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지난달 5일 보수기준표 개정
"의무 업무 모두 수행해야 보수 지급"
변호사들 "사건 특성 고려 없는 제도"
서울의 한 검찰청은 지난달 중순 명단에 등록된 피해자 국선변호사들에게 '검찰청 예산으로 보수를 증액할 테니 업무에 적극 참여해달라'는 취지의 문자를 보냈다. 법무부가 피해자 국선변호사들의 보수 기준을 업무별로 엄격하게 제한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변호사들이 잇따라 국선 업무를 그만둘 수밖에 없다고 알려왔기 때문이다.
국선 업무를 맡고 있는 변호사들이 법무부가 지난달 5일 도입한 '피해자 국선변호사 기본업무-기본보수제'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피해자 상담이나 의견서 제출 등 원하는 업무를 선택적으로 하면서 일정 보수를 받아왔던 국선 변호사들이 당장 수사·재판 단계별로 △대면 상담 △의견서 제출 △수사기관 조사 참여 △공판 참여 등 기본업무 등을 전부 수행하지 않으면 보수를 지급받을 수 없게 된 탓이다. 법무부는 이에 더해 야간·휴일 업무 시 수당의 50%를 가산해주던 규정도 폐지했다.
법무부 "국선 업무에 소홀하다는 피해자 토로 많아"
법무부는 2012년부터 성폭력 및 아동학대·장애인 피해자를 위해 국가에서 변호인을 지원해주는 피해자 국선변호인 제도를 운영 중이다. 현재 대한법률구조공단 등에 소속돼 피해자 국선 사건만 전담하는 변호사는 23명, 검찰청과 연계돼 국선·개인 수임 사건을 병행하는 비전담 변호사는 576명에 달한다. 이 중 비전담 변호사가 지난해 기준으로 받은 보수는 1건당 16만7,000원 정도다.
법무부는 국선변호사들의 '불성실·소극적 지원' 때문에 보수기준 개정은 필요했다는 입장이다. 제도를 이용한 피해자들 대상 조사에서 국선변호사와의 소통 어려움, 피해자 조사 참여 저조, 법률 조력 요청 소극적 대처 등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는 것이다. 2018년 한국성폭력상담소 연구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변호사와 통화하기 너무 힘들다' '다른 일정이 있으면 공판에 갈 수 없을지 모른다고 말한다'는 등의 불만을 호소했다. 보수 기준을 바꿔 국선변호사에게 소송 업무를 처음부터 끝까지 맡게 할 경우 이 같은 불만이 조금은 해소될 것으로 법무부는 본 것이다.
국선 변호사들 "현실성 없는 개정... 이대로라면 다수 이탈"
하지만 피해자 국선 변호사들은 일방적 제도 개선이라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2012년부터 피해자 국선 업무를 하는 정수경 변호사는 "성실하지 않은 일부 변호사들의 문제를 바로잡을 필요는 있다"면서도 "다만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 얼굴 노출을 꺼려 대면 상담이 어렵다는 점 등 사건마다 사정이 다른데 의무업무를 고정한 것은 불합리하다"라고 비판했다. 또 야간·휴일 수당을 폐지한 것은 피해자가 직장인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평일 낮에는 조사받을 수 없는 상황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개선이란 지적도 있다.
일부는 사임하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인다. 피해자 국선 사건을 담당하는 이모(38) 변호사는 "개정안 발표 이후 일부 검찰청에선 사임하겠다는 변호사가 전체의 10%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일선 검찰청 등에선 이들의 이탈이 계속 이어질 경우 피해자들이 적절한 법적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란 우려를 전한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으로 피해자 국선변호사가 맡은 사건이 2만5,471건에 달할 정도다. 소송 현장에서 피해자 국선변호사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법무부는 이들의 반발에 보수기준표를 세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나섰다. 법무부 관계자는 "변호사 단체와 논의한 사안을 중심으로 빠른 시일 내 추가 보완 및 개정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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