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소설 '호미' 쓴 정성숙 작가
“평생을 밭고랑 기어 댕겨서 손에 쥐어진 것이 뭣이겄냐. 이녁 새끼나 알아주는 훌륭한 골병에다 쳐다보기도 아깐 빚덩이밲에 더 있냐! (…) 늙어 꼬부라질 때까지 엎져서 흙을 파도 사는 각단이 안 뵈는 시상살이는 인자는 안 살고 잪다. 그 구덕 생각만 해도 징상스럽다!”
정성숙 작가의 소설집 ‘호미’에 실린 단편 ‘기다리는 사람들’의 한 대목이다. 작중 여성 농민인 미애는 “가꿔 놓은 농사와 함께 밟히기만 했던 지난날은 놔두더라도 빚더미에 눌려 숨이 막힐 것 같”고, “금방이라도 뒷덜미를 잡혀서 내동댕이쳐질 것같이 조마조마하기만 한 일상에서” 도망치고 싶어 집을 나가 버린다.
미애뿐 아니라 ‘호미’에 등장하는 농촌의 현실은 TV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뽀얗게 표백된 ‘힐링’의 공간이 아닌, 징글징글한 노동의 현장이다. 그중에서도 여성 농민은 가부장적 폭력이라는 이중고까지 감내해야 한다.
“천한 일은 호미를 쥔 자들의 몫”이라고 해남 지역의 생생한 입말과 정서로 말하는 이 같은 농촌 소설이 탄생할 수 있었던 까닭은 정성숙 작가가 실제 전남 진도에서 32년째 농사를 짓고 있는 여성 농민이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근래 한국문학에서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농촌 소설, 그것도 더욱 보기 드문 여성 농민의 삶이 그대로 담긴 귀한 책이 빚어질 수 있었다.
호미
- 정성숙 지음
- 삶창 발행
정 작가는 1964년 진도에서 태어나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다. 1980년대 대학가에는 노동 운동이 한창이었다. 정 작가도 시대에 휩쓸려 노동 운동에 투신했다가 농민 운동으로 방향을 틀었다. 16일 전화로 만난 정 작가는 “그때는 그게 삶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당시만 해도 노동 운동하는 사람에 비해 농민 운동하는 사람의 수가 적었어요. 노동 현장에서 해고 싸움하면서 지친 것도 있었고, 고향에 내려가 농민 운동을 해야겠다 싶었죠. 마침 남편도 고향이 진도라 같이 내려왔어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애들 업고 다니며 마을 단위로 농민 교육을 했어요. 농민들이 정작 농업 정책에 대해서는 잘 모르거든요. 수입 개방이 어떻게 이뤄지고, 이에 따라 농민들의 삶의 방향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교육했죠.”
농사일도 열심히 했다. 처음엔 구기자 농사를 지었다. 이후 고추 농사를 지었다가 인건비가 너무 많이 들어 그만뒀다. 요새는 대파와 배추 농사를 짓는다. ‘기다리는 사람들’에서는 고추 시세를 비관한 농부가 이백 근이 넘는 고추를 태우는 장면이 나온다. “고추 무더기에서 나는 앙칼지게 매운 연기가 눈과 코뿐만 아니라 목젖까지 톡톡 찌르는” 농가의 매캐한 설움이 종이 넘어 독자들에게까지 전해진다.
농사와 농민 운동을 병행하며 두 사내아이를 키우고 주부 역할까지 했다. 지난 일이니 담담히 말하지만 무던하게 흐른 세월은 아니었다. 그런 중에도 읽고 쓰는 일은 놓지 않았다. 농번기 때는 신문 쪼가리마저 읽지 못하고 잠들어야 하는 날이 숱했지만 천천히 조금씩 끈질기게 썼다. 오히려 읽고 쓰는 일은 일상의 해방구가 되어 줬다. “농민 운동이랑 농사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어요. 그런데 당위성만으로는 삶이 채워지지 않으니까요. 숨통이 필요했고, 그게 읽고 쓰는 일이었어요.”
그러다 2013년 한 문예지를 통해 작가 데뷔를 했다. 함께 농민 운동을 하던 많은 동료들이 제도권 정치를 향해 떠난 뒤 회의감이 찾아오던 때, 소설 쓰기는 새로운 농민 운동의 길을 열어 줬다.
“소설로 데뷔한 이후 여러 곳에 여성 농민의 삶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그게 너무 좋았어요. 지금껏 여성 농민의 입장에서 나온 글이 너무 없었잖아요. 어쩌면 그게 내 소임이 아닐까 싶어요. 팸플릿 속 딱딱한 글이 아니라 소설이라는 생생한 형식을 통해 농촌 현실을 말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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