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층간소음 흉기 난동' 사건서
강력범죄 현장 이탈한 경찰... 뭇매 쏟아져
"현장 대응 강화하겠다"는 경찰의 약속
유사 사건 때마다 도돌이표처럼 반복
'현장 기피', '경직된 의사결정 시스템'
근본적 개선 없는 대안에 내부서도 냉소
인천에서 발생한 '층간소음 흉기 난동' 사건으로 인해 경찰의 현장 부실 대응이 강한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25일 실전 위주의 훈련을 강화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는데요. 구체적으로 "다음 주부터 일선 경찰관 7만 명을 대상으로 1인당 1발씩 발사형 전기충격기(테이저건) 실사 훈련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뿌리 깊게 자리한 '현장 기피 분위기'를 타파할 수 있을 것인지 경찰 내부에서조차 회의적 목소리가 나옵니다. 현장과 시민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한 근본 대책이 맞는지, '보여주기'에 급급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시각이 존재한다는 얘깁니다.
강력범죄 현장에서 등 보이며 이탈한 경찰
경찰이 지탄받는 가장 큰 이유는 ①경찰이 흉기에 찔린 피해자를 두고 현장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현장에 출동했던 A 순경은 4층 주민이 3층에 거주하는 여성의 목 부위를 흉기로 찌르는 상황에서 현장을 이탈해 1층으로 내려갔습니다.
함께 출동했던 B 경위는 1층에서 피해자의 남편과 대화 중이었는데요. 두 사람은 딸의 비명 소리를 듣고 3층으로 뛰어올라갔으나, B 경위는 계단을 내려오는 A 순경을 보고 함께 빌라 밖으로 나왔습니다.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열리는 빌라 공동현관문이 닫혀 뒤늦게 사건 현장으로 복귀했고요.
그사이 피해자의 남편은 맨손으로 몸싸움을 벌이다 흉기에 찔려 다쳤습니다. 목 부위를 찔린 피해 여성도 중상을 입어 아직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A 순경은 테이저건을, B 경위는 권총을 소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돼 ②장비를 적절히 사용했다면 피해를 줄였을 수 있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사건이 알려진 초기엔 A 순경의 부적절한 대처가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여성 경찰관이라는 사실에 온라인에선 또다시 '여경 무용론'이 불거지기도 했죠.
그러나 그가 현장에 배치된 지 7개월차인 수습경찰(시보) 신분이었다는 점에서 ③'2인 근무조' 원칙이 철저히 지켜져야 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또 B 경위도 A 순경을 따라 빌라 밖으로 벗어났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④성별과 관계없이 부실 대응 자체가 문제라는 여론이 더 커졌습니다.
경찰은 24일 대기발령 중이던 두 경찰을 직위해제 조치하고 조만간 이들에 대한 징계위원회를 열기로 결정했습니다.
인천 사건으로 드러난 경찰의 고질적 문제
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면서 경찰의 현장 대응 시스템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구체적으로 ①경찰 교육 문제가 도마에 올랐는데요. 우선 재교육의 경우 2019년부터 현장 경찰은 1년에 한 번 테이저건 훈련을 받도록 했지만, 올해 실제 훈련을 받은 경찰은 10명 중 1명꼴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한국일보 취재 결과 경찰공무원 시험 합격자들을 임용 전 교육하는 중앙경찰학교에서도 테이저건 훈련은 정례화돼 있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는데요. 서울 지역에서 근무하는 3년차 경찰관은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한 분이 60여 개 학급의 스케줄을 짜다 보니 강의 시간표가 유동적이다. 일정이 빡빡하면 테이저건 실습을 못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중앙경찰학교가 현장에 초점을 맞춰서 교육해야 한다는 건 매년 제기되는 문제"라고 강조했습니다.
경찰의 한 고위 관계자도 한국일보에 "가장 즉각적인 문제는 교육이 부족하다는 것"이라며 "세상은 복잡해졌는데 옛날 이론을 가르치고, 실무는 선임에게 배우라는 식"이라고 말했습니다.
②경찰이 물리력 사용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도 공통된 지적입니다. '총을 쏘는 것보다 던져서 맞추는 게 더 낫겠다'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팽배하다는 얘깁니다.
곽대경 동국대 교수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미국은 소송이 붙으면 조직 차원의 대응을 하는데, 우리는 조직이 여론에 휘둘리고 경찰 개인에 '알아서 하라'고만 하니까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 "공무 중 상해를 입었을 때 치료 지원도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사고 나서 다치거나 목숨을 잃으면 개죽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현장 중심 교육 강화하자' 대안 나오지만
상황이 이렇다보니 인천 사건 이후 ①'경찰 교육을 강화하자'는 데 초점이 모이고 있습니다. 김 청장이 테이저건 실습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여론을 의식한 조치로 보이죠.
곽 교수는 "(층간소음, 가정폭력, 스토킹 등) 다양한 시나리오별로 위기 수준에 따라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며 "강의식이 아니라 실제 범죄 상황처럼 실습하는 훈련 교육이 강화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이에 더해 "경찰은 일반공무원과 다르다"며 "군인들처럼 매년 체력 측정을 해 나이에 관계없이 현장 업무에 대비하도록 해야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②경찰 채용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는데요. 필기 위주의 채용 방식으로 인해 소위 '직업 의식'이 없는 경찰들까지 들어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따른 대안입니다. 오 교수는 "적지 않은 인원이 '60세까지 공무원하다가 퇴직 후 연금 타 볼까' 하는 생각에 지원하는 것 같다"고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그는 "현재 시민들이 경찰에게 거는 '가치 기대'와 '가치 현실' 사이의 괴리가 크다"며 "체력과 무도의 비율을 지금보다 높여 어떤 상황과 임무가 주어지든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주장했는데요.
물리력 사용을 기피하는 경향에 대해선 ③매뉴얼에서 벗어나지 않는 경우 경찰관 개인의 판단을 지지해주는 조직 문화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됩니다. 경찰 고위 관계자는 "경찰은 순간적 판단을 해야 하는데 그 판단을 징계한다면 아무도 나서지 않을 것"이라며 "사명감을 뒷받침하는 시스템이 부재하면 보신주의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진짜 문제는... 현장 기피와 뿌리 깊은 냉소
문제는 대안에 대해 경찰 내부에서부터 냉소가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서울 지역에서 근무하는 12년차 경찰관은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현장 인원을 늘려라, 장비를 보강하라, 교육 강화하라, 사기 진작하라는 얘기는 모두가 예상했던 대안"이라며 "경찰 내부망에서는 '또 현장만 압박하겠구나'라는 한탄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는 "승진 욕심이 있고 제대로 된 일을 하고 싶은 사람들은 여경, 남경 상관 없이 내근을, 외근을 해도 정보계열을 선호한다"며 "그러다 보니 현장엔 고령 경찰관과 신입만 남는 구조가 오래전부터 되풀이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어떤 좋은 대안도 경찰의 근본 체질 개선 없이는 '말짱 도루묵'이란 얘깁니다.
그는 이어 "승진 정원 중 현장 경찰의 몫을 따로 빼놓는다든가 현장 수당을 30% 더 주는 등 파격적 제안이 나온다면 모를까, 냉소를 떨치기엔 조직이 이미 많이 갈라치기됐다"고 고개를 내저었습니다.
경찰 내부의 냉소는 경직된 의사결정 시스템에서 비롯됐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현장과 외부 전문가의 목소리까지 담은 장기적 안목의 정책보다는,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 식의 정책들이 난무한다는 것입니다. 경찰 핵심 연구기관인 치안정책연구소 소장 자리에 경무관을 앉히면서 비판적 성찰 없는 논의가 반복된다는 지적이 대표적인데요.
경찰 고위 관계자는 "사건의 실체와는 관련 없는 여경무용론이 반복되는 것도 여경이 어디에 부족하고, 어떻게 운용해야 할지에 관한 실무적인 고민 없이 숫자 늘리기에만 급급했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여경이 꼭 필요하고 충원돼야 하는 건 맞지만 '정치적 수사'로만 활용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는 지적입니다.
그런데 '경찰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냉소는 과연 경찰 내부에만 존재하는 것일까요. 2019년 경남 진주에서 발생한 '아파트 방화 살인' 사건 때도 경찰의 미흡한 대응이 구설에 올랐습니다. 당시에도 강력범죄 초기 진압을 위해 경찰 장구를 강화해야 한다는 현재와 비슷한 대안들이 거론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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