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률 20% 중반에서 8.5%로 급락
연말 전 세계 쇼핑대란 예고편 우려
중국 연중 최대 쇼핑 축제인 ‘11·11 광군제(光棍節·‘싱글’의 날)’의 성장세가 확 꺾였다. 100조 원에 육박하는 사상 최대 매출액 기록을 세우긴 했지만, 매해 20% 이상의 고공행진을 거듭해 왔던 매출 증가율이 한 자릿수로 주저앉은 것이다. 글로벌 공급망 마비와 반도체 대란, 당국의 서슬 퍼런 규제 등 삼중의 직격탄을 맞은 결과다. 몇 년 전만 해도 ‘1초에 1억 위안(약 185억 원)을 쓸어 담을’ 정도로 쇼핑 분위기가 뜨거웠던 반면, 올해는 냉랭한 분위기 속에 진행돼 ‘역대 가장 조용했던 행사’라는 평가마저 나왔다.
1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는 올해 광군제 기간(1~11일) 자사 플랫폼에서 이뤄진 거래액이 5,403억 위안(약 99조9,000억 원)으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2009년 11월 처음 행사가 시작한 이래, 최대 매출액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상 최대 실적이 무색하게, 시장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가 쏟아진다. 매출 증가율이 지난해 대비 8.45%에 그친 탓이다. 세계 각국 온라인 쇼핑객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해마다 20%대 중반을 기록했던 과거의 ‘열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는 방증이다.
광군제는 알리바바가 매년 11월 11일 여는 쇼핑 행사다. 미국의 연중 최대 온라인 쇼핑 대목으로 꼽히는 ‘블랙프라이데이’와 ‘사이버먼데이’의 매출액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리는, ‘지구촌 최대’ 온라인 쇼핑 이벤트다. 2019년 미중 간 무역분쟁에도 행사 시작 1분 36초 만에 100억 위안(약 1조8,500억 원)의 매출을 달성, 중국의 엄청난 내수시장 규모를 입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를 강타한 작년에도 26%의 매출액 증가를 보인 사실을 감안하면, 성장세가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 올해는 그야말로 ‘충격’이라는 평가다. 영국 BBC방송은 “광군제 매출이 ‘두 자릿수 성장’에 실패한 건 처음”이라고 전했다.
기대를 한참 밑도는 성적표는 나라 안팎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안에서는 당국의 ‘빅테크 때리기’로 기업들이 몸을 한껏 사리고 있다. 중국 정부는 반(反)독점 규제를 명분으로 지난해부터 대형 IT 기업 규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규제 당국이 행사 직전 전자상거래 업체 관계자들을 줄줄이 불러 부적절한 판매 관행 경고에 나섰다는 얘기도 나온다. ‘미운 털’이 박히지 않으려면 행사 주도 업체들도 납작 엎드릴 수밖에 없다.
중국 공산당 최대 연례행사인 제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6중 전회)가 8일부터 나흘간 겹친 것도 악재였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장기 집권 기반을 다지는 이벤트를 방해할 수 없던 업체들은 미디어 홍보 활동을 꺼렸다. 거래액 실시간 공개 등으로 조성됐던 과거의 축제 분위기’는 올해 느낄 수 없었다. 미 CNBC방송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공동부유’ 기조를 밀어붙이면서 예년과는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외부 사정도 꽉 막혀 있었다. 세계적인 공급망 혼란은 물론, △원자재 가격 상승 △반도체 부족 △해결 기미가 안 보이는 전력난 등이 한꺼번에 닥친 것이다. 최대 인기 상품 품목인 전자제품은 반도체 부족으로 손에 넣는 게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다른 상품들도 중국 내 전력난으로 생산·제조가 중단되거나 지연되는 일이 다반사다. 어렵게 구매에 성공해도 글로벌 물류 대란 탓에 배송이 꽉 막혀 있다. 알리바바의 대표 플랫폼 타오바오와 중국 제2 전자상거래 기업 징둥은 “애플과 화웨이 휴대폰 배송에 4주 정도 걸릴 것”이라면서 반도체 대란을 이유로 들었다.
문제는 얼어붙은 광군제 분위기를 단순히 중국만의 일로 치부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외부 요인 중 어느 하나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만큼, 이번 광군제 위축이 전 세계 쇼핑 대란의 ‘예고편’이 될 공산도 크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은 “올해 광군제 모습은 크리스마스 등 연말 쇼핑 시즌을 앞둔 세계 각국에서 나타날 일들을 미리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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