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침해라고 정색하기도 어렵고…" 책 찍는 '셔터족'에 서점들 골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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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침해라고 정색하기도 어렵고…" 책 찍는 '셔터족'에 서점들 골머리

입력
2021.11.2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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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구매하지 않고 촬영만 하는 행위 빈번
대형서점 "단속도 신고도 여의치 않아" 난색

26일 서울 영등포구 한 서점 매대에 '도서는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받는 저작물입니다'라는 사진 촬영금지 문구가 붙어 있다. 나광현 기자

# 28일 정오쯤 서울 송파구의 대형 서점. 중년 남성이 수험서 코너에서 책을 들추다가 휴대폰으로 촬영을 시작했다. 한 공기업의 채용시험 교재였다. 촬영은 10초가량 이어졌고 가까이 있던 손님들은 못 본 체했다. 근방에 직원이 있었지만 업무를 보느라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른 코너에선 여성 고객이 사회복지학 서적을 촬영한 뒤 도로 진열대에 꽂았다. 기자가 사진을 찍었냐고 묻자 여성은 "목차만 본 것"이라고 해명했다.

# 같은 날 오후 서울 강남구 대형 서점엔 여성 2명이 책장에서 아동용 책 5권가량을 차례로 꺼내 펼치고는 사진 촬영했다. 주위에 직원은 없었다. 두 사람은 기자에게 "유튜브 방송에 쓰려고 책을 낸 출판사 목록을 확인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저작권법 위반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이렇게 찍어 인터넷에 올리면 작가 입장에서도 홍보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신고당할 일이 아닌 걸로 안다"고도 했다. 이 서점 벽면엔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는 저작물이므로 사진 촬영을 금합니다'라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었다.

구매하지 않은 책을 촬영하는 이른바 '셔터족' 때문에 서점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저작권 침해 소지가 있는 행위이지만 일일이 위법 여부를 확인해 제지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매출은 고사하고 촬영 과정에서 책이 손상돼 피해를 당하는 일도 발생한다는 것이다. "차라리 책을 훔친다면 법적 대응이라도 할 텐데, 고객들의 양심에 기댈 수밖에 없는 문제"라는 게 이들의 하소연이다.

"대놓고 찍는 고객 적지 않아"

한국일보가 취재한 서울 시내 대형 서점들은 대부분 셔터족에 대처할 방도를 찾지 못해 난감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영등포구 소재 A서점 직원은 "책 사진을 찍는 손님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면서 "아예 동영상을 찍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 서점은 요리, 여행서적 코너를 중심으로 사진 촬영 금지 문구를 매장 곳곳에 붙였고, 인기가 있는 책을 구매하지 않으면 볼 수 없도록 비닐로 싸두기도 했다.

책 촬영에 거리낌 없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송파구의 B서점 관계자는 "직원들 눈을 피해 책을 촬영하는 분들도 있지만, 대놓고 찍는 고객들도 적지 않다"면서 "촬영을 단속할 전담 직원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속수무책"이라고 말했다. 강남구 C서점 관계자는 "촬영을 제지하면 대부분은 알겠다고 하지만, 어떤 고객은 책을 들고 다른 데로 가거나 계속 사진을 찍기도 한다"고 말했다. 대형 서점엔 으레 마련돼 있던 독서용 좌석이 코로나19 방역 조치에 따라 사라지면서 이런 '몰래 촬영'이 늘어났다는 증언도 나온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 관계자는 "스티커 배포 등 캠페인을 해왔으나 여전히 서점에서 책을 촬영하면 안 된다는 인식의 변화는 없는 것 같다"면서 "서점으로서는 특별히 제재할 수 있는 부분이 없어 아쉽다"라고 말했다.

유튜브 방송 등 영리용이면 위법 소지

서점들이 책 촬영을 제지하면서 내놓는 논리는 '저작권 보호'다. 저작권법은 저작물의 임의적인 복제 또는 배포 행위를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셔터족에게 이런 처벌 규정을 적용하긴 쉽지 않다. 저작권법엔 공표된 저작물을 영리 목적 없이 개인적으로 이용하는 경우엔 복제를 허용한다는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전문영 변호사는 "본래 저작권은 배타적 권리이지만 그렇게만 하면 문화 발전이 안 되니까 영리적으로 쓰지 않는다면 '사적 복제'를 허용하자는 취지"라면서 "서점 입장에선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상품을 이용하는 행위라고 여길 수 있지만, 단순 촬영은 저작권법으로 처벌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선식 한국출판인회의 저작권위원장도 "출판 유관단체에 확인한 결과 단순 책 촬영 행위를 고발한 사례는 없었다"면서 "일일이 셔터족을 고발해도 출판사나 저작권자의 실익이 없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책의 주요 내용을 촬영해 유튜브 방송 등에 게시할 경우엔 문제가 달라진다. 유튜브 방송은 광고 수익이 따르기 때문에, 이를 위한 책 촬영 행위는 영리 활동으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선 실제 출판물을 허락 없이 사용한 유튜버가 저작권자에게 고소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말이 나온다. 한 변호사는 "비밀 유지 조건 때문에 자세한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북튜버(책을 다루는 유튜버)와 관련해 저작권법 위반 사례로 송사를 맡은 건이 꽤 있다"고 말했다.

나광현 기자
서현정 기자
원다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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