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기성 질병 환자들을 빠짐없이 찾아 치료하라.”
2년 가까이 지구촌을 휩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광풍에도 ‘감염병 청정국’을 자신하던 북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갑자기 기침, 가래 등 호흡기 증상을 보이는 환자를 색출하라는 지시가 떨어진 것이다. 환자 발생 여부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다만 오랫동안 걸어 잠근 국경 문을 다시 열려는 정황이 포착되면서 대외 개방에 대비한 통제 강화 조치의 일환이란 해석이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9일 “보건기관들이 주민 검진과 위생선전을 보다 강화하며 감기를 비롯한 호흡기성질병 환자들을 빠짐없이 찾아 치료하기 위한 대책도 철저히 세워나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선중앙방송도 이날 호흡기 질병 환자들의 치료 필요성을 강조하는 보도를 내보냈다. 북한은 지난해 1월 코로나19 차단을 명목으로 국경을 폐쇄하는 등 비상방역체계를 최고 수준으로 격상했다. 하지만 대내적으로 마스크와 손 소독제 사용의 중요성을 강조했을 뿐, 적극적인 환자 수색 지침을 내린 것은 드문 일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북한에 드디어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한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기도 한다. 실제 외신 보도를 보면 최근 북한의 지방 분위기는 상당히 흉흉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5일 “북한 일부 지역에서 코로나19 증상과 유사한 폐ㆍ호흡기 질환에 의한 사망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또 독감이나 폐렴, 결핵 진단을 받은 환자들이 떼로 숨지는 사례가 속출해 주민들 사이에서 코로나19 공포가 번지고 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한계에 이른 북한의 방역 능력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이 코로나19 발병 이후 너무 오래 봉쇄 정책을 유지하면서 국제기구 및 비정부기구(NGO)를 통한 의약품 등 필수 물자 수급이 어려워졌다”며 “당연히 코로나 대응 역량도 크게 떨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에 대한 위기감이 생기지 않는 게 이상한 구조라는 얘기다.
환자 색출이 방역 체계 전환을 염두에 둔 사전 준비 작업이라는 해석도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스스로 인정했듯, 북한 경제는 봉쇄 장기화 탓에 더 이상 자력으로 버틸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신의주와 중국 단둥을 운행하는 열차 운행 재개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북한의 제한적 개방 조짐도 이런 곤궁한 처지가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개시조차 못했다. 막상 국경문을 열었을 때 맞닥뜨려야 할 ‘외부 변수’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에 코로나19 의심 환자들을 미리 가려내 선제적 조치를 하는 동시에 방역 고삐를 다시 한번 조이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풀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중 무역길이 열린다고 해도 당분간 주민과 외부인력의 접촉면을 최소화하는 통제 국면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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