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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마지막 요양보호사 시험장에서

입력
2021.11.25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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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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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에서 벽난로 피우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굴뚝에 조금씩 오르는 연기에서 타닥타닥 나무 태우는 따뜻한 향기가 난다. 살짝 열어 둔 욕실 창 틈으로 스미는 찬바람은 모양이 그려질 만큼 선명해졌다. 말 많고 탈 많았던 올해 고3 수험생들도 무사히 수능시험을 치렀고, 동네 정원의 나무들도 하나 둘 겨울 맞을 준비를 하며 잘렸다. 모두가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겨울의 시작, 새로운 봄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온 국민이 치러낸 행사였던 수능에 비하면 대부분 언제인지도 몰랐을 올해 마지막 요양보호사 자격시험에서 만난 분들이었다. 몇 차례 이런저런 시험의 감독관으로 일해 봤지만, 요양보호사 자격시험은 여느 시험과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빈 자리가 상당했던 다른 자격시험과는 달리 결시자가 거의 없었다는 점도, 60대 이상 응시자가 20~30% 이상이라는 점도 특이했다. 예전에 임용시험을 감독할 때는 인생이 걸렸다는 듯 비장한 청년들의 눈빛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았었는데, 이번에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있는 늙고 주름진 손이 내내 마음이 쓰였다.

"아이고, 떨려서 죽겠네" 연신 중얼거리던 어르신들은 이내 "선생님, 여기 좀…" 하며 다급하게 도움을 청하셨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작성하다 보니 응시번호를 적는 데만도 몇 장이나 답안지 교체를 하는 분들이 많았다. 왜 아닐까, 컴퓨터용 사인펜으로만 표시해야 하는 OMR답안지가 낯설기만 한 분들이었다. 십수 년 동안 시험기계처럼 훈련을 받았던 우리와는 또 다른 세대였다. 컴퓨터가 채점한다는 답안지의 그 작은 동그라미 칸에다 검은 사인펜으로만 채워 넣는 것도 일이었고, 가늘고 붉은 숫자만 가득한 답안지를 문제지와 대조해가며 밀리지 않게 옮기는 것도 일이었다. 1㎜도 삐쳐나가면 안 된다는 듯 하나하나 손으로 되짚어가며 답란을 채우는 모습은 어쩔 땐 경건할 정도였다.

두툼한 돋보기까지 동원해 가며 90분 동안 80문제를 풀어내는 동안, 어느 어르신의 굽은 어깨에서는 잠시도 쉬지 않고 웍질을 하던 페낭의 국수가게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어색하게 펜을 잡고 있는 거친 손에서는 온갖 재료를 썰어내느라 손이 퉁퉁 불어 있던 말라카의 낡은 죽집 할머니가 떠올랐다. 손이 오지게도 많이 가는 반찬들을 매일매일 해내는 우리 동네의 고마운 백반집 아주머니도 생각났다. 평생 일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해온 사람들이, 또 다른 이를 돌보는 노동을 하기 위해 시험을 보는구나 싶어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내가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다"며 폄하하시지 않도록, 우리 세상이 남을 돌보는 '이것'을 귀하게 대접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생겼다.

시험 종료 10분 전, 또 5분 전 알림이 들릴 때마다 심장을 부여잡으며 놀라던 57년생 할머니도 무사히 시험을 마치셨다. 참 다행이었다. 시험장을 나서는 뒷모습에 대고 "아유,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사흘 전 합격자 발표가 났던데 모두들 좋은 소식이 있었나 궁금도 하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노란 낙엽이 벚꽃처럼 내렸다. 단풍은 나무가 마지막으로 온 힘을 다해 피우는 꽃이라 했다. 찬란하게 핀 나무의 마지막 꽃잎처럼, 그 무엇보다 강렬한 인사를 남기는 낙엽처럼, 누구보다 열심히 시험을 준비했을 그 마음들이 따뜻한 꽃을 피웠으면 좋겠다.


전혜진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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