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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손길 거부해온 중남미 오지... 주변국은 왜 개발을 꺼리나?

입력
2021.11.16 04:3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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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오늘날 세계경제는 우리 몸의 핏줄처럼 하나로 연결돼 있습니다. 지구촌 각 나라들의 역사와 문화, 시사, 인물 등이 ‘나비효과’가 되어 일상에까지 영향을 미치곤 합니다. 인문학과 경영, 디자인, 사회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진 경제학자의 눈으로 세계 곳곳을 살펴보려는 이유입니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가 <한국일보>에 3주에 한 번씩 화요일 연재합니다.


지난 9월 콜롬비아 아칸디 인근에서 미국을 향해 북상하는 아이티 이민자들이 파나마로 연결되는 다리엔 정글을 건너고 있다.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각종 위험이 도사린 정글도 마다하지 않고 미국으로 향하는 아이티 이민자들의 행렬은 끊이지 않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9월 콜롬비아 아칸디 인근에서 미국을 향해 북상하는 아이티 이민자들이 파나마로 연결되는 다리엔 정글을 건너고 있다.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각종 위험이 도사린 정글도 마다하지 않고 미국으로 향하는 아이티 이민자들의 행렬은 끊이지 않고 있다. 연합뉴스

<29>인류의 손이 닿지 않은 미지의 영역 다리엔 갭(darien-gap)

누구나 한 번쯤 자동차로 전 세계를 여행해 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을 것이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아시아로 넘어오거나 유럽으로 넘어오는 구간만 배를 이용하면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자동차 세계 일주의 부푼 꿈을 몽상으로 바꿔 버리는 구간이 있으니 다름 아닌 '다리엔 갭(darien-gap)'이다.

다리엔 갭은 파나마의 야비사(Yaviza)와 콜롬비아의 투르보(Turbo) 간 사이에 존재하는 길이 160㎞, 폭 50㎞ 규모의 정글과 늪지대로 지구상 가장 심한 오지 중 한 곳이다. 다리엔 갭은 미국 알래스카부터 아르헨티나 남단까지 이어지는 팬아메리카 고속도로’(총연장 4만8000㎞)‘가 유일하게 끊기는 구간이기도 하다. 오지 탐험을 좋아하는 여행객들이 여행 전에 보험에 가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다리엔 갭은 보험 가입조차 되지 않는 지역으로도 유명하다.

그렇다면 다리엔 갭은 왜 이처럼 우리 인류의 손길을 지속적으로 거부해 온 것일까? 독충과 악어 그리고 재규어와 아나콘다가 있는 정글이기 때문일까? 물론 과거에는 이러한 자연 조건으로 인해 다리엔 갭을 지나기가 어려웠던 적도 있다. 17세기 스코틀랜드에서 다리엔 갭 인근에 도시를 건설하려고 했지만, 정글과 늪지대의 특징과 전염병으로 공사가 중단된 바 있다. 그 뒤에 미국의 건설회사들이 다시금 도전했지만 역시나 도시 건설을 달성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최근에도 다리엔 갭이 인류의 손길에서 벗어나 있는 이유는 다른 데에 있다. 그것은 중남미 마약조직과 FARC라고 불리는 콜롬비아 반군이 해당 지역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시림 자체가 훼손되지 않고 보존되어 있는 곳인 다라엔 갭은 숨어지낼 수 있는 요새와 같은 곳이다. 이 때문에 반군 FARC는 콜롬비아 정부군에 밀려 이곳에 숨어들었다. 마약 조직원들 역시 다리엔 갭이 은밀하게 다니는 이동 루트가 되었고, 자연히 여행객들을 노리는 범죄자들도 증가했다.

지난 9월 미국과 국경을 이루는 멕시코 시우다드 아쿠나의 리오그란데강을 중남미 출신 이민자들이 불법으로 오가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9월 미국과 국경을 이루는 멕시코 시우다드 아쿠나의 리오그란데강을 중남미 출신 이민자들이 불법으로 오가고 있다. 연합뉴스


다리엔 갭 개발 원하지 않는 주변 국가들

다리엔 갭의 위험성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사례가 하나 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에디터인 로버트 영 펠턴이 2003년 당시 이 지역을 여행하던 중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에 납치됐다가 열흘 만에 풀려난 적이 있다. 그는 훗날 출간한 자신의 저서에 다음과 같이 당시의 상황을 기술하였다. “다리엔 갭은 (지구상에서) 아직 탐사되지 않은 마지막 지역일 뿐 아니라, 사람들이 진심으로 가기를 꺼리는 마지막 지역이다. 완전히 원시정글인데다 가시덤불, 말벌, 뱀, 도적떼, 범죄자, 그 밖에 안 좋은 모든 것이 다 있다.”

다리엔 갭이 여전히 개발되지 않는 이유를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는 이들도 많다. 경제성만을 생각한다면 조속히 개발하여 남미와 북미 지역이 원활히 소통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생기는 것이 훨씬 유리할 수도 있다. 도로가 생겨 트럭으로 중남미를 오갈 수 있게 된다면 높은 경제적 파급력이 예상되고, 중남미의 어려운 상황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원활한 이동통로가 생긴다는 것은 부정적인 요인들도 그만큼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된다.

다리엔 갭이 개발된다 하더라도 콜롬비아 마약 카르텔은 또 다른 인근 원시림 속으로 숨어들어갈 것이다. 특히 미국 입장에서는 이전보다 더 많은 양의 마약이 운반될 가능성만 높아진다고 판단할 수 있다. 미국은 이러한 부정적 효과를 우려하여 중남미 국가들을 경유해 미국으로 가려는 이주자들에게 개방적 국경 정책을 제공하고 있는 중남미국가들이 미국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해 오고 있다.

콜롬비아 입장에서도 다리엔 갭을 개발하는 것이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한다. 지금도 상존하는 반군 세력들이 다리엔 갭이 개발되어 도로, 철도 등을 원활히 이용할 수 있게 될 경우 더욱 빈번히 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파나마와 콜롬비아 간의 사이가 좋지 않은 것도 중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콜롬비아로부터 독립한 파나마는 여전히 콜롬비아와 좋은 관계는 아니다. 그나마 양국을 오가던 페리 역시 정치적 문제로 종종 중단되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바닷길이 막힌 많은 사람들이 다리엔 갭을 목숨 걸고 선택하는 것이다.

또한 파나마는 남미지역으로부터 올라오는 난민들에 대해 국경 봉쇄를 하거나 감독하는 데 소극적이다. 그 이유는 파나마를 거쳐 미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다시 북쪽으로 코스타리카~니카라과~온두라스~과테말라를 거쳐, 멕시코 북부 소노라 사막을 건너 국경지대까지 올라가야 한다. 파나마 입장에서는 미국에 불법 이민자가 많은 것은 온전히 자신들만의 책임이 아니라 이들 국가들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국경 관리 문제에 소극적인 것이다.

최근 이처럼 전 인류의 손길조차 닿지 않던 다리엔 갭이 국제사회에 주목을 받게 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코로나 19로 극심한 경제난을 경험하고 있는 남미 국가 국민들이 미국으로 불법 이민을 가기 위해 반드시 지나가야 할 경로가 되면서부터이다.

다리엔 갭이 이처럼 위험천만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남미 국민들이 이곳을 지나 미국으로 가려고 하는 이유는, 그나마 배를 타고 가야 하는 등 유럽 등 여타 국가의 이주보다 수월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지금도 세계 1위의 이주자 수용 국가이다. 다시 말해 어떻게든 미국에 도착만 하면 거기서는 새로운 삶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파나마 이주당국의 집계에 따르면 2013년 이곳을 통해 파나마에 들어온 불법이주자는 3078명이었으나, 지난해에는 7278명으로 두 배 이상 급증했다. 콜롬비아와 접경국인 브라질과 에콰도르의 출입국 문턱이 낮아진 것도 콜롬비아-파나마 국경지대를 거쳐 미국으로 가려는 밀입국자 증가에 한몫했다. 두 나라는 2008년부터 모든 관광객들에게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고 있다.

에콰도르 군인들이 콜롬비아 국경 부근 밀림을 순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에콰도르 군인들이 콜롬비아 국경 부근 밀림을 순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권 보호 사각지대 다리엔 갭... 개발 필요

다리엔 갭을 지나 미국으로 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나날이 증가하고 있지만 다리엔 갭을 지나려는 이주 가족들은 성폭력, 인신매매, 범죄 조직의 강탈을 비롯한 폭력에 쉽게 노출되는 상황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다리엔 갭을 지나기 위한 가이드 역시 콜롬비아 마약조직원들의 도움과 보호를 받아야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다리엔 갭을 건너는 동안 이주 가족들은 설사, 호흡기 질환, 탈수 및 기타 심각한 질병에 걸릴 위험도 높은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아이들이다. 최근 유엔아동기금(UNICEF)에 따르면, 불법 이민이 급증하여 올해 들어 지금까지 약 1만9,000명의 이주 아동이 다리엔 갭을 통과했다고 한다.

콜롬비아와 파나마 국경을 넘는 이민자 5명 중 1명 이상이 어린이들이고 그들 중 절반은 5세 미만으로, 이는 이전 5년 동안 등록된 수를 합친 것보다 약 3배나 많은 수치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어렵게 다리엔 갭을 넘어온 아이들 중에서는 중간에 부모를 잃고 혼자서 넘어온 아이들도 많은 상황이다.

어렵게 가족 모두 미국에 도착했다 하더라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다리엔 갭을 지나오는 과정에서 마약 조직원들에게 다양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콜롬비아 마약 조직원들은 육상교통비, 정글 수로를 이용할 경우 뱃삯, 중남미 나라들의 국경을 통과할 때 줘야 할 뇌물, 브로커 비용까지 한 사람당 수천 달러의 돈이 필요하다. 수중의 모든 현금과 패물을 긁어모으고 주변에서 돈을 빌려야 한다.

밀입국자 대부분의 법적 지위가 인권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것도 문제다. 일단 남미 대륙에 들어온 뒤 몇 달씩 체류하면서 여권과 비자를 폐기해버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일부 밀입국자들은 인신매매에 활용되는가 하면, 범죄에 악용되기도 한다. 마약조직원 등이 불법 이주자들에게 ‘비자 만료로 인해 출입국 당국에 적발되면 추방당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면서 자행되는 일화들이다.

100층 이상의 빌딩을 짓고, 에베레스트와 해저 깊은 곳까지 우리 인류가 도달하지 못하는 지역이 없는 오늘날, 아직도 인류의 손길이 닿지 않는 지역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더군다나 그 이유가 자연적인 요인이 아니라 철저히 우리 인간들이 만들어낸 요인 때문이라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이런 의미에서 언젠가 다리엔 갭이 개발되는 시점이 우리 인류가 지금보다 훨씬 성숙한 단계로 거듭나게 되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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