고 보도했다. '서거' '타계' '별세'에 담긴 정중함과 우러름을 조금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이를테면 말로 한 부관참시 의례였다.

그러나 '사망'으로는 어쩐지 헛헛하다. 부귀에 천수까지 누리고 사죄 없이 떠난 독재자의 뒤통수에 날린 악담치곤 너무 얌전스럽다. 기자들의 간이 여전히 작은 탓일까? 한국인 특유의 정(情) 때문일까?

그보다는 마땅한 말이 없어서다. 국어사전을 뒤져봐도, 국립국어원에 물어봐도 전두환 같은 악한의 죽음에 딱 들어맞는 말은 없다. '뒈X다' '골X 가다' 유의 비속어는 화자의 울화를 전달할 뿐 망자의 평판을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부적합하다.

시대와 필요는 언어를 확장한다. 한국어는 죽음을 섬세하게 다루는 언어다. 전직 대통령이 자꾸 사망하면 언젠가 '사망'의 정의가 추가될 것이다. '③나쁜 권력자가 애도받지 못하고 죽음'. 국어사전을 개정해야 할 지경에 이르기 전에, 대통령들은 사망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사랑받았든 미움 받았든 똑같이 '다이'(Die)하는 미국에서 대통령을 할 게 아니라면 말이다.

"죽음을 통해 삶의 교훈을 얻는다"는 말은 상투적이지만 인간 보편의 진리다. "공포가 아니면 무엇이 인간을 참회하게 합니까." 웹툰 '지옥'의 대사도 씁쓸하지만 진실에 가깝다. 그렇다면, 자신의 죽음이 '사망'으로 규정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좋은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통치자의 친구인 공포는 아주 가끔은 피통치자의 편에 서기도 한다.

"훗날 서거할 자신이 있는가." 대선후보들이 진지하게 자문해 봤으면 한다. 그런 고민 없이 대통령이 되고 보겠다는 마음이라면, 역사의 평가보다 이번 주 지지율이 중요한 정도의 그릇이라면, 서거한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길을 따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기적인 권력욕, 빗나간 애국심만 믿고 대선에 출마했다 감옥에서 노후를 보내는 처지가 됐다. 아마도 그들은 서거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망하는 대통령'은 죽지 않아도 되는 국민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착취당하는 특성화고 학생, 감시 사각지대에서 매 맞는 아이, 구조되지 못한 성폭력 피해자, 복지시스템이 놓친 독거 노인… 힘없는 그들은 감히 별세하거나 타계하지 못하고 그냥 죽어서 사망자 통계 속 '1'이 되어 잊힌다. 유능하고 정의로운 대통령, 그래서 '사망하지 않는 대통령'에게 그들의 목숨과 이름을 지킬 책임이 있다.

대선후보 이재명, 윤석열, 심상정, 안철수, 김동연. 그들에겐 이미 사망할 자유가 없다. 혼인하는 애인들이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듯, 사제가 신 앞에 복종을 서약하듯, 대선후보들은 서거를 공약하라. 누가 대통령이 되든, 비참하게 사망하지 말고, 아쉽게 별세하지도 말고, 먼 미래에 부디 거룩하게 서거하라.


최문선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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