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2일 이후 한 달 넘게 두문불출
호응 없는 美에 당분간 대응 전략 유보
50일 남은 5개년 경제계획 첫 성과 독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겸 노동당 총비서가 두문불출하고 있다. 지난달 12일 국방발전전람회 기념 연설 이후 벌써 한 달째 공식석상에서 사라졌다. 올 들어 가장 긴 잠행이다. 행방은 묘연하지만 ‘수령 김정은’의 정치적 위상은 외려 강화되고 있다. 북미대화 재개 조짐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내부 결속을 통해 김정은 체제를 굳건히 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김 위원장의 은둔이 한 달을 넘긴 건 다소 이례적이다. 그간 김 위원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주민과의 대면 접촉은 최소화하면서도 회의 등 공식 행사에는 빠짐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앞서 5월 6일 군인가족예술소조공연 참가자들과 기념사진 촬영 후 28일 정도 잠행했지만, 6월 4일 당 정치국 회의를 주재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그는 당시 살이 확 빠진 얼굴로 나타나 감량을 위한 의도적 잠행이 아니었느냐는 관측을 낳았다.
이번엔 국방발전전람회 연설에서 북미대화의 선결조건으로 이중 기준 및 적대시 정책 철폐라는 대외 메시지만 남기고 자취를 감췄고, 지금껏 감감무소식이다. 김 위원장의 공개 활동이 사라지면서 북한 당국도 침묵 모드로 돌아섰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달 14일(현지시간) 북한에 협상 재개 시한과 관련한 ‘구체적(specific) 제안’을 했다고 공개했으나, 북측은 여전히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북한은 같은 달 29일 문재인 대통령의 프란치스코 교황 방북 제안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북한의 조용한 행보는 미국의 완강한 태도와 맞닿아 있다는 평가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대북 제재에 손을 대지 않은 채 북한이 먼저 협상장에 나와야 제재 완화를 포함한 폭넓은 논의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말한 대화의 조건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는 것이다. 미국의 일관된 입장을 감안하면 김 위원장도 추가 대응 없이 당분간 대외정세를 관망하면서 다음 단계를 고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 관계자는 “한미연합군사연습 폐지나 제재 완화 등 미국이 김정은 정권에 전혀 대화 명분을 주지 않은 만큼 적어도 연말까지는 북한이 먼저 나설 일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제 회복이 시급해 대외정책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는 분석도 있다. 김 위원장은 1월 제8차 당대회에서 제시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첫 성적표를 눈앞에 두고 있다. 성과가 목표에 못 미칠 경우 그의 지도력에도 막대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당국은 매체들을 동원해 연일 각 부문의 성과를 다그치고 있다. 노동신문은 12일 “올해 전투는 50일 남았다. 다시 한번 정신을 번쩍 차리고 완강한 공격전을 벌려 과감한 실천으로 해나서야 한다”고 독려했다.
북한이 요즘 선대 김일성ㆍ김정일의 전유물이었던 ‘수령’ 호칭을 김 위원장에게 자주 붙이는 것도 체제 결속을 유도해 성과를 도출하려는 의도가 짙다. 김 위원장에 대한 충성심을 동력으로 가시적 성과를 내고, 이를 유일영도체계 확립의 근거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차덕철 통일부 부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김 위원장을 수령으로 지칭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은 당대회 결정사항 관철과 충성을 강조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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