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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과거사 문제, '해결'보다 '관리'를

입력
2021.11.22 00: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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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제
조병제전 국립외교원장

복잡한 한일관계, 원샷해결 난망
미 대선 등 양국관계 개선요인 많아
'일괄타결'보단 '신중한 관리' 집중해야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일본이 반도체 소재 수출을 규제하고 한국이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폐기를 통보하여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한일관계가 소강상태를 맞고 있다. 돌파구를 마련할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고, 새로 출범한 기시다 내각에 기대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일관계가 악화한 데 양국의 정치적 상황이 작용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아베 총리가 집권하면서, 과거사 문제는 '보통국가화'의 의제로 빨려 들어갔다. '뒤 세대에게 사죄의 숙명을 지게 할 수 없다'는 자세로 고노 담화를 재검토했고, 교과서 검정으로 과거사 기술을 바꾸어 나갔다.

한국은 시민사회가 성장하면서 위안부와 징용공 현안을 보편적 인권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2012년 대법원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승소를 판결했고, 6년 후 이를 재확인했다. 2015년 양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의 '최종 해결'에 합의했지만, 한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돌이켜 보면, 과거사 논의는 동아시아 세력균형 변화를 배경으로 이루어졌다. 일본은 2010년 경제력에서 중국에 추월당했다. 같은 해 동중국해 어선 나포 사건으로 중국 내 반일감정이 폭발했고, 일본은 중국의 희토류 수출금지 앞에 무릎을 꿇었다. 동중국해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중국은 2015년부터 남중국해 인공섬 건설에 속도를 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과거사 문제로 일본을 압박하자, 일본은 물론 미국도 한중 연합전선을 의심했다. 2015년 초 미 국무부 웬디 셔먼 정무차관은 "정치인들이 과거의 적을 헐뜯는 것으로 값싼 박수를 받으려 한다"고 하면서, 한국과 중국이 위안부 문제로 일본과 다투는 것을 비판했다. 그해 9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중국의 전승 70주년 행사에서 천안문 망루에 선 것이 일본과 미국의 의구심을 확인하는 듯했다. 일본은 인도태평양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인식 변화는 일본 공식 외교 문서에 그대로 나타났다. 일본은 2013년 안보전략보고서와 방위계획대강에서 한국을 '보편적 가치와 전략적 이익'을 공유한 나라로 미국 바로 다음에 열거했으나, 2018년에는 호주, 인도, 아세안보다 뒤에 배치했다. 외무성의 인식은 더 명료했다. 2021년 외교청서는 '관계를 안정시켜야 할 나라'로서 '중국, 한국, 러시아'를 하나로 묶었다. 일본이 10년 만에 새로 내는 내년도 안보전략보고서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이 흐름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은 한일 현안에 관한 한 상황이 불리하지 않다고 보는 듯하다. 한국이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는 한, 한미일 3국 협력의 틀을 벗어날 수 없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신축성의 여지가 없기는 한국도 비슷하다. 사법 판단이 걸려 있을 뿐 아니라, 사안 그 자체도 가해자와 다른 피해자의 기억이 있다. 정치적 결단을 말하거나 내리기가 쉽지 않다.

한일관계가 실타래처럼 얽혀 있어, 어느 한 가닥을 먼저 풀기 어렵다. 그래도 관계 악화에 국제환경이 작용했듯이, 새로운 환경이 맥락을 바꿀 수 있다. 특히 주시할 것은 미국 국내정치다. 이달 초 버지니아와 뉴저지주지사 선거 결과로 2022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다수를 잃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가 2024년 대선에 출마할 가능성도 크다. 그만큼 미국의 중장기 대외정책 전망이 어려워진다. 일본도 속내가 복잡할 것이다. 중국과 직거래할 필요성이 커질 수 있고, 한국의 전략적 가치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수 있다.

한일 양국 지도자가 결단을 내린다면, '단번에 해결하자'는 것보다 '조심스럽게 관리해 나가자'는 것이라야 맞다.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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