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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들의 극단적 선택… 정부 근절 대책 무색한 공직사회 '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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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들의 극단적 선택… 정부 근절 대책 무색한 공직사회 '갑질'

입력
2021.11.28 18:00
수정
2021.11.28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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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숨진 18명 중 '공공' 종사자 9명
예방교육·제재 실효성 떨어져
"공무원법에 '괴롭힘 금지' 명시해야"

전국공무원노조 대전·충남·세종 소방지부(소방노조)가 지난 25일 대전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직장 내 갑질 피해를 호소하던 전 대전소방본부 직장협의회장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과 관련해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대전=연합뉴스

전국공무원노조 대전·충남·세종 소방지부(소방노조)가 지난 25일 대전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직장 내 갑질 피해를 호소하던 전 대전소방본부 직장협의회장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과 관련해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대전=연합뉴스

지난 9월 대전시 공무원 2명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 연달아 발생했다. 9월 5일 대전소방본부 소속 40대 공무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같은 달 26일엔 새내기 9급 공무원이 숨졌다. 두 사건의 원인에는 공통적으로 '직장 내 갑질'이 있다. 유족들은 이들이 동료와 상사로부터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했다고 호소했다.

정부가 공공분야 갑질을 근절하겠다며 종합대책을 수립한 지도 벌써 3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존재하는 '갑질 사각지대'는 대전시만의 일일까. 올해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주요 사례의 절반이 공공부문 종사자라는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잘 보여준다.

"약 더 먹으며 버텨요"… '갑질' 내몰린 공무원들

28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올 1월 1일부터 11월 27일까지 언론 보도와 국민신문고를 통해 파악한 직장 내 괴롭힘 극단적 선택 사례를 살펴보면, 신원이 확인된 직장인 18명 중 공공기관 근무자가 9명이다.

공공부문 직장 내 괴롭힘 극단적 선택올해 기준<자료: 직장갑질119>

일시 회사명 성별 연령대
1월 10일 국립중앙청소년디딤센터 30대
2월 8일 서울시(서울시립미술관) 20대
2월 25일 해양경찰(통영) 30대
9월 5일 대전소방본부 40대
9월 16일 동두천시 20대
9월 26일 대전광역시 20대
9월 27일 동대문구어린이집 20대
10월 2일 안성시교육지원청 50대
10월 16일 인천경찰청 30대

직장갑질119로도 정신적 고통과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공공기관 직장인들의 호소가 끊이지 않는다. 지난 10월 상담을 요청한 A씨도 그중 한 명이다. 모두 보는 앞에서 무능력하다고 소리치고 식사 자리에 부르지도 않는 상사의 괴롭힘에 지친 A씨는 용기를 내 다른 곳으로 발령을 내 달라고 했지만 묵살당했다. 오히려 그 상사는 "자꾸 그런 요청을 하면 나랑 매우 좋지 않은 관계가 될 것"이라며 겁을 줬다.

A씨는 정신과 약물 치료로 버티고 있다. 그는 "출근을 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쪼이는 것 같은 통증을 느끼고 울컥하거나 숨이 막히는 증상 탓에 다른 사람과 길게 대화를 나누지 못한다"며 "상사랑 같이 있으면 이 증상이 더 심해져 약물을 추가 복용하지 않고는 도저히 근무할 수 없을 지경"이라고 말했다.

대전시청 공무원 고(故) 이우석 주무관의 어머니 김영란씨가 지난달 26일 대전시청 앞에서 아들의 죽음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씨는 이 주무관이 지난 7월 신규 부서로 발령받고 직장 내 따돌림을 겪다 우울증으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주장했다. 대전=뉴스1

대전시청 공무원 고(故) 이우석 주무관의 어머니 김영란씨가 지난달 26일 대전시청 앞에서 아들의 죽음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씨는 이 주무관이 지난 7월 신규 부서로 발령받고 직장 내 따돌림을 겪다 우울증으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주장했다. 대전=뉴스1


"교육 실효성 없고 가해자 징계도 소극적"

전문가들은 공직사회 구조 자체가 갑질 악순환의 연속이라고 꼬집는다. 일단 위계질서와 상명하복 조직문화가 유독 강하다. '잘릴 걱정은 없다'는 높은 고용 안정성은 가해자에게도 적용된다. 어차피 가해자와 같이 일해야 한다는 생각에 대응을 포기하는 피해자가 많다. 적극적 피해 신고를 주저하게 되고, A씨 사례처럼 내부에서 유야무야 덮어 버린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가해자 징계까지 이어지지 않으니 근본적 변화가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 잇따른 갑질 논란에 휩싸인 대전시가 조직 진단 후 내놓은 문제의 원인은 '세대 차이'였다.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문제라는 식으로 책임을 돌린 것이다. 가해자 처벌이나 진상 규명엔 소극적이란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있지만, 공무원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예방 교육, 신고 시스템 마련, 가해자 처벌 및 제재 강화 등을 골자로 3년 전인 2018년 7월 정부가 발표한 '공공분야 갑질 근절 종합대책'이 정작 현실에선 작동하지 않는 것도, 강제적인 법 조항이 없는 입법 미비가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직장갑질119 대표 권두섭 변호사는 "종합대책이 구현되지 못하는 데다 예방교육도 각 조직문화에 대한 면밀한 조사 없이는 실효성이 없다"며 "근로기준법에 있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규정이 공무원에게 적용될 수 있도록 같은 내용을 공무원 관련 법에도 명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맹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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