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몽골반점이? 첨엔 그 말 안 믿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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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몽골반점이? 첨엔 그 말 안 믿었죠"

입력
2021.12.0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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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웃 , 몽골 유학생 빌렉 온다르히
석사 공부 어려웠지만 몽골인의 자존심으로 버텨
한국 문화 친숙하지만 '빨리 먹기'는 적응 어려워
"아시아를 모두 경험한 후에 대사관에서 일할 것"


빌렉 온다르히(오른쪽)씨가 ‘한국 엄마’ 노정희(왼쪽) 대구대 교수와 함께 석사 학위증을 들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택시 기사가 '우리 한국인도 몽골반점 있다'고 했을 때 속으로 생각했어요. 에이, 거짓말!"

빌렉 온다르히(25)는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2017년에 한국으로 왔다. 몽골 국립대에서 국제관계학 전공으로 졸업장을 받은 후 대구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했다. 몽골 시절부터 그룹 '빅뱅'의 골수팬이었지만 한국에 올 때만 해도 한국을 잘 몰랐다. 어학당을 다니던 시절 택시 기사에게 "한국인의 특징이 몽골반점"이라는 말을 듣고도 '몽골반점은 몽골사람에게만 있다'는 굳은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나중에 한국인들에게도 몽골반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살짝 미안한 마음이 일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미안한 마음이 가셨다. 어학당 수업에서 교수로부터 뜻밖의 질문을 받고 나서였다.

"몽골 학생들은 학교에 갈 때 말을 타고 갑니까?"

그때 온다르히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버스 타고 갑니다. 한국처럼요."

그는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한국 아이돌 그룹에 몽골인 멤버가 들어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에 몽골을 좀더 널리 알릴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남자 친구가 떠났지만, 한국행을 멈출 순 없었죠"

온다르히씨가 한국에 온 것은 남자 친구의 영향이었다. 남자 친구가 한국으로 가자고 했고 흔쾌히 동의했다. 입국 절차를 밟던 중에 남자 친구와 헤어지긴 했지만 "달리는 말(馬)을 멈출 수는 없어서" 그대로 한국으로 왔다. 더불어 나이 서른이 될 때까지 한국, 중국, 일본을 다 경험해보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어차피 가야 할 나라라는 생각이었다.

처음엔 후회도 했다.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던 첫날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내내 맴돌았다. 당장이라도 몽골행 비행기를 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부모님께 돌아가겠다는 말을 할 면목이 없었다.

두 번째 고비는 1년 동안의 어학당 과정을 마치고 석사과정을 시작하면서였다.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웬만큼 익혔다고 생각했는데 대학원에서는 어림도 없었다. 그때도 '몽골인의 자존심 때문에' 집으로 가고 싶다는 말은 차마 못 했다. 기숙사 룸메이트에게 이렇게 말했다.

"수업에 참가할 수 없을 만큼 몹시 아팠으면 좋겠어!"

하루하루 막막하던 그 시절 온다르히씨에게 큰 힘이 되어준 사람이 있었다. 그는 "그분이 아니었다면 중도에 공부를 포기했거나, 학위를 받을 만큼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노정희 교수님께 너무 감사해요. 저의 '한국 엄마'나 마찬가지예요. 엄마처럼 꼼꼼하게 공부를 챙겨주셨거든요. 교수님 덕분에 무사히 석사 학위 받았어요."

아등바등 공부를 이어가는 사이 일상에서는 어느새 한국 사람이 다 됐다. 그는 "한국과 몽골은 서로 비슷한 점이 너무 많다"고 했다. 음식도 그렇다. 한국인의 소울푸드인 삼겹살이 그의 '최애 메뉴'다. 그는 "몽골에 돌아가도 ‘가장 먹고 싶은 음식’ 리스트 안에 삼겹살이 꼭 들어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빨리빨리'는 괜찮은데 '빨리 먹기'는 아직도 힘들어요"

반면 적응하기 힘든 한국 문화도 있다고 했다. '빨리 먹기'다. 그는 "빨리빨리 문화까지는 이해하겠는데 밥은 좀 천천히 먹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커피숍 문화도 마찬가지였다.

"학교 친구들과 밥 먹고, 고기 먹고, 술 마시고 다 했는데 또 커피숍에 가는 거예요. 거기서 이야기를 하자고 하는데 '고기집에서 충분히 대화를 했는데 왜 또 커피숍에 가지?'하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오히려 커피숍을 즐긴다. 작은 일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마인드, 한국인들의 끈끈한 정이 굳이 커피숍까지 가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게 만드는 요소라는 걸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게 된 까닭이다.

이해하기 힘든 건 아니지만 볼 때마다 놀라는 것도 있다. 겨울철 여성들의 옷차림이다.

"몽골은 영하 35도까지 내려가지만 공기가 건조해서 온도만큼 춥게 느껴지진 않아요. 한국의 추위는 몽골 사람에게도 혹독한데, 한국 여자들은 겨울에도 치마를 입고 다녀요. 추위에 관한 한 한국 여자들이 몽골 사람보다 더 센 것 같아요, 하하!"

온다르히씨는 이르면 내년에 다른 아시아 국가로 떠날 계획이다. 목표한 대로 서른 즈음까지 아시아의 모든 나라를 다 경험하려면 일정이 빠듯하다고 밝혔다.

"아시아를 모두 경험한 후에 대사관에서 일할 거예요. 아시아 여러 나라들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 꿈이지만, 그중에서도 한국은 저에게 늘 최애 국가가 될 것입니다. 문화와 습관이 몽골과 너무 비슷한 만큼 두 나라가 더 가까워졌으면 해요. 제가 두 나라를 더 밀접하게 만드는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빌렉 온다르히씨의 가족 사진. 뒷줄 왼쪽이 빌렉 온다르히씨다.


김광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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