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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검찰과 반대로 가면 된다

입력
2021.11.12 18: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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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실력 모자라서 공수처 만들지 않아
고발사주 의혹, 공수처 존재 입증할 기회
정치, 권력 고려 없는 원칙 수사 보여줘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3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공수처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3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공수처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대로 수사했더라면 역사가 바뀌었을 사건들이 많다. 역대 대선마다 선거판도를 송두리째 흔든 대형 사건들도 예외가 아니다. 그때마다 선거정국은 수사기관의 입만 바라봤지만 선거 전에 명쾌한 답이 나온 적은 없다. 이회창 후보의 병풍사건은 대선 이후에 허위로 드러났고, 이명박 후보의 BBK사건은 11년이 지나 진실이 드러났다. 검찰이 선거에 미칠 영향이 크다는 논리로 정치적 고려를 한 결과였다. 검찰이 정치권력 의중을 좇지 않았다면 정권이, 역사가 달라졌다는 데 이의가 있을 수 없다.

수사 주체가 분리됐어도 이번 대선 역시 지금까지 과정은 이전과 다르지 않다. 지금 대선정국에서 최대 변수는 검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다. 검찰은 대장동 의혹을, 공수처는 고발사주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모두 대한민국 장래가 걸린 대통령을 뽑는 선거와 직결된 사건들이다. 이재명, 윤석열 두 유력 대통령 후보는 연루를 부인하지만 수사 결과는 적어도 후보의 도덕성, 자질 판단에 결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수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두 후보 모두의 당락이 좌우될 수 있는 건 유례를 찾기 힘든 상황이다.

대선정국이 검찰, 공수처의 볼모가 된 퇴행적 모습이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검찰과 공수처가 공정, 엄정하게 수사할 이유는 많다. 대통령 선거에 국가의 5년 장래가 걸려 있고 후과까지 감안하면 그 영향은 계산하기 어렵다. 하지만 검찰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거의 없다. 대장동 수사는 전담수사팀을 꾸린 지 40일이 지났지만 사건배후 조사는 지지부진하다. 특검 찬성 여론이 70% 안팎이나 될 만큼 실망스럽자 이 후보도 특검 도입에 조건부 찬성 입장을 냈을 정도다.

5년 전 최순실 사건 때도 검찰은 형사부에 맡겨두고 있다가 탄핵국면에 들어서 권력이 꺾이자 그때서야 칼을 빼 들었다. 얼마나 전광석화 같았던지 특별수사본부를 확대개편한 이후 24일 만에 현직 대통령을 피의자로 규정한 중간 수사결과가 발표됐다. 물론 당시 검찰의 결기를 지금 미래권력에 대한 수사에서 찾을 수는 없다.

하지만 공수처는 검찰과는 달라야 한다. 이런 검찰을 개혁하는 연장선에서 출범한 게 공수처다. 검찰이 하지 못하는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해, 더는 가정법이 통하지 않도록 조직한 수사기구다.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도 필요성을 인정하고 반대하지 않았다.

더구나 고발사주 의혹은 검찰 스스로 처리할 수 없는 전형적인 권력남용 사건이자 검찰의 일탈을 감시하는 공수처 존재 의미를 입증해줄 사건이다. 공수처 스스로도 실력 있는 검찰이 아니라 공수처에 이런 사건을 맡긴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아니면 아닌 대로 법적 사실만 쫓아 신속히 수사하면 된다. 윤 전 총장도 본인은 개입하지 않았다고 밝힌 만큼 정치적 고려를 할 이유도 사라졌다.

다만 출범 1년이 안 된 만큼 실력과 신뢰를 구분해 공수처를 바라볼 필요는 있다. 경험이 없다 보니 정치적 일정에 맞춰 피의자를 소환하려 하고, 압수수색 집행이 어설프고, 구속영장이 부실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경험 부족에 따른 미숙함을 정치적 편향성으로 재단하고 공격할 일은 아니다. 수사 대상자인 검사들이 부끄럼 없이 공수처를 공격하는 게 부당해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다. 공수처를 바라보는 국민들도 실력과 신뢰를 구별해낼 안목은 가지고 있다.

검찰이 실력이 없어서 공수처를 만든 것도 아니다. 정치적 계산 없이 있는 그대로 수사하라고 권력과 광장의 목소리에서 자유롭게 한 것이다. 모자라는 실력은 보완하면 되지만 한번 무너진 신뢰는 회복하기 어렵다. 정치적 유불리에 흔들리지 않는 원칙이 쌓이면 신뢰가 생기게 마련이다. 어떤 경우든 최악의 선택은 결정을 미루는 일이다. 잘못된 결정이라도 결정을 늦추는 것보다는 낫다는 말도 있다. 눈치 보기는 제2의 검찰이 되는 것임을 각오해야 한다.


이태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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