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이란 이름의 乙들] <2> 갑질 시달리는 프랜차이즈 점주의 view
편집자주
[사장이란 이름의 乙들] 노동자이면서 ‘노동자’라 불리지 못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특수고용직 노동자, 프랜차이즈 점주 등 갑질에 시달리는 ‘을(乙)’ 개인사업자의 현실을 그들의 관점(view)에서 풀어냅니다
60년생 김경무씨는 2008년 금융 위기 여파로 ‘희망퇴직’당했다. 당시 그의 나이 겨우 마흔여덟. 아들만 셋, 아홉살 막내 대학 보낼 날까지 장장 10년 이상 남아 있었다. 눈앞이 캄캄한 와중에 아내가 운을 뗐다. “여보, 요 앞 학교 근처 피자집 알죠. 거기 하루에 300판은 거뜬히 판대.”
그렇게 경무씨는 피자 프랜차이즈를 시작했다. 소위 ‘요즘 뜨는’ 브랜드였다. 가입비 수천만 원에 권리금만 ‘억대’였지만, 멀리 보고 퇴직금을 탈탈 털었다. 난생 처음 ‘사장’이라 불려보는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새출발 앞에 설레는 마음은 잠시였다. 시중가격보다 배나 비싼 재료비와 로열티, 광고비까지 본사에 바치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 할인 지시가 내려오면 ‘찍소리’도 못하고 쓴 한숨을 삼켜야 했다. 매출이 아무리 좋아도 남아나질 않았다. 참다 못해 점주들을 모아 피켓이라도 들라치면 ‘재계약 안 하실거냐’는 협박이 돌아왔다. 8년 운영, 폐점 끝에 남은 건 8,000만 원 빚이었다. 결국 파산을 신청했다.
국내 '생계형 자영업자' 대다수의 현실이 경무씨와 다르지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자영업 종사자는 650만 명, 이 중 적지 않은 '사장님'들이 ‘프랜차이즈 가맹’ 사업을 선택한다. 프랜차이즈는 관련 지식이 전혀 없는 은퇴 세대에겐 ‘유일한 탈출구’처럼 여겨지지만, 실상은 ‘노예 계약’과 다름없다. 사장이라 불리지만 실상은 본사의 ‘노예’와 다름없다는 프랜차이즈 가맹점주 4인의 ‘일터 아닌 을(乙)터’를 한국일보 뷰엔(viewamp;)팀이 따라가 봤다.
‘본사가 재료 끊어 장사 못 합니다’ 맘스터치 상도역점의 사라진 ‘두 달’
황성구(62)씨는 30년 차 은행원이었다. 부장에 지점장까지 지내고 오십 대 중반에 명예퇴직을 했다. 생전 햄버거 세트 한 번 제대로 주문해 본 적 없던 그가 맘스터치 상도역점을 연 것은 지난 2019년. 양복 대신 붉은색 유니폼에 캡모자를 쓴 채로 출근해, 종일 치킨 패티를 튀기고 대학생 손님들을 맞았다. ‘맛 좋고 저렴하다’는 입소문을 타며 고객이 늘자 자부심도 생겼다.
장사를 하다 보니, 맹점이 속속 눈에 띄었다. 외래어 투성이인 메뉴의 이름을 우리말로 풀어 쓸 수도, 메뉴판 크기를 바꿀 수도 없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본사의 허락’이 있어야 가능했고, 본사 주관 할인 이벤트엔 반드시 동참해야 했다. 할인으로 인한 수익 감소는 모두 점주가 부담할 몫이었다. 홈페이지에 ‘찬반 투표’를 열어두긴 했지만, 미참여분을 모두 ‘찬성’으로 계산해 일을 밀어붙였다. 참다 못한 점주 몇몇이 나서 ‘점주 모임’을 만들었고, 행정처리에 능숙한 황씨가 얼떨결에 협회장을 맡게 됐다. 그때만 해도 머잖아 매장 운영까지 중단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본사는 황씨가 전국 가맹점주들에게 보낸 안내문을 빌미로 삼아 그를 명예훼손 및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황씨가 안내문에 적은 ‘매장 수익이 하락했다’는 내용을 근거 없는 허위사실로 문제 삼았다. 경찰은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며 ‘무혐의’ 판단을 내렸지만, 본사의 입장은 완고했다. 마침내 8월 8일, 본사는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상도역점으로 들어가는 모든 재료공급을 끊어버렸다. 인근 점주들이 몰래 재료를 빌려주자 이마저도 가로막았다.
햄버거를 팔 순 없었지만 황씨는 매일 가게로 나갔다. “맘스터치는 맛있지만, 본사는 멋없네요. 꼭 힘내시길 바랍니다 사장님.” 하나둘 나붙기 시작한 시민들의 응원 메시지가 벽면을 가득 채웠다. 두 달 반 만인 지난달 26일, 본사는 물품 공급을 재개했다. 법원이 물품 공급 중단 금지 가처분을 인용하고 ‘간접 강제 이행’ 조치까지 내린 결과, 꿋꿋이 버티던 본사도 한발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심각한 대립 상황은 일단락됐지만, 황씨의 마음은 여전히 착잡하다. “독립운동을 하는 것도 아닌데,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해가며 맞서야 한다면 앞으로 누가 단체 활동에 나서려 할까요.” 그는 누군가 목숨을 끊어야만 끝날 싸움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갑질은 업종을 불문한다” 콘텐츠 끊은 쎈수학, 광고비 물린 에그드랍
한 번 일어나면 ‘사건’이지만, 반복되면 ‘현상’이 된다. 프랜차이즈 '갑(甲)질'도 마찬가지다. 황씨의 사례는 사건이 아니었다. 업종을 불문하고 이미 수없이 반복돼 온 패턴 중 하나였다.
마곡삼성영어학원 원장 손성희(53)씨는 스물다섯 무렵부터 아이들을 가르쳐 온 베테랑이다. 그는 2년 전 수학 프로그램을 새로 도입하기 위해 ‘쎈수학 러닝센터’와 가맹 계약을 맺었다. “영어만 하는 학원은 아무래도 경쟁력이 떨어지니 수학도 함께 가르쳐보자 싶었죠. 유명한 브랜드니 묻고 따지지도 않았어요.”
쎈수학 러닝센터는 문제집 ‘쎈수학’으로 널리 알려진 신사고 아카데미가 만든 학원 가맹 사업이다. 교재와 함께 문제풀이 동영상 강의를 제공한다. 아이가 먼저 동영상 강의를 보며 문제를 풀어본 다음, 약점 위주로 강사와 1대 1 수업을 하는 ‘자기주도형’ 방식이다. 강의를 무제한으로 돌려보며 반복학습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손씨의 마음에 쏙 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본사가 동영상 강의 시청 횟수를 최대 1회로 제한해버렸다. “강의를 한번만 보고 완벽하게 소화하는 학생은 없어요. 게다가 어쩌다 로그아웃이라도 되면 해당 강의는 아예 볼 수가 없는 상황이 되죠.” 관련 내용은 공식 홈페이지상에 일방적으로 통보됐다. 원장들의 의견을 구하는 공식 절차는 없었다. 본사는 가맹 원장들의 원성이 자자해지자 아예 전화 응대를 중단했다. 계약을 해지하고 싶단 항의에는 침묵 일변도로 대응했다. 현재 손씨는 상주 수학강사를 추가로 고용했고, ‘쎈수학 러닝센터’ 간판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대로 걸려 있다.
‘선통보 후무(無)대응’ 수법은 프랜차이즈 갑질의 전형적 규칙이다. 달걀 샌드위치 체인 에그드랍 가맹점을 운영해온 이원재(58)씨 역시 올해 2월 본사로부터 ‘광고비 인상’을 일방적으로 통보받았다. ‘로열티 외 별도로 매출액의 4.5%를 광고비로 징수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점주들이 반대하며 계좌 자동이체를 해지하자 본사는 ‘광고비 미납 시 계약을 해지하겠다’며 압박했다. 언론에 사연이 알려지자 ‘계약 해지’ 건은 급히 철회됐다. 그러나 반 년이 지난 지금도 본사는 점주협회의 공식적 대화 요청에 제대로 응하지 않고 있다.
에그드랍은 이삭 토스트와 같은 동종업계 타브랜드에 비해 로열티가 훨씬 높다. 최초 가입비도 5, 6배 가까이 비싸다. ‘잘나가는 신생 브랜드’라는 이미지에 대한 대가다. “그런데도 본사로부터 받는 서비스는 거의 없어요. 1년 가까이 담당 관리자조차 없는 상황이니까요. 심지어는 본사에 항의 전화를 걸 방법도 없죠. 불만이 있으면 ‘메일로 하라’네요.” 전화 응대를 끊어버린 신사고 측의 대응과 ‘판박이’다.
그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덧붙였다. “아무래도 제가 노예계약을 맺은 것 같아요. 본사가 지시하면 따라야 하고, 점주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고. 근데도 우리는 ‘사업자’니까 그 어떤 보호도 받을 수 없죠.”
모든 갑질 ‘똑같이 앞서’ 겪은 게 6년 전, 아직도 바뀐 것은 없다
“맞아요, 1억 원 내고 중노동하는 노예. 이름만 그럴 듯할 뿐 솜털 만도 못한 존재지, 바람 불면 훅 날려가는 솜털.”
황씨, 손씨, 이씨에 앞서 ‘프랜차이즈의 갑질 생태계’를 고스란히 먼저 겪은 이가 있다. 전 피자에땅 점주 김경무(61)씨다. 그는 본사에 가게를 빼앗긴 지 올해로 7년째가 됐다. 오토바이로 배달업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김씨는 2021년 현재, 아직도 피자에땅과 싸우고 있다. 그는 세 사람의 사례를 들으며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이다 가로젓기를 반복했다. 만행은 반복되는데, 아무것도 나아지고 있지 않아서다.
“저도 똑같았어요. 전단지 강매는 기본, 곰팡이 핀 치즈에 중량이 제각각인 도우까지 본사가 지급하는 엉터리 물건을 시중가의 2, 3배 주고 샀죠. 참다 못해 점주들을 모아 단체를 만드니 주동자를 골라내 ‘표적 점검’을 나오더라고요. 불시에 나와 여기저기 사진 찍어가고, 심지어는 쉬는 날까지 문제 삼았죠.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매장 문을 닫아야 하는데 ‘일주일 전 고지’ 원칙을 어겼다고요. 그렇게 계약을 해지당한 겁니다.” 점주협회 임원이었던 김씨는 결국 가맹법상 보호되는 10년을 채 채우지 못하고 폐점했다. 가게를 접을 땐 8,000만 원의 빚만 남아 파산했다.
가진 모든 것을 전부 담보로 잡아 피자에땅과의 긴 싸움을 시작했다. 가슴에 맺힌 억울함에 ‘끝까지 가보자’는 결심이 섰다. 그는 2015년, 2017년 두 차례에 걸쳐 가맹점주의 단체활동을 방해했다는 혐의로 본사를 공정위에 고발했다. 칠전팔기 끝에 공정위가 피자에땅에 14억 원 과징금 조치를 내렸지만, 본사 측은 지지 않고 공정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9월 서울고법이 결국 피자에땅 측의 손을 들어줬다. ‘점주 보호’ 흐름에 역행한다는 비판이 거세게 제기됐다.
“본사 측 변호인단을 보니 업계 1위로 유명한 대형 로펌 변호사들이 포진해 있더군요. 나같이 별 볼일 없는 점주 하나 끝까지 죽이겠다고.” 다행히 지난 9월 대법원은 서울고법 판결을 일부 파기환송했다. 공정위가 최종 승소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김씨가 여기까지 오기까지 6년이 걸렸다.
김씨는 스스로를 ‘을’도 아니고 ‘정’쯤 된다고 말했다. 갑을병정(甲乙兵丁)의 마지막인 ‘정(丁)’.
자영업 실패가 ‘노인 빈곤’으로 이어지는 디스토피아가 도래한다
지난 2년을 통째로 집어삼킨 코로나19는 ‘자영업 공화국’의 그늘을 여실히 드러냈다. 영업시간 단축과 소비심리 위축으로 인한 생계 직격탄은 ‘각자’ 감내하고 이겨낼 일이었다. 사업자니까 ‘각자도생’이 당연했다.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10시간, 한달 평균 휴일은 단 3일. 봉급생활자의 두 배를 일해도, 노동자는 아니었다.
“회사는 마음에 안 들면 옮길 수 있어요. 그런데 프랜차이즈 자영업자는요. 한 번 낸 매장을 폐점하려면 몇 억 원이 날아가요. 본사는 아쉬울 게 없지만, 점주들은 잃을 게 많죠. 그런데 법이 점주들의 목소리를 하나도 대변해주지 않아요.” (황성구)
현행 가맹사업법상 가맹 점주들은 단체를 조직할 수 있다. 하지만 본사가 대화나 협상에 나서도록 강제하는 규정은 없다. ‘성실히 응해야 한다’는 어정쩡한 표현만 있을 뿐이다. 노동조합은 법적으로 보호받고, 협상력을 인정받지만 점주협은 아무런 권한도 가질 수 없다. 정부는 지난 5월 가맹점주들의 협상력을 강화하기 위해 가맹사업자단체를 공정위에 등록하도록 하는 가맹사업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현재 이 개정안은 국회에 계류돼 있다.
은퇴세대 대다수가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는 절박함으로, 여생을 지탱하기 위해 자영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 그 말로는 대체로 가난이 될 가능성이 크다. 대한민국의 노인 빈곤율은 2019년 기준 43.2%, OECD 가입 국가 중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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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화 : 일할 땐 노동자, 책임질 땐 사장... 방문점검원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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