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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년 ‘고구려의 혼’ 간직해 온 일본 신사에서 ‘김치 축제’... 한일 교류의 장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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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년 ‘고구려의 혼’ 간직해 온 일본 신사에서 ‘김치 축제’... 한일 교류의 장 됐다

입력
2021.11.22 17:5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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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토야마 전 총리 "할아버지가 이 신사 방문 후 총리돼"
강창일 대사 "日, 고구려 받아들인 큰 나라" 포용력 촉구

일본 사이타마현 히다카(日高)시의 고마(高麗) 신사는 668년 고구려가 멸망한 후 일본에 건너온 왕족 고약광(고려약광·高麗若光:고구려 마지막 왕인 보장왕의 아들 )을 모신 신사이다. '고마군 건군 1300년 기념 제5회 일한친선교류 김치 축제'가 열린 22일 고마 신사의 입구에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라 쓰인 장승이 서 있다. 이 장승은 한일 수교 40주년을 기념해 한국에서 만들어 온 것이다. 히다카=최진주 특파원

일본 사이타마현 히다카(日高)시의 고마(高麗) 신사는 668년 고구려가 멸망한 후 일본에 건너온 왕족 고약광(고려약광·高麗若光:고구려 마지막 왕인 보장왕의 아들 )을 모신 신사이다. '고마군 건군 1300년 기념 제5회 일한친선교류 김치 축제'가 열린 22일 고마 신사의 입구에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라 쓰인 장승이 서 있다. 이 장승은 한일 수교 40주년을 기념해 한국에서 만들어 온 것이다. 히다카=최진주 특파원

“어렸을 때 ‘우리 조상은 고구려에서 왔지만 일본이라는 나라를 함께 만들었다’는 말을 아버지로부터 들었습니다. 이 지역은 한반도 역사를 알고 있기 때문에 (한국인이나 재일코리안에 대한) 차별이 없습니다.”

도쿄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반 거리인 사이타마현 히다카(日高)시. 단풍이 곱게 물든 산자락 아래 ‘고마(高麗) 신사’가 자리 잡고 있다. 한반도와 일본 열도의 오랜 관계를 보여주는 특별한 장소다. '일한친선교류 김치 축제'가 열린 22일 신사에서 만난 고마 후미야스(高麗文康·55) 궁사(宮司·신사의 우두머리)는 환한 미소로 기자를 반겼다. 일본에서 느낀 독특한 반가움. 앞서 신사에 가까워질수록 묘하게 마음이 움직였다. 입구에 도착하자 눈에 띈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라고 쓰인 큰 장승 때문이었다.

기존에 있던 목재 장승이 쓰러지자 2005년 한일 수교 40주년을 맞아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등이 한국에서 제작해 건너왔다고 한다. 신사 안으로 들어가면 참배 장소까지 가는 오솔길 옆으로 유명인사들이 심은 나무가 줄줄이 서 있다. 1942년 영친왕 이은과 부인 이방자 여사가 심은 나무도 있고, 역대 주일 한국대사와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가 심은 나무도 보인다. 무려 1,300년 전 고구려 유민이 세웠다는 고마 신사. 독특한 유래를 지닌 이곳이 오랜 기간 한일 교류의 장이 돼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 사이타마현 히다카(日高)시의 고마(高麗) 신사에 있는 유명인사들의 기념 식수 장소. 키가 큰 두 나무는 1942년 영친왕 이은과 부인 이방자 여사가 심은 나무다. 히다카=최진주 특파원

일본 사이타마현 히다카(日高)시의 고마(高麗) 신사에 있는 유명인사들의 기념 식수 장소. 키가 큰 두 나무는 1942년 영친왕 이은과 부인 이방자 여사가 심은 나무다. 히다카=최진주 특파원


668년 고구려가 신라·당 연합군에 무너진 후, 고구려 마지막 왕 보장왕의 아들인 고약광(고려약광·高麗若光·일본 이름 고마노잣코)과 유민들은 현해탄을 건너 이곳에서 모여 살았다. 고마 후미야스 궁사가 고약광의 60대손이다. 고약광이 일본에 도착한 이후 716년 간토(관동) 지역 고구려 유민까지 이주해 총 1,799명이 집결하면서 생긴 행정구역이 ‘고마군(高麗郡)’이다. 당시 고약광을 모신 고마 신사도 세워졌다. 1896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고마군은 폐지됐지만 아직도 고마가와(高麗川) 등 곳곳의 지명에 고구려의 흔적이 남아 있다.

고마 신사의 궁사(宮司·신사의 최고 신관)는 고약광의 후손인 고마(高麗) 가문이 대대로 맡아 왔으며, 역사를 바탕으로 오래전부터 한일 교류를 증진하는 행사를 꾸준히 해 왔다. 매년 10월 마지막 일요일에는 민단에서 주최하는 ‘10월의 마당’ 행사를 하고, 고마군 건군 1,300년을 맞은 2015년부터는 한식진흥원, 고려처가당, 신주쿠한국상인연합회 등이 주최하는 ‘일한친선교류 김치 축제’를 매년 열고 있다.

일본 사이타마현 히다카(日高)의 고마(高麗) 신사에서 22일 '고마군 건군 1300년 기념 제5회 일한친선교류 김치 축제'가 열렸다. 강창일(오른쪽에서 네 번째) 주일 한국대사와 하토야마 유키오(오른쪽에서 세 번째) 전 일본 총리 등이 한국 요리 전문가의 지도로 김치를 담그고 있다. 히다카=최진주 특파원

일본 사이타마현 히다카(日高)의 고마(高麗) 신사에서 22일 '고마군 건군 1300년 기념 제5회 일한친선교류 김치 축제'가 열렸다. 강창일(오른쪽에서 네 번째) 주일 한국대사와 하토야마 유키오(오른쪽에서 세 번째) 전 일본 총리 등이 한국 요리 전문가의 지도로 김치를 담그고 있다. 히다카=최진주 특파원


이날 열린 다섯 번째 김치 축제에는 강창일 주일 한국대사와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가 참석해 축사를 하고 김치도 담갔다. 강 대사는 “일본은 과거 고구려 사람을 받아들여 살 수 있게 한 큰 나라였다”며 “고마 신사가 있는 한 한일 관계도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을 큰 나라로 지칭한 것은 '포용력'을 강조해 한일 양국이 마음을 열 것을 촉구한 것이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조부(하토야마 이치로 전 총리)가 이 신사를 방문한 후 총리가 됐다”고 언급해, 고마 신사가 참배객 중 6명의 총리를 배출하면서 일본에서 ‘출세 신사’로 유명해진 점을 설명했다. 또 2주 전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만행이 남겨진 오카야마의 귀무덤을 참배한 사실을 밝히며 “일본이 한국에 폐를 끼친 역사를 알고 상처받은 이들에게 사과하는 일을 계속한다면 일한 관계도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사이타마현 히다카(日高)의 고마(高麗) 신사에서 22일 '고마군 건군 1300년 기념 제5회 일한친선교류 김치 축제'가 열렸다. 고마 신사가 모신 고구려 왕족 고약광의 60대손이자 고마 신사의 궁사(宮司)인 고마 후미야스씨. 히다카=최진주 특파원

일본 사이타마현 히다카(日高)의 고마(高麗) 신사에서 22일 '고마군 건군 1300년 기념 제5회 일한친선교류 김치 축제'가 열렸다. 고마 신사가 모신 고구려 왕족 고약광의 60대손이자 고마 신사의 궁사(宮司)인 고마 후미야스씨. 히다카=최진주 특파원


고마 후미야스 궁사는 2017년 이곳을 방문한 현 아키히토 상왕이 백제나 고구려 등에서 건너 온 ‘도래인’의 역사에 유독 관심이 많아 자신에게 많은 질문을 했다고 전했다. 고마 궁사는 조상들은 물론 현재까지 이어진 한일 교류 사업에 대해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하거나 결의를 갖고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한일 간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지금까지 이어진 대로 앞으로도 꾸준히 한일 교류를 실천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히다카= 최진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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