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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모는 지휘자, 레이싱 하는 피아니스트

입력
2021.11.17 04: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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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허명현 클래식 평론가가 한국일보 객원기자로 활동합니다. 경기아트센터에서 근무 중인 그는 공연계 최전선에서 심층 클래식 뉴스를 전할 예정입니다. 오페라에서 가수가 대사를 노래하듯 풀어내는 '레치타티보'처럼, 율동감 넘치는 기사가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지난달 제18회 쇼팽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브루스 리우(왼쪽)가 대회 직후 폴란드 국가 대표 카트 레이싱 선수인 캐스퍼 나돌스키와 레이싱 경기를 하며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Mikołaj Kamieński

지난달 제18회 쇼팽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브루스 리우(왼쪽)가 대회 직후 폴란드 국가 대표 카트 레이싱 선수인 캐스퍼 나돌스키와 레이싱 경기를 하며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Mikołaj Kamieński

지난달 캐나다 출신 피아니스트 브루스 리우가 제18회 쇼팽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연주력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그의 취미였다. 콩쿠르 기간 내내 각종 인터뷰에서 그는 "카트 레이싱을 즐긴다"고 밝혔다. 두 손이 생명인 피아니스트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취미다.

실제로 브루스 리우는 지난달 폴란드에서도 카트 레이싱을 즐겼다. 우승 직후 폴란드의 포즈난 필하모닉과 공연을 이어가던 중, 브루스 리우는 뜻밖의 기회를 얻었다. 포즈난 필하모닉 측에서 브루스 리우의 취미를 알고 난 후 깜짝 선물을 한 것. 심지어 혼자 달리는 레이싱이 아니라 특별한 경쟁 상대도 초청했다. 상대는 바로 국가 대표 카트 레이싱 선수인 캐스퍼 나돌스키였다. 포즈난 필하모닉 덕분에 브루스 리우에겐 일생일대의 경기가 성사되었다. 나돌스키 역시 쇼팽 콩쿠르 우승자가 카트 레이싱을 좋아한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개하는 등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 레이싱은 쇼팽 콩쿠르 우승자 브루스 리우의 마지막 폴란드 일정이었고, 곧바로 전 세계 투어에 나섰다. 이번 달 한국에서도 그의 첫 공연이 열린다.

브루스 리우와 비슷한 사례로 전설적인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도 속도광이었다. 카라얀은 클래식 역사상 가장 대중적인 지휘자였으며, 클래식의 황제로 불렸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종신지휘자였고, 그가 곧 지휘의 화신이다. 카라얀은 뜻밖의 취미가 많았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자동차였다. 속도광으로 알려진 카라얀은 포르쉐, 롤스로이스, 페라리 등 다양한 종류의 차량을 소유했다. 아우토반을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게 그의 취미였기 때문이다.

카라얀은 자동차뿐만 아니라 경비행기를 직접 운전하기도 했다. 칠레에서 본격적으로 비행 강습을 받은 뒤 스위스에서 비행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는 여러 대의 경비행기를 소유하고 있었고 직접 타고 다니면서 지휘 일정을 소화하기도 했다. 빈 공대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할 만큼 기계에 남다른 관심이 있었던 영향이 컸다. 게다가 최첨단 기술에 늘 열린 사고를 가졌던 카라얀이기에 가능했다.

심지어는 승객을 태우고 항공기를 조종한 지휘자도 있다. 영국 출신의 다니엘 하딩은 최근 지휘봉을 잠시 내려놓고 안식년을 가졌다. 오랜 꿈인 비행기 조종사가 되기 위해서다. 다니엘 하딩은 세계적인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사이먼 래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단숨에 국제 무대에 샛별처럼 떠오른 지휘자다. 베를린필을 지휘한 최연소 지휘자로도 유명하다.

다니엘 하딩은 어렸을 적부터 비행기 조종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전 세계를 돌아다녀야만 하는 지휘자로서의 바쁜 일정도 그의 열정을 막을 순 없었다. 특히 지난 몇 년간은 비행 자격증을 취득하는 등 꿈을 위해 한 걸음 다가섰다.

마침내 그는 지난해 프랑스 항공사 에어프랑스에 수습으로 들어갔다. 에어버스320(A320)의 부기장으로 활동하게 된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는 내 모든 역량을 음악에 쏟았지만, 지금부터는 나의 100%를 비행과 함께하겠다. 지휘는 정년이 없어 언제든 할 수 있지만, 비행기 조종사는 정년이 있다"고 했다.

현재 하딩은 다시 지휘자로 돌아와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그와 인연이 깊은 런던심포니와 드보르작의 작품을 함께했다. 지휘와 비행은 병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덧붙여 그는 앞으로 자신의 악단이 해외로 연주투어를 하게 될 때, 단원들을 태우고 직접 비행기를 몰겠다는 당찬 꿈도 세웠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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