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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성평등 위해 딸에 엄마 성 물려줄 것" 부부 신청 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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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성평등 위해 딸에 엄마 성 물려줄 것" 부부 신청 허가

입력
2021.11.09 21:30
수정
2021.11.10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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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성 따르게 해달라' 청원 올린 부부
법원에 성·본 변경 신청... "이유 있다" 허가

"자녀에게 엄마의 성을 물려줄 수 있게 해달라"며 성·본변경 허가 심판을 청구한 부부 중 남편이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가정법원 앞에서 열린 '성본 변경 청구 허가' 환영 기자회견에서 아이를 안고 있다. 왼쪽의 부인은 "엄마 성 따라도 하늘 안 무너져요"라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자녀에게 엄마의 성을 물려줄 수 있게 해달라"며 성·본변경 허가 심판을 청구한 부부 중 남편이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가정법원 앞에서 열린 '성본 변경 청구 허가' 환영 기자회견에서 아이를 안고 있다. 왼쪽의 부인은 "엄마 성 따라도 하늘 안 무너져요"라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오늘부터 저희 아이에게 엄마의 성을 물려주게 됐습니다. ‘멋있다’ ‘나도 하고 싶다’는 말도, ‘성이 뭐 그리 중요하냐’ ‘유난이다’라는 말도 들었지만 가부장제 잔재인 부성주의 원칙을 깨기 위해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1월 9일 가정법원 앞 기자회견 중 어머니 A씨의 말

자녀에게 아버지 성을 물려주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부성 우선주의’를 깨고 어머니 성을 물려줄 권리를 보장해달라며 국민청원을 올렸던 부부가 법원 허가로 딸의 성을 바꾸게 됐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가정법원은 자녀의 성·본을 어머니의 성·본으로 바꿀 수 있도록 해달라며 A씨와 B씨 부부가 올해 5월 낸 ‘자(子)의 성·본 변경 허가' 청구 사건에서 “이유가 있으므로 허가한다”고 결정했다. 이에 따라 생후 6개월 딸은 이날부터 어머니 성을 따르게 됐다.

부부는 지난해 6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자녀에게 엄마 성을 줄 수 있는 권리도 동등하게 보장해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2만 8,000여 명 동의를 받기도 했다.

2013년 10월 결혼한 이들은 혼인 당시엔 자녀 계획이 없었다. 이후 임신·출산 계획을 세워 올해 5월 아이를 낳았다. 이들은 임신·출산·육아 과정에서 여성에게 부여되는 책임과 역할이 막중하다는 점에 공감, 어머니 성을 물려주기로 합의했다. 대신 아버지 성은 딸의 이름 두 글자 중 한 글자로 넣기로 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여성인권위원회와 엄마 성을 물려줄 수 있는 권리 모임 등 참석자들이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가정법원 앞에서 '엄마의 성·본 쓰기' 성본변경청구 허가 결정 환영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자녀의 성본변경을 청구한 부부도 생후 6개월 딸을 데리고 기자회견에 직접 나섰다(오른쪽). 뉴시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여성인권위원회와 엄마 성을 물려줄 수 있는 권리 모임 등 참석자들이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가정법원 앞에서 '엄마의 성·본 쓰기' 성본변경청구 허가 결정 환영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자녀의 성본변경을 청구한 부부도 생후 6개월 딸을 데리고 기자회견에 직접 나섰다(오른쪽). 뉴시스

그러나 이들은 아버지의 성에 따라 딸의 출생신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 현행 민법은 자는 부(父)의 성·본을 따르되, ‘혼인신고 시’에 모(母)의 성·본을 따르기로 협의한 경우에만 어머니 성을 따른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혼인신고 당시엔 자녀 계획이 없어 별도 협의서를 내지 않았던 부부에겐 '이미 지나간 선택지'였다.

남은 방법은 △이혼 후 재혼인 신고를 해서 어머니 성을 따를 것이란 협의서를 제출하거나 △성·본 변경허가 심판을 청구하는 것이었다. 부부는 어머니의 성·본으로 바꿀 수 있도록 해달라는 소송을 내면서 딸에게 ‘양성평등’을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체득하고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는 가정환경을 만들고자 한다”고 밝혔다.

부부의 소송을 도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와 ‘엄마 성을 물려줄 수 있는 권리 모임’은 이날 서울가정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반 가정에서도 엄마의 성과 본을 자녀에게 물려줌으로서 자녀가 입는 불이익보다 이익이 더 크며 궁극적으로 자녀의 복리에 부합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라며 환영했다.

아빠가 처음에는 내 거(성)를 뺏기고 싶지 않다는 쪼잔한 마음도 들었지만, 엄마가 열 달 동안 고생한 걸 생각하면 아빠의 기여도는 미미하더라고. ○○이가 엄마 성을 쓰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편견과 차별에 맞서는 ○○이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2021년 11월 9일 아빠가.

11월 9일 가정법원 앞 기자회견 중 아버지 B씨의 말

최나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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